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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에도 비디오 판독 도입? 선구자를 자처하고 나선 미국 메이저리그 축구(MLS)

지난 8월 29일 콜로라도 라피즈(Colorado Rapids)와 치른 원정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고도 2-1로 역전패를 당한 스포르팅 캔자스 시티(Sporting Kansas City)의 피터 버메스(Peter Vermes)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동점골을 넣는 과정에서 상대방 선수가 무려 세 번이나 반칙을 범했는데, 심판이 이를 보지 못했거나 넘어갔다는 이유였습니다. 버메스 감독은 인터뷰에서 잘못된 심판 판정 때문에 졌다고 말했습니다. 메이저리그 축구(MLS, Major League Soccer) 사무국이 용납하지 않는 판정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이는 사실 메이저리그 뿐 아니라 다른 많은 리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심판 판정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은 금지돼 있습니다. -옮긴이) 버메스에게는 벌금이 부과됐습니다. 버메스 뿐 아니라 심판 판정을 문제 삼은 다른 구단주, 감독, 코치들도 벌금을 받았습니다.

현실적으로 주심이 부심들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경기장 위에서 쉴새 없이 움직이는 선수 22명의 움직임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쫓아가는 건 불가능합니다. 공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만 보는데도 경기의 템포가 빨라지면 정확한 시야를 확보하지 못해 파울을 가려내지 못할 수 있으니까요. TV로 경기를 시청하는 팬들은 주요 장면을 그때그때 느린 화면으로 다시 확인합니다. 심판도 그럴 수 있다면 어떨까요? 파울 여부를 가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버메스 감독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당연히 찬성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아직까지 도입하지 않는 이유가 뭔가요? 시비를 가리고 판정에 도움을 주는 결정적인 정보가 될 텐데요. 마치 골라인 판독 기술 같군요. 혜택이 분명한데도 이 기술 도입을 놓고 찬반 토론을 하고 있죠. 개인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MLS 사무국장 돈 가버(Don Garber)는 지난해부터 비디오 판독 기술 도입에 찬성한다고 밝혀 왔습니다. 지난 7월 MLS 올스타전 하프타임 때는 TV에 직접 출연해 이와 관련해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MLS 사무국 이사회에서 비디오 판독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계속 논의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희의 잠정적인 결론은 비디오 판독 도입이 필요하다는 데 모였습니다. 물론 미국 축구협회, 그리고 국제축구연맹 피파(FIFA)의 허락이 필요한 사안입니다. 그러려면 당장 축구 경기에 도입하기에 기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증명할 수 있어야겠죠. 어쨌든 MLS는 비디오 판독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팬들 사이에서 비판이 없지 않습니다. 축구는 하프타임을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경기가 끊기지 않고 진행되는 종목인데, 비디오 판독을 하게 되면 그만큼 경기가 늘어지고 정규시간 외에 주어지는 추가시간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입니다. 심판 판정은 어쨌든 인간이 하는 일인데 인간의 판단이 완벽하기를 기대해선 안 되고, 그래서 오심 또한 경기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MLS 사무국의 의견은 다릅니다. 지난 두 시즌 동안 MLS는 세 팀과 함께 비디오 판독 기술을 시험했습니다. MLS 경기위원장인 제프 아구스(Jeff Agoos)는 비디오 판독 기술이 쓸모가 있다는 데이터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레알 솔트레이크(Real Salt Lake), 밴쿠버 화이트캡스(Vancouver Whitecaps), 필라델피아 유니온(Philadelphia Union) 세 팀의 경기를 시즌 내내 분석하면서 심판이 휘슬을 부는 상황 중 다음 세 가지 사례를 모두 모았습니다. 레드 카드를 꺼내 선수를 퇴장시키는 상황, 페널티킥을 주는 상황, 그리고 골 장면. 세 상황 모두 심판이 휘슬을 부는 순간 경기가 중단되고, 다시 휘슬을 불어야 경기가 재개됩니다. 이 사이의 시간은 평균 60초 정도였습니다. 아구스는 “느린 장면을 다시 보고 판단을 내리는 데 20초 정도가 걸리고, 나머지 40초는 심판에게 판독 결과를 알려주는 데 쓰면 되니까 60초는 충분한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상황이 일어나는 순간에는 선수를 제외하면 가장 가까이서 이를 볼 수 있는 게 심판이겠지만, 그 상황이 일어난 뒤로는 사실 심판이 가장 정보가 부족한 쪽에 속하게 됩니다. 팬들은 스마트폰의 TV 중계를 틀면 바로 느린 화면을 다시 볼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하는 팬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심판에게는 정작 결정에 필요한 자료가 전혀 제공되지 않는다는 건 큰 문제입니다.”

이런 주장이 프로 스포츠의 최첨단을 달리는 미국에서 나왔다는 건 흥미로운 사실인 동시에 일견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비디오 판독과 관련된 노하우라면 MLS가 보고 배울 사례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은 토론토에 일종의 중앙 비디오판독실과 같은 곳에서 실시간으로 모든 플레이를 체크하며 심판 판정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축구는 특히 심판 판정 하나가 경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종목입니다. 명백한 오심, 핸드볼 파울을 놓치거나 반대로 손이 공에 닿지도 않았는데 잘못 보고 핸드볼 파울을 부는 사례 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경기 가운데 소위 ‘심판이 망쳐버린 경기’들이 있습니다. 이를 두고 팬들은 ‘오늘의 최우수 선수(MoM, Man of the Match)는 심판’이라고 말할 때도 있습니다. 문제가 있어도 어쨌든 심판 또한 경기의 일부인데, 비디오 판독을 도입하면 경기의 재미난 볼 거리 하나가 사라지는 건 아닐까요?

시애틀 선더스(Seattle Sounders)의 라거위(Garth Lagerwey) 단장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비디오 판독이 인간적인 요소를 아예 지워버리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판정을 둘러싼 논란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자, 우선 심판 판정이 (비디오 판독을 통해) 번복됐다고 가정합시다. 이건 훌륭한 기삿거리가 되겠죠? 비디오 판독 결과는 참고 사항일 뿐입니다. 여전히 최종 결정은 심판의 몫입니다. 그렇다면 추가로 판독관들이 상황을 제대로 분석했는지도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공이 골라인을 넘었는지를 확인해 득점 여부를 가리는 골라인 판독기술은 전자 장비를 활용합니다. 여전히 판정이 틀렸다고 항의하려면 기계가 잘못됐다고 욕하는 수밖에 없는 셈이죠. 하지만 지금 논의되고 있는 비디오 판독기술의 성패는 여전히 사람(판독관)이 느린 화면을 보고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렸습니다. 느린 화면에 대한 해석도, 심판의 최종 판정도 여전히 사람의 몫으로 남는 거죠.

세 팀과 비디오 판독 기술을 시험 운영할 때는 판독에 걸리는 시간을 재고, 오심률이 어느 정도 되는지만 측정했을 뿐 경기를 운영하는 심판에게 이를 실시간으로 알리지는 않았습니다. MLS 사무국은 일단 기술이 도입되더라도 판독관의 보고 범위를 제한할 생각입니다. 주관적인 해석을 두고 심판에게 견해를 밝히는 것을 막고, 아주 명확한 사실 여부만을 보고하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스터드(축구화 밑바닥)이 들렸다 / 아니다 (스터드를 들고 들어오는 태클은 상대편을 크게 다치게 할 수 있는 비신사적인 반칙으로 퇴장과 징계의 대상), 반칙 지점이 페널티박스 안이다 / 바깥이다 이런 식으로 제한할 생각입니다. 심판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판독관에게 물을 수 있도록 하긴 하겠지만, 여전히 최종 결정은 주심의 몫으로 남겨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MLS 경기에서 페널티킥이 선언되는 건 보통 한 경기에 한 번도 되지 않습니다. 레드카드가 주어지는 경우도 마찬가지죠. 논란이 되는 장면들까지 합하면 이보다는 여러 번 비디오를 봐야 하겠지만, 비디오 판독 기술을 도입한다고 당장 경기 흐름이 관전에 방해가 될 만큼 끊길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뜻입니다. 아구스는 비디오 판독 기술을 도입해서 심판 판정 자체를 일일이 평가하겠다는 게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여전히 경기의 대부분은 필드 위의 심판진의 재량과 판단에 따라 진행될 거라는 겁니다.

“비디오 판독 기술은 어디까지나 심판 판정을 보좌하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심판을 대체하려는 것도 아니고, 기존 판정을 뒤집는 게 목적도 아닙니다. 심판들의 명성에는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판독 기술이 도입되면 심판들이 내린 최초 판정의 정확도가 상당히 높다는 걸 팬들도 알게 될 테니까요.”

프로축구 심판 협회의 왈튼(Peter Walton)의 말입니다.

MLS 내의 감독, 코치들은 물론 심판들도 비디오 판독 기술 도입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대개 경기 흐름을 지나치게 끊지 않는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찬성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아구스는 말합니다.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경기위원회로 걸려오는 각 팀의 항의 전화가 얼마나 많은 줄 아세요? 주말 경기를 하나하나 복기하며 이 판정이 잘못됐다, 저 심판은 여기서 또 우리 편에게 재를 뿌렸다는 둥 정말 전화 많이 받거든요. (비디오 판독 기술을 도입해) 판정이 더욱 정확하고 공정해지면, 각 팀의 불만도 줄어들 겁니다.”

심판들도 더 정확한 판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받는 일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왈튼은 비디오 판독 기술이 심판의 역량을 검증하고 깎아내리는 데 쓰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금껏 경험상 대부분의 경우 심판 판정이 옳았습니다. 오심이 번복돼 심판이 비난받고 위축되는 용도로 쓰이기보다는 심판의 정확한 판정을 재확인시켜 심판의 권위를 높이는 기술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라거위 단장은 일부 팬들의 불만도 이내 사그라들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미국의 스포츠 팬들은 비디오 판독에 이미 충분히 익숙합니다. 다른 여러 종목에서 이미 비디오 판독이 도입됐으니까요. 결국 이 기술이 축구 경기에 공정성을 더하고 흥미로운 요소가 된다는 걸 이해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겁니다.”

MLS 사무국은 독자적으로 기술을 도입할 수 없습니다. 축구 규정에 관한 변화라면 피파의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피파는 전통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데 반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축구는 어디서나 똑같은 축구여야 한다는 의견은 규정에서도 똑같이 적용돼 왔습니다. MLS의 계획에 관해 의견을 묻는 <가디언>의 질문에 피파 대변인은 공식 축구 규정을 참고하라고 일러줬습니다. 주심이 판정을 번복할 수 있는 건 오직 경기장 위의 부심과 상의한 후에만 가능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규정을 관장하는 단체는 피파로부터 권한을 위임 받은 국제축구위원회(International Football Association Board, IFAB)입니다.

MLS는 네덜란드 축구협회와 손을 잡고 피파를 설득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축구협회도 비디오 판독 기술을 도입하려 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국제축구위원회에 판독 기술의 효과를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고, 위원회는 네덜란드 축구 협회에 내년 2월 몇몇 데이터를 보충하고 사례를 추가해 다시 한 번 설명회를 열어달라고 부탁한 상태입니다.

MLS와 심판 협회는 피파와 국제축구위원회가 네덜란드 축구협회의 계획을 일언지하에 묵살하지 않고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한 점은 고무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피파의 다른 일처리 속도를 고려할 때 변화는 상당히 더디게 올 공산이 큽니다. 왈튼과 아구스는 내년 중에 비디오 판독 기술을 실제 경기에 도입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피파가 실제로 경기에 적용해 봤더니 효과가 어떻더라, 데이터가 이렇더라고 말하고 싶다면, MLS 혹은 미국의 다른 축구 리그가 얼마든지 실험 대상이 될 준비가 되어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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