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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트리피케이션은 인권 침해인가?

*옮긴이: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고급주택화라고 번역해주는 사전도 있지만, 단지 건물이 좋아지고 땅값이 오르는 걸 넘어 기존에 살던 주민들이 급등한 집세, 생활비를 견디지 못하고 살던 곳에서 반강제로 쫓겨나는 현상을 일컫는 사회적, 사회학적 용어이기 때문에 그냥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썼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반대하는 사회 운동의 발상지로 미국 뉴욕 브루클린(Brooklyn, New York)만한 곳이 또 있을까요? 오랫동안 브루클린은 젠트리피케이션이 끝없이 일어난, 젠트리피케이션의 대명사였습니다. 지금도 브루클린 곳곳에서는 치솟는 임대료를 규탄하는 상점들의 팻말, 문구를 볼 수 있습니다.

마을, 지역 단위의 공동체들의 전국 연합인 “도시를 향한 우리의 권리(Right to the City)” 본부도 이곳 브루클린에 있습니다. 지난 2007년부터 이 단체는 “젠트리피케이션, 특히 저소득층 유색인종들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현상”과 부단히 싸워 왔습니다. 다른 사안에 있어서는 저소득층의 삶에 따뜻한 관심을 갖고 소득 불평등을 문제로 생각하는 사람들 가운데 젠트리피케이션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고 별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마치 젠트리피케이션을 좀 비싼 까페가 들어서서 허세 가득한 바리스타가 라떼 값을 좀 올려 받는 정도의 불편함으로만 여기는 식이죠. 물론 현실은 이보다 훨씬 엄혹합니다. “도시를 향한 우리의 권리”는 이런 잘못된 선입관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커피값은 비할 바가 안 되는 중요한 가치가 걸린 문제라는 게 이들의 주장입니다. 이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은 인권 침해라고 잘라 말합니다.

젠트리피케이션도 제법 광범위한 개념인데, 인권(human rights)까지 끌고 들어오다니 머리 아프시다고요? 최대한 명료하게 개념을 정리해보도록 합시다. 젠트리피케이션이 뭐길래 인간이 누려야 할 가장 기초적인 권리마저 해친다는 걸까요?

먼저 인권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강대국 지도자들은 홀로코스트와 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원칙을 세웁니다. 그 결과 태어난 것이 1948년 프랑스 파리 샤요궁(Palais de Chaillot)에서 발표된 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입니다. 여기에는 교육 받을 권리, 병에 걸렸을 때 치료받을 권리, 고문을 당하지 않을 권리 등이 담겨있죠. 그런데 어디에도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단어는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는 이 단어가 사전에도 없었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그로부터 20년 후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라스(Ruth Glass)가 처음 쓰는데, 글라스는 젊은 예술가들이 런던 시내에 사실상 버려지고 방치된 지역에 모여들기 시작하는 현상을 일컫는 데 이 용어를 썼습니다. 그때만 해도 젊은 예술가나 모험적인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 게 당연한 공식처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이후 도시가 변화하고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데 영향을 미치는 더 근본적인 원인, 동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지리학자 닐 스미스(Neil Smith)는 1986년 <도시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of the City)>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젊은 예술가들을 비롯한 개척자들이 모여드는 곳은 우연히 정해지는 게 아니라 대개 부동산 회사나 은행, 정부, 자본이 그렇게 되도록 유도해놓은 곳이 많다.”

즉, 젠트리피케이션은 정부기관과 민간 자본이 부동산 개발자들에게 많은 이윤이 돌아가도록 체계적으로 짜놓은 각본에 따라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이는 “도시를 향한 우리의 권리” 같은 단체에게 아주 중요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합니다. 지방 정부도 낙후 지역이 재개발됐을 때 세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개발자들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고 이들은 주장합니다. 결국 치솟는 임대료, 집세를 감당할 수 없어 주거지, 일터를 옮겨야 하는 세입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봅니다.

프랑스 사회학자 앙리 레페브르(Henri Lefebvre)의 논문 <Le droit à la ville> 제목을 영어로 옮긴 것이 현재 단체의 이름입니다. “도시를 향한 우리의 권리”는 돈이 없어 쫓겨날 처지에 놓인 주민들 모두에게 사실은 내가 살던 곳에 계속 살면서 공동체의 정치적, 문화적 삶을 계속 영위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UN의 인권 선언에도 “주거지(home)에 대한 침해”에 맞서 이를 지킬 권리가 있다고 써있다는 겁니다.

“주민들이 원래 집에 계속 살 수 있는 권리 뿐 아니라 마을을 이루고 공동체를 꾸리는 역할도 지역 주민들에게 맡겨져야 합니다.”

처음 이 전국 연합에 가입한 단체들은 대개 브루클린과 뉴욕시의 활동가들과 샌프란시스코, LA 등 값비싼 대도시에서 일하는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젊은 직장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몇 년 새 중소도시에서 꾸려진 단체들도 연합에 가입했습니다. 전국 연합 측도 젠트리피케이션은 대도시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에 대한 인식을 심는 데서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인권 침해라고 하는 게 과장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는 걸 알리는 데 힘을 쏟고 있죠. 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이 나쁘다, 혹은 위험하다는 사회적 합의는 없습니다. 실제로 젠트리피케이션을 적절한 개발을 통해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부동산 투자는 대개 다른 경제적 투자를 끌어들입니다. 일자리가 늘어나고 각종 인프라도 덩달아 좋아지면 해당 지역의 저소득층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사회학자 패트릭 샬키(Patrick Sharkey)는 1970~1990년 흑인들이 모여살던 동네에 점점 백인들이 정착하면서 나타난 변화를 연구했습니다. 연구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 좋은 동네에 살아서 감내해야 했던 문제가 줄어들면서 특히 (저소득층) 흑인 어린이들이 혜택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더 부유해지는 동네에 머물 수 없어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헌터대학(Hunter College)에서 도시계획을 가르치는 토마스 안고티(Thomas Angotti) 교수가 지적하는 것도 바로 그 점입니다.

“삶의 터전을 등지고 떠난 사람들까지,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주장은 대개 묵살돼 왔습니다.”

“도시를 향한 우리의 권리”는 이를 바로잡고자 합니다. 저소득층 가족이 지역 공동체로부터 유리될 경우 교통비가 더 들고, 출퇴근이 어려워져 일자리를 잃고 소득이 줄어들 확률이 높아지며, 아이들도 학업 성적이 떨어지거나 학교를 다니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나마 있던 삶의 터전마저 빼앗기면 상황이 더욱 악화된다는 뜻입니다. 전국 연합은 전국 각지를 돌며 일종의 “세입자 전국 회의”를 잇따라 개최할 계획입니다. 특히 저소득층 유색인종들이 돈이 없어 공동체로부터 내쳐지는 것을 방지하는 정책을 입안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는 게 목표입니다. 이는 또한 뚜렷한 성공을 거둔 사회 운동이 소득 불평등이나 인종차별 문제를 부각시키는 데 썼던 방법이기도 합니다. (The Atlan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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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퍼민트에서 주로 세계, 스포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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