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메이플 시럽을 빼돌리려던 사건 이후 생산자 연합은 퀘벡에 대규모 창고를 짓고 본격적으로 “전략적 비축분”을 관리하기 시작합니다. 규정에 따라 생산자들로부터 메이플 시럽을 전량 사들인 뒤 가격 추이를 봐가며 이를 판매하는 겁니다. 시럽을 쌓아놓는 창고로 쓰이기 전에 가구 공장이었던 이곳에는 시럽 향이 가득합니다.
매년 봄철 수확 시기가 지나면 갓 만든 햇시럽이 270kg들이 통에 담겨 속속 도착합니다. 연합의 검사관은 각 통마다 표본을 뽑아 품질을 검사하고 등급을 매깁니다. 등급이 정해진 시럽은 살균 처리돼 생산자 연합의 표준 철제 드럼통으로 옮겨지고, 전 세계로 판매됩니다. 시럽을 갖고 사탕을 만드는 회사든 시럽 자체를 자체적으로 디자인한 통에 담아 만드는 회사든 퀘벡산 메이플 시럽을 사려면 오직 생산자 연합하고만 거래해야 합니다.
가격을 적정선에서 유지하는 것이 연합의 가장 중요한 임무입니다. 그래서 생산자 연합은 생산자 7,400명에게 생산 할당량을 비교적 엄격히 적용합니다. (퀘벡에 있는 농장에 소비자들이 직접 방문해 소매용 작은 들이로 사 가는 시럽은 예외) 또한, 생산량이 목표치를 초과한 경우에는 시럽 일부를 전략적 비축분으로 돌려 공급량을 일정하게 유지합니다. 시장에 시럽 공급량이 부족할 때는 비축해둔 시럽을 풀어 가격이 지나치게 오르는 걸 막기도 합니다. 2000년대 중반 5년 연속 작황이 좋지 않아 2008년 들어 사실상 비축분이 거의 동이 나자, 생산자 연합은 비축 물량을 더 늘렸습니다. 현재 퀘벡 지역 메이플 시럽 생산자 연합이 쌓아둔 메이플 시럽은 약 2만7천 톤에 이릅니다.
전 세계 생산량의 70%를 담당하는 지역의 생산자들이 모여 판로를 단일화했으니, 가격 협상에서 퀘벡 생산자 연합은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이런 종류의 생산자 연합은 특히 무역 협상이 벌어지는 세계 시장에서는 종종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하는데,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을 맺는 과정에서도 캐나다 정부는 유제품, 가금류 생산자들의 독점적 지위를 보장해주는 이런 카르텔의 영향력을 줄이라는 요구를 끊임없이 받고 있습니다.
미국 회사들을 포함한 메이플 시럽 구매자들도 퀘벡 생산자 연합의 전략에 불만이 있습니다. 공급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건 다행이지만, 가격을 계속해서 독단적으로 올리거나 생산, 유통 시스템을 지키지 않은 농부, 생산자들에게 많은 벌금을 물리거나 시럽을 압수해가는 건 지나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횡포에 가까운 이런 규제가 계속되면 생산자들이 근처 다른 주로 옮겨갈 수도 있다는 것이죠. 또한, 계속 오르는 가격에 소비자들이 메이플 시럽을 외면할 우려도 있습니다. 구매자 연합 측 변호사인 몬트리올의 아일윈(Antoine Aylwin)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닭고기를 안 먹는 날은 아마도 오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메이플 시럽은 달라요. 너무 비싸지면 메이플 시럽을 대체할 만한 것들이 충분히 있으니까요.”
호지 씨는 2009년 생산자 연합이 (연합의 유통 체계를 통하지 않고) 온타리오주에 있는 구매자에게 직접 메이플 시럽을 판매했다는 이유로 벌금으로 약 2억 5천만 원(27만 8천 캐나다 달러)을 부과했을 때 말 그대로 충격에 빠졌습니다. 호지 씨의 연 매출이 보통 4,600만 원(5만 캐나다 달러) 정도입니다. 이 가운데 절반은 펌프 돌리는 데 쓰는 전기세, 건조기 돌리는 데 필요한 연료값으로 나갑니다.
“그 돈이 어느 정도냐면, 제 산에 있는 나무들에서 만든 시럽을 5년 동안 팔아야 모을 수 있는 돈이에요. 비용은 제하기도 전에 매출이 그 정도란 말이죠. 당연히 그런 돈을 벌금으로 낼 길이 없죠.”
호지 씨는 사실 생산자 연합이 생산량을 할당하고 단일화된 유통 시스템을 구축했을 때도 이를 지키지 않고 그때까지 해오던 대로 온타리오주에 있는 고객에게 시럽을 팔았죠. 한동안 그 사실을 생산자 연합에 들키지 않았지만, 2008년 임대했던 땅 일부가 새 주인에게 팔리면서 새 주인이 이 땅에서 메이플 시럽이 생산된다는 사실을 연합에 알리면서 모든 게 밝혀졌습니다. 호지 씨는 하루아침에 배신자, 범법자로 전락했습니다.
호지 씨는 특히 시럽 생산량을 제한하는 전략이 퀘벡의 주요한 산업 가운데 하나인 메이플 시럽 업계 전체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구매자들 처지에선 미국 버몬트주나 캐나다의 다른 주에 가서 메이플 시럽을 사는 게 훨씬 수월하고 값도 싸요. 생산자 연합이 하는 일 중에 메이플 시럽을 널리 알리는 일 같은 건 저도 적극적으로 지지합니다. 그런 일이라면 kg당 250원쯤 하는 회원비도 기꺼이 낼 수 있어요. 하지만 생산량을 강제로 제한하는 건 정말 어리석은 일이란 말입니다. 기본적으로 내가 생산한 걸 사겠다는 사람이 있는데도 못 팔도록 막는 건 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요. 내 돈 내고 산 땅에서 내가 돈 들여 산 기계로 힘들게 일해서 생산한 시럽이 여기 있어요. 이걸 팔고 얻은 이익 중에 나라에 내야 하는 세금이 있다면 그것도 꼬박꼬박 낼 거예요. 그런데 왜 내가 내 시럽을 팔지도 못하게 하는 겁니까?”
호지 씨의 이런 주장을 생산자 연합 측에 전달하자 트레파니에르 사무총장은 짜증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트레파니에르 사무총장은 생산자 연합을 좀처럼 카르텔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석유 수출국 기구 오펙(OPEC)에 자신들을 비유했고, 오펙이 와해할 조짐을 보이는 이유가 산유국들이 합의한 생산량을 전혀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호지 씨 같은 사람 말고) 다른 생산자들이 연합에 하는 이야기도 듣고 판단할 사안입니다. 일단 대다수의 생산자는 현재 시스템에 전적으로 만족하고 있어요. 그분들 입장에선 이렇게 보일 수 있는 거죠. ‘나는 규칙을 지켜가며 협조하는데, 왜 누구는 얌체같이 규칙을 어기고 혼자 더 많은 이득을 취하려 하는 거지?’ 다른 생산자들도 그들처럼 우리가 만든 법을 지켰으면 하는 게 그들의 바람이고, 생산자 연합은 그걸 실행에 옮기는 것뿐이죠.”
트레파니에르 사무총장은 호지 씨 등 생산자 연합의 규정을 어기는 사람들을 과속운전하다 교통경찰로부터 범칙금을 뗀 사람들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범칙금을 내면 될 일을 계속 버티다가 일을 크게 만드는 거예요. 제때 벌금을 안 내니 연체료가 쌓여 벌금이 불어나고, 결국 이들은 내야 할 돈이 지나치게 많다고 법원이 판결을 내려주기만을 바라죠.”
현재 생산자 연합에서 조사하고 있는 규정 위반 사례는 400여 건 정도입니다. 정기적으로 검사관이 슈퍼마켓을 돌며 물건을 점검합니다. 생산자 연합을 통해 가게나 슈퍼마켓에 판매한 양보다 특정 브랜드 시럽이 많이 진열돼 있을 경우 즉시 조사에 착수합니다. 규정을 어긴 생산자들에게 부과한 벌금은 총 100만 달러에 육박합니다.
호지 씨는 아직 벌금을 내지 않았습니다. 생산자 연합은 호지 씨가 주 정부에 낸 농업세 가운데 일부를 징수해갔고, 호지 씨가 내야 할 벌금은 약 1억 원(11만 5천 캐나다 달러)으로 줄었습니다. 하지만 이와 무관하게 호지 씨가 법정 비용으로 쓴 돈만 벌써 2천만 원에 육박합니다. 게다가 호지 씨 농장을 감시하는 경호원들 인건비도 연합에서는 나중에 규정을 어긴 생산자에게 부과합니다. 호지 씨는 이 비용도 거의 4천만 원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주 금요일까지 합의가 안 되면 난 이제 더는 시럽 생산 안 할 겁니다. 아직 저나 다른 생산자들이 연합에 완전히 굴복한 건 아닙니다. 아직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았어요.”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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