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메이플 시럽 업계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1)
2015년 8월 24일  |  By:   |  경제, 세계  |  No Comment

로버트 호지(Robert Hodge) 씨의 일터는 캐나다 퀘벡주 버리(Bury)라는 마을의 숲속 한가운데 있는 낡은 오두막 작업장입니다. 1만 2천여 그루 단풍나무에서 수액을 뽑아내는 플라스틱 파이프라인은 모세 혈관처럼 온 숲을 이어 오두막까지 수액을 배달합니다. 작업장에는 삼투 현상을 이용해 수액을 분리해내는 펌프가 있고, 추출된 용액을 증발시키는 트럭 만한 건조기도 있습니다. 이 과정을 거쳐 수액을 졸여내면 메이플 시럽이 됩니다. 그런데 호지 씨의 작업장에는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메이플 시럽을 생산하는 작업장인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생산된 메이플 시럽이 보이지 않는 겁니다.

사실 이상한 점이 하나 더 있는데, 아무리 봐도 농장 사람이 아닌 것 같은 경호원들이 농장 전체를 감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퀘벡 지역 메이플 시럽 생산자 연합(Fedaration of Quebec Maple Syrup Producers)에서 고용한 경호원들로, 벌써 몇 주째 호지 씨의 농장을 감시해 왔습니다. 얼마 전에는 한해 생산량과 맞먹는 메이플 시럽 9,180kg을 압류하기도 했습니다. 시가로 따지면 약 5,500만 원(6만 캐나다 달러)이나 되는 양입니다. 생산자 연합은 지역 내 모든 메이플 시럽 생산업자들이 연합에서 통일한 시스템에 따라 생산, 판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호지 씨처럼 이를 어기는 업자들의 개인행동을 막아서고 있습니다.

“내가 한참 젊은 나이였으면 당장 장비 다 싸 들고 남쪽으로 내려가서 미국으로 망명해버렸을 거요.”

올해 68살인 호지 씨는 단호히 말합니다.

많은 미국인은 메이플 시럽의 주산지로 버몬트(Vermont)주를 떠올리지만, 버몬트주를 비롯한 미국 북동부 지역에서 나는 메이플 시럽 생산량은 퀘벡 지역의 생산량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전 세계 메이플 시럽의 70%가 퀘벡 산이니까요. 퀘벡 지역 메이플 시럽 생산자 연합이 업자들을 한데 모아 생산량을 조절해 가격을 관리하려고 하는 것도 이런 엄청난 생산량이 뒷받침되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카르텔(cartel)이나 다름없는 생산자 연합은 지역 정부의 인준을 받고 법에 의해 권한이 보장된 조직이기도 합니다. 1990년에 퀘벡 지역에서 나는 모든 메이플 시럽이 생산자 연합을 거쳐 도매 시장에 납품되도록 하는 규정이 마련됐고, 2004년에는 아예 누가 얼마만큼을 생산할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까지 주어졌습니다. 지난 2012년 생산자 연합이 관리하던 메이플 시럽 비축량 가운데 무려 200억 원어치를 빼돌리려던 사건이 발생한 뒤 연합은 더욱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생산자 연합이 생산량, 가격을 통제하고 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방식에 불만을 나타내는 생산자들이 없지 않습니다. 연합은 연합이 규정한 생산 체계를 통하지 않고 시럽을 만들거나 파는 것으로 의심되는 생산자들을 (호지 씨 농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경호원을 붙여 감시합니다. 실제로 규정을 어긴 것으로 밝혀지면 벌금을 물리거나 최악의 경우 아예 생산품을 몰수해 가기도 합니다. 호지 씨처럼 불만을 갖고 있는 이들이 없지 않지만, 생산자 연합은 확고합니다. 연합 덕분에 메이플 시럽 가격이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안정적인 생산과 수익이 보장된다는 겁니다.

연합의 사무총장(executive director)을 맡고 있는 트레파니에르(Simon Trépanier) 씨는 연합이 없었다면 캐나다 메이플 시럽 산업 자체가 지금처럼 성장할 수도 없었을 거라고 말합니다.

“많은 생산자가 메이플 시럽 생산을 주업으로 하는데, 이들이 충분한 수입을 올릴 수 있던 건 생산자 연합의 노력 덕분입니다. 실제로 전체 생산자 3/4 이상은 현재 시스템에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예년 같았으면 지금쯤 호지 씨는 생산한 메이플 시럽을 모두 팔고 다른 가축이나 작황에 신경 쓰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올해는 아무것도 못 팔고, 생산한 시럽은 전부 다 생산자 연합에 압수당했습니다. 호지 씨는 농부들이, 생산자들이 원하는 값을 받고 원하는 소비자에게 메이플 시럽을 팔 수 있도록 허락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연합 쪽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배신자(rebels)라고 불러요. 우리가 설탕 전쟁을 일으킨다느니 어쩌느니 말도 많이 만들어내죠.”

퀘벡 지방에서 단풍나무 수액을 빼내 끓이고 졸이는 일은 전통적으로 값비싼 설탕의 대체재인 시럽을 얻기 위해서만 했던 무척 고된 일이었습니다. 퀘벡에서 사과, 블루베리, 사탕단풍 과수원을 운영하는 베노아 파예(Benoit Faille) 씨는 어렸을 때인 1960년대 초반 나무마다 받쳐놓은 수액 통을 아버지와 함께 하나하나 비우며 확인하던 일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땐 우유 통에 수액을 담았거든요. 졸인 수액을 담아놓은 통을 트럭에 싣고 그 통들 사이에 앉아있으면 밤에도 춥지 않았던 기억이 나요. 그 단풍 시럽 향도 잊을 수 없죠.”

1970년대 들어 플라스틱 파이프라인을 나무에 꽂아 수액을 채집하는 기법이 개발됩니다. 이제 농부들은 훨씬 더 많은 나무에서 수액을 모아 시럽을 생산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생산량이 바로 비약적으로 늘어나지 않았던 건 몇 가지 걸림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그해 날씨를 예측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수액을 채집할 수 있는 기간은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오는 딱 그 시점부터 완연히 따뜻해지기 전까지 짧은 시간에 국한돼 있습니다. 플라스틱 파이프라인 기술과 관계없이 날씨는 여전히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변덕스러웠고, 단풍나무 수액 채집량도 들쭉날쭉했습니다.

이런 불확실성에서 오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일부 생산자들이 협동조합을 꾸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매년 가격 변동을 시장의 결정에 맡겼습니다. 즉, 여전히 가격은 구매자들의 수요에 크게 좌우됐던 겁니다. 수액을 많이 얻어 시럽을 평소보다 더 많이 생산한 해에는 공급이 초과해 가격이 낮아졌습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원하는 양은 정해져 있고, 나머지 재고는 고스란히 생산자들에게 빚으로 돌아왔습니다.

생산자 연합은 2003년 이런 판매 메커니즘을 근본적으로 바꿨습니다. 생산자 연합 회원들인 시럽 생산 농민 다수가 판매량을 자발적으로 제한하고, 유통 경로를 연합 혹은 연합이 지정한 판매자를 통해서만 하는 것으로 단일화하기로 결의한 것입니다. 새로운 시스템 아래서 시럽 가격은 이듬해 바로 30% 가까이 올랐습니다. 이제 시럽 생산자들은 다른 일거리 없이 시럽만 생산해도 먹고사는 데 필요한 충분한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됐습니다.

“비로소 시럽을 생산하는 게 하나의 산업이 되었다고 할 수 있죠. 제가 아는 사람 중에 4만5천 그루에 파이프를 꼽아 수액을 모으고 그걸로 시럽을 만드는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 직업은 메이플 시럽 생산자죠. 그게 다예요. 전에는 (시럽 생산이) 한철 일거리였는데, 이제는 전업 시럽 생산자가 된 거죠.”

생산자 연합의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한 파예 씨의 말입니다. 동생과 함께 시럽을 생산해온 파예 씨는 집안에 대를 이어 시럽을 생산하겠다는 자식들이 없어 농장 경영을 맡길 사람을 찾고 있는데, 단풍나무 시럽뿐 아니라 사과, 블루베리 농장도 한데 묶어 팔려고 합니다. 메이플 시럽 생산자가 되겠다는 사람은 많은데, 사과나 블루베리 과수원까지 같이 사는 건 어떻겠냐고 물으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난색을 표한다는 겁니다.

“메이플 시럽 만드는 데 필요한 단풍나무 과수원만 팔 생각이었으면 벌써 계약서에 도장 찍고도 남았을 겁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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