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오늘 무얼 했는지, 3년 전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진다면, 얼마 전까지는 책장 속 일기장을 꺼내어 봐야 했습니다. 일기장에 하필 오늘 날짜에 대한 기록이 없으면 잘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야 했죠. 하지만 이제는 여러 사이트와 앱들이 궁금하지 않은데도 끊임없이 몇 년 전 오늘 있던 일이라며 자꾸 이것저것 상기시켜 줍니다. 이런 서비스는 물론 내가 개인 정보와 각종 활동을 소셜미디어나 사이트에 기록해둔 덕분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런 정보를 맡겨둔 대가로 제공되는 다소 찜찜한 서비스이기도 합니다.
페이스북과 구글이 해온 소위 이용자 맞춤형 광고는 모두 사생활,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걸 감수한 대가로 얻은 편리함이었습니다. 내가 나눈 대화가 기록되고 어떤 물건을 어디서 얼마에 샀는지 그 정보가 남아있으면, 그 기록과 정보를 토대로 내가 사고픈, 혹은 살 만한 물건, 서비스가 나에게만 맞춤형 광고로 떴으니까요. 좋은 말로 하면 이용자가 원하는 걸 알아서 선보이는 “유저프렌들리”지만, 내가 무얼 원하는지 이미 알고 있는 빅브라더의 모습 같아 오싹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맞춤형 광고는 사람들이 점점 광고 자체를 차단하다 보니 그 효용이 자꾸 떨어졌습니다. 기업들도 너무 티나지 않게 고객들의 데이터를 모으기 위한 방법을 늘 고민하죠. 그 결과 추억을 상품화하는 방법이 등장한 겁니다.
기술적으로는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소셜미디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사진을 남기고, 기분을 적어둔 여러 기록들을 갖고 있다가 “작년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세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이따금씩 띄워주면 되는 겁니다. ‘시간 여행’이라는 뜻의 앱 서비스 타임홉(Timehop)이 제공하는 것도 이 단순한 알고리즘에 기반한 우리의 추억들입니다. 몇 년 전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내가 올렸던 사진과 글들을 다시 보여주는 서비스는 지금 당신이 소셜미디어에 쓰는 글도 데이터로 저장했다가 내년 오늘 당신에게 알려줄 겁니다. 추억을 끄집어내는 서비스가 큰 호응을 얻자 페이스북은 지난 3월 뉴스피드에 “00년 전 오늘(On this day)” 기능을 선보였습니다. 웹하드 서비스인 드롭박스도 보관된 사진을 주 단위로 정리해 보여주는 “플래시백(Flashback)”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글을 쓰고 드롭박스에 파일과 사진을 보관하는 건 서비스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혹은 서비스가 주는 편리함에서 얻는 효용이 더 크기 때문에 신뢰하지는 못해도 그 찜찜함을 덮고 넘어가는 것이겠죠. 페이스북과 드롭박스와 같은 기업들은 고객의 신뢰를 토대로 모은 데이터를 갖고 추억을 상품화했습니다.
친한 친구가 한 번은 자기가 다른 친구에게 줬던 재밌는 선물에 관한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습니다. 친구의 방에 들어가서 몰래 일기장을 훔친 다음 그 일기장을 정성스레 포장해 당사자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줬다는 겁니다. 지금 기업들이 하는 것도 비슷한 일 아닐까요? 작년 오늘 일어난 일을 친절하게 상기시켜주는 글들은 기업들이 우리는 언제든 너의 일기장을 훔쳐가고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걸 상기시켜준다는 의미에서는 오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맞춤형 광고가 그랬듯 편리할 뿐 아니라 감정에 호소하는 이 유용한 기능을 쉽사리 물리치지 못하죠. 특히 스스로에게 일어났던 일, 당시의 감정 등에 필요 이상으로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우리는 이를 물리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게다가 저는 빅브라더의 음모가 어떻다고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추억을 회상하는 포스트, 서비스를 열심히 이용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저는 페이스북과 드롭박스를 유용하게 쓰고 있고, 타임홉에는 아예 제 트위터 계정을 연동시키기도 했습니다. 만약 달리기를 하면서 매번 기록을 온라인 어딘가에 적어뒀다면, 누군가 기록이 단축되는 추이를 보여준다면 편리하고 좋긴 할 겁니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당신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허락한 범위 안에서 계속 당신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야 합니다. 편리한 서비스든, 행복했던 기억을 되살려주는 시의적절한 글이든 한 가지 분명한 건 기업들이 그 서비스를 순전히 고객을 위해서 하는 건 결코 아닙니다.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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