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문화세계

젠더 고정관념을 깨뜨린 여덟 편의 광고 (1)

유리는 훌륭한 재료입니다. 창문, 꽃병, 안경, 구슬과 같은 멋진 물건들을 만들어내죠. 하지만 “유리 천장”이라는 말은 유리의 멋진 이미지를 완전히 망가뜨렸죠. 칸느 광고제에서 “유리사자상”을 신설한 것은 어쩌면 유리의 이미지를 다시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이 상은 젠더 고정관념을 깨뜨린 광고에 주는 상이니까요.

이상적인 광고란 문화를 풍성하게 하고, 대중의 마음을 읽어내며, 시대를 포착하는 기능을 합니다. 하지만 광고 속 젠더 이미지는 현대인들의 의식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운동도 하고, 다리털을 밀지 않기도 하며, 트림도 하고, 누군가의 상사이기도 한 여성이 광고 속에서는 여전히 요구르트 하나에 까르르 넘어가고 초콜릿 하나에 이성을 잃는 존재로 묘사되니까요. 광고 속 세계는 엄연히 우리 사회의 구성원인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의 존재가 아예 사라진 곳이기도 합니다. 대신 언제나 멋지게 면도기를 휘두르고 맥주를 마시며 모든 걸 가진 남자는 지나치게 많이 등장하죠. 모든 광고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유리사자상”의 등장 자체가 광고 속 젠더 고정관념이 얼마나 단단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반증일 겁니다. “유리사자상”의 등장을 기념해 가디언이 이 상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춘 과거의 광고 8편을 꼽아보았습니다.

(1) 1980년대에 광고계에서 전성기를 누렸던 생리대 회사 바디폼은 2012년 한 남성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대한 답변을 광고로 만들었습니다. 여성 CEO가 직접 등장해서 암벽 타기와 승마를 즐기는 광고 속 여성은 현실이라기보다 일종의 비유였다며 “즐거운 생리기간”이란 건 없다고 고백하면서, 그 동안 소비자들을 기만한 것에 대해 사과합니다. CEO는 생리대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푸른색 액체를 컵에 따라 마신 후, 방귀를 뀌고는 “아, 여자들도 이런답니다. 알고 계셨죠?”라며 마지막 한 방을 날리죠. 스스로가 만든 “생리대 광고 속 여성상”을 완벽하게 무너뜨린 광고입니다.
광고보기

(2) 2011년 호주에서 결혼 평등 캠페인 광고로 만들어진 영상입니다. 2분 가까이 한 사람의 시각에서 자신의 연인인 한 남성을 따라가죠.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데이트를 하고, 함께 친구를 만나고, 식사를 하고, 싸우기도 하고, 여행을 떠나기도 하는 평범한 연인의 모습이죠. 광고의 끝 부분에서 이 남성이 반지를 내밀며 청혼을 하는 순간 카메라 앵글이 바뀌고, 그제서야 관객은 시선의 주인공 역시 남성이었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광고보기

(3) 카메라 앞에서 “여자애처럼 뛰어볼래요?”라는 말에 성인 남녀와 소년은 우스꽝스럽게 뒤뚱거리는 뜀박질을 선보입니다. 그러나 실제 어린 “여자애”들에게 같은 주문을 했을 때, 소녀들은 그저 열심히 달릴 뿐이죠. “‘여자애처럼’이라는 말이 무슨 뜻이라고 생각했나요?”라는 질문에 소녀는 “잘 모르겠어요.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뛰라는 말 아니에요?”라고 반문합니다. “여자애처럼”이라는 말에 담긴 부정적이고 비하하는 듯한 의미를 꼬집은 이 캠페인 영상은 2014년 슈퍼볼에서 상영되었습니다.
광고보기

(4) 남성용 헤어스타일링 제품인 링스의 광고입니다. 젊은 남성들에게 머리가 다 빠지기 전에 다양한 헤어스타일에 도전하고, 밖으로 나가서 인생을 즐기라고 부추기는 내용의 광고죠. 얼핏 보기에 전형적인 남성용 미용 제품 광고처럼 보이는 이 영상에는 약간의 트위스트가 있습니다. 인생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로, “가장 예쁜 여자, 또는 가장 잘 생긴 남자와 키스도 하세요”라는 나레이션이 깔리면서, 남자 주인공이 아무렇지도 않게 남자와 키스하는 장면이 지나가니까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듯이요.
광고보기

2편 보기

원문전체보기

eyesopen1

View Comments

  • 고백하건데 전 아직 동성간의 결혼과 키스 장면은 견디기 힘듭니다. 마치 누에를 쌈싸먹는 부족을 대하는 느낌입니다. 그걸 먹는걸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나한테 먹어보라고 한다면 한사코 거절 할거 거든요.

Recent Posts

[뉴페@스프] “응원하는 야구팀보다 강한” 지지정당 대물림… 근데 ‘대전환’ 올 수 있다고?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2 일 ago

[뉴페@스프] ‘이건 내 목소리?’ 나도 모를 정도로 감쪽같이 속였는데… 역설적으로 따라온 부작용

* 비상 계엄령 선포와 내란에 이은 탄핵 정국으로 인해 한동안 쉬었던 스브스프리미엄에 쓴 해설 시차발행을…

4 일 ago

살해범 옹호가 “정의 구현”? ‘피 묻은 돈’을 진정 해결하려면…

우리나라 뉴스가 반헌법적인 계엄령을 선포해 내란죄 피의자가 된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는 뉴스로 도배되는 사이 미국에서…

5 일 ago

미국도 네 번뿐이었는데 우리는? 잦은 탄핵이 좋은 건 아니지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 투표가 오늘 진행됩니다. 첫 번째 투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집단으로 투표에…

1 주 ago

“부정 선거” 우기던 트럼프가 계엄령이라는 카드는 내쳤던 이유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와 해제 이후 미국 언론도 한국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사태에 큰 관심을 보이고…

2 주 ago

트럼프, 대놓고 겨냥하는데… “오히려 기회, 중국은 계획대로 움직이는 중”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에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안보…

3 주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