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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가 서울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

샌프란시스코 외곽에서 나고 자란 마이크 김 씨는 이 지역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실리콘밸리가 기술의 첨단을 이끌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페이스북이 부상했고, 주위에 수많은 테크 스타트업이 나타나 세상을 바꿔나가는 걸 목격했죠. 그는 대학 졸업 후 징가, 몬스터닷컴, 링크드인 같은 테크 기업에서 일했습니다.

5개월 전, 그는 한국의 ‘우아한 형제들(Woowa Brothers)’이라는 스타트업에 합류했습니다. 일보다도 그가 놀란 건 서울에서의 삶이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우리가 세계의 모바일 수도라고 믿었어요. 그러나 한국은 적어도 (샌프란시스코보다) 3~4년은 앞서 있어요.” 미국에 있을 때는 공원에서 공공 와이파이를 잡을 수 있으면 다행이었던 데 비해, 한국에서는 지하철에서조차도 무료 와이파이로 영화를 스트리밍해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미국에 돌아가면 암흑시대로 온 것 같아요.”

실리콘밸리가 테크 혁신을 이끄는 가운데 텔아비브, 베를린, 방갈로어 등이 경쟁하고 있으나 그 중 가장 앞서 있는 후보는 단연 서울입니다. 투자자와 벤처캐피탈도 태평양을 건너 한국 시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엑셀레이터 ‘500 스타트업(500 Startup)’은 한국에 투자하기 위한 소규모펀드 ‘500 김치(500 Kimchi)’를 조성했습니다. 지난 가을, 골드만 삭스는 ‘우아한 형제들’에 투자했죠. 5월에는 구글이 아시아 최초로 서울 강남에 캠퍼스를 열었습니다. (네, 강남스타일의 그 강남 맞습니다.)

500 김치를 이끄는 팀 채는 미국의 투자자들은 서울을 미래를 알려주는 마법사의 수정 구슬같은 존재로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합니다. 현금이 사라지고, 차가 사라지고, 무엇이든 주문만 하면 되는 실리콘밸리가 꿈꾸는 미래 사회가 이미 이곳에 있다는 것이죠. 서울 시민이라면 거의 누구나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고 미국에서 이제 나타난 서비스는 한국에서는 자리를 잡은 지 이미 몇 년째 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처럼 사회 곳곳이 기술적으로 앞서 있는 건 20년 전부터 공공 인프라 구축에 굉장한 투자를 해왔기 때문입니다. 서울 전역을 덮고 있는 무료 와이파이 서비스는 전 세계 최고 속도로 미국보다는 평균 두 배 빠릅니다. 1995년부터 한국 정부는 브로드밴드 인프라 구축을 위해 10개년 계획을 세우고 인터넷 보급에 주력했습니다. 서비스 제공자 규제를 풀어 경쟁 환경을 구축한 것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몇몇 통신 사업자가 시장을 독점한 미국과는 상황이 달랐고, 건강한 경쟁 환경은 서비스 가격을 낮췄습니다.

이와 같은 인프라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미래창조과학부는 앞으로도 1조 8천억 원을 투자하여 이동통신망을 개선할 계획입니다. 정부는 2020년까지 와이파이 망속도를 지금보다 1,000배 빠르게 업그레이드해 영화 한 편을 다운로드 받는 데 걸리는 시간을 1초 이내로 줄인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같은 기간 동안 미국의 방송통신위원회는 브로드밴드를(와이파이가 아니라 유선 서비스입니다) 초당 100MB로 업그레이드하는 게 목표입니다. 한국보다 6배 느리죠.

한국은 어떤 측면에서는 이처럼 미래를 앞서나가지만, 디자인 측면에서는 1990년대를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한국의 웹페이지나 모바일 앱은 정보가 빼곡히 들어찬 박스와 서식이 들어간 머리기사, 텍스트를 억지로 쑤셔넣은 모양새입니다.

한국인 스마트폰의 93% 에 설치되어 있는 카카오톡도 마찬가지입니다. 카카오톡은 한국 웹 초기에 성공적인 게임 포탈이었던 한게임을 창업했던 김범수 씨가 개발한 앱으로, 문자 메시지를 대신해서 빠르게 자리 잡았습니다. 카카오톡 성공의 비결은 스마트폰에서 앱이 인터넷처럼 작동한다는 겁니다. 유저들은 앱에서 나갈 필요 없이 그 안에서 뉴스를 읽고,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저녁을 주문하고 게임을 합니다. 그러나 미국인들에게 이 앱의 디자인은 미친 유령의 집에 들어가는 것처럼 생경하게 느껴집니다. 샛노란 배경에 괴짜같은 만화 속 캐릭터로 가득 차있지요.

미국인들은 앱을 디자인할 때 미니멀리스틱에 집착합니다. 실리콘밸리는 스스로 좋은 취향을 가졌다고 자랑하지만, 이는 사실 ‘결핍’에서 온 결과기도 합니다. 통신 상황이 좋지 않은 미국에서는 여러 요소를 첨가하면 로딩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겁니다. 반면 모든 정보와 위젯을 제약 없이 담을 수 있었던 한국의 디자이너들은 굉장히 많은 기능을 구겨넣습니다. 한국인들은 파블릿(폰+태블릿)이라 불릴 정도로 큰 폰을 선호하기 때문에 공간의 제약도 별로 없습니다.

통신 환경의 차이 때문에 한국 개발사가 해외에 진출할 때 앱의 기능을 줄이는 일도 생깁니다. 선샤인(Sunshine)이라는 파일 공유 서비스 CEO 니콜 김은 미국의 열악한 인터넷 상황에 적응해 앱을 재개발해야 했다고 말합니다. 한국이나 홍콩에서 영화나 음악 같은 대용량 파일을 공유하도록 만든 서비스를 미국에서는 디자인파일이나 사업 서류 정도를 공유하는 앱으로 바꿨지요.

설사 기술적인 문제가 없더라도 디자인에 대한 관점이 달라 미국 소비자에게 다가가기가 어렵습니다. 2014년 한국의 메신저 앱 밴드를 미국에 들여오려던 김도윤 씨는 너무 많은 기능이 미국 소비자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대화, 일정 계획, 비디오 파일 공유, 계산서 분배, 설문조사까지 모든 기능이 들어있는 채팅 앱이라는 것을 미국 소비자들은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미국의 앱들은 한 가지 기능에 집중해 그 기능을 아주 잘 구현해야 합니다. 밴드에는 별별 기능이 다 있어서,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이 상품을 보고 어떤 컨셉인지 이해하지 못했죠.” 밴드는 미국 서비스로 보면 그룹미(GroupMe), 벤모(Venmo), 틸트(Tilt), 드롭박스(Dropbox)처럼 따로 나와 있는 상품을 섞어놓은 듯했고, 결국 한국에서만 3천만 고객을 유치했음에도 미국에서는 거의 아무런 반응도 얻지 못했습니다.

실리콘밸리가 한 가지 기능에만 집착하는 건 지난해 히트한 “요(Yo)” 앱의 사례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친구에게 “Yo”(어이, 야, 뭐하니, 안녕 등의 의미)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밖에 안 되는 앱이 말 그대로 하룻밤 사이에 큰 인기를 끌었죠. 150만 달러(18억 원 상당)를 유치하고 이보다 10배 높은 값에 기업 평가를 받았습니다. 멍청하리만큼 단순한 기능 하나밖에 없는 앱이요. 그 후 내가 있는 지역을 보내주는 “Lo”와 약속시간에 늦었을 때 자동으로 메시지를 보내주는 “1minLate(1분 늦어)” 등 비슷한 앱이 쏟아졌습니다. 요의 성공은 수많은 기능보다 중요한 건 참신함이라는 실리콘밸리의 신념을 잘 보여줍니다.

이렇게 한 가지만 잘하는 앱은 “ㅇㅇ를 위한 우버”의 형태로 쏟아졌습니다. 새로운 제품을 소개해주는 프로덕트헌트(ProductHunt)에 있는 리스트를 보면 이발을 위한 우버 “Shortcut”, 술 배달을 위한 우버 “Minibar”, 갓 구운 초콜릿칩 쿠키를 위한 우버 “Doughbies On Demand”, 전용비행기를 위한 우버 “JetMe”, 대마초를 위한 우버 “Eaze”까지 재미있는 리스트가 수십 개 쏟아집니다. 그러나 어떤 서비스도 미국인이 사는 방식을 혁신적으로 바꾸지는 못했지요. 쿠키를 좋아하고 부자이며 대마초를 피는 전형적인 실리콘밸리 사람들 소수만이 대상이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일상의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서비스가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큽니다. 한국에 투자하는 글로벌 벤처캐피탈 회사 굿워터 캐피탈(Goodwater Capital)의 창업자 에릭 김은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에서 문화적으로 동질한 집단이 모여사는 것이 새로운 서비스를 시험해보는 데 이상적인 환경이라고 설명합니다. 한국 인구 5천만 명 가운데 1천만 명이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미국 내 여러 지역에 구현하기 어려운 서비스도 이 도시에서는 쉽게 성장합니다.

당일 배송 정도가 아니라 아이템에 한해 한 시간 내 배송까지 보장하는 이커머스 기업 쿠팡이 좋은 예입니다. 밀집된 라이프 스타일 덕에 배달 문화가 발달했고, 사람들은 집 근처 지하철역에서 퇴근길에 세탁물부터 저녁식사까지 받아가는 데 익숙합니다. 미국인 대부분이 아직도 아마존에서 책을 사는 일에도 적응 중인 것과 비교되죠.

한국의 가장 잘 나가는 스타트업도 실리콘밸리의 거물들에 비하면 작을지 모르나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방법만은 실리콘밸리가 배우고 싶은 것 중 하나입니다. 한국인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이런저런 요금을 내거나 쇼핑 등 크고 작은 결제를 하는 데 익숙합니다. 채팅 앱 스티커 등 1~2 달러짜리 디지털 상품에도 돈을 쓸 가능성이 훨씬 높지요. 라인이나 카카오 같은 채팅 앱이 벌어들이는 수억 달러 수익 가운데 광고 수익은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주 수입원은 스티커, 음악, 게임 등을 팔아 버는 돈입니다.

실리콘밸리는 한국으로부터 전 세계 고객들을 상대하는 법도 배울 수 있을 겁니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은 상품 기획 단계부터 글로벌을 마음에 둡니다. 한국이 작은 시장이라 처음부터 해외로 진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러나 더 저렴하고 접근 가능한 모바일 웹 환경이 나타날 때까지 미국의 창업가들은 과거 속에서 일해야 할 겁니다. 실리콘밸리가 한국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건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정부를 설득해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에 기반한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뉴욕타임즈)

원문보기

David Guttenfelder / National Geographic Creative, for The New York Times

heesangju

샌프란시스코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과 열린 인터넷이 인류의 진보를 도우리라 믿는 전형적인 실리콘밸리 테크 낙천주의자 너드입니다. 주로 테크/미디어/경영/경제 글을 올립니다만 제3세계, 문화생활, 식음료 관련 글을 쓸 때 더 신나하곤 합니다. 트위터 @heesangju에서 쓸데없는 잡담을 하고 있습니다.

View Comments

  • 다른나라의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모바일 환경을 접해보는것도 신선한 경험이겠네요. 좋은 기사번역 감사합니다.

    첫 문단에 오타가 있네요. “샌프란시스코에서 우리가 세계의 모바일 수도라도 믿었어요.” 여기서는 수도라도 라는 표현 대신에 수도라고 라는 표현을 쓰는게 적절할 것 같아요.

  • 본문에서 100메가바이트/초로 업그레이드 하는 게 목표입니다. 한국보다 6배 느리죠-가 정정되었습니다.
    100메가비트/초로 업그레이드 하는 게 목표입니다. 한국의 목표보다 대략 600배 느리죠.

    • 마지막에 뉴욕타임즈가 주석 단 것을 말씀하시는 거죠?
      원래 100 메가비트/초라고 올린 것을 100메가바이트/초로 정정한다고 뉴욕타임즈에서 알린 것으로, 현재 버젼이 맞습니다. (6배 느린 게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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