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궁극적 목적”에 관한 벤다이어그램이 최근 트위터에 돌았습니다. TED 영상 같은 데서 끄집어낸 듯한 단어로 채워져 있었죠.
위의 다이어그램은 사실, 중심 근처 화살표를 닮은 좁은 빈칸을 채우진 못했습니다. 만인을 위하여 대신 제가 채워보았죠:
제 생각에, 그 부분이 빈칸으로 남겨진 이유는 인터넷의 떠들썩한 영역에선 금지된 얘기를 언급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삶의 궁극적 목적을 찾아헤매는 데 뒤따르는 깊은 실망이 그것입니다.
재능을 잘 계발하면 세상이 필요로 할 수도 있지만, 그걸로 돈을 벌지 못한다면 지금 당하는 그 ‘착취(exploitation)’를 받아들이든지 딴 일을 찾아보든지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때 삶의 궁극적 목적이 되리라 믿었던 뭔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세상이 당신의 재능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을 수도 있죠, 애초에 있기나 했다면.
삶의 궁극적 목적을 아우르는 네 가지 요소를 다 갖추는 건 놀랍도록 어려운 일입니다. 시절이 호황일 때조차, 금전적 보상이 뒤따르면서도 사랑할 만한 일을 찾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게다가 소비자의 요구로 돌아가는 경제 체제에선, 세상이 ‘원하는’ 일과 실제 ‘필요로’ 하는 일은 기실 상당히 다릅니다.
자, 그래서 “궁극적 목적” 영역을 쏘아 맞추는 게 힘들다면 모든 노력은 쓸모가 없는 걸까요?
아닙니다. 일단, ‘사랑’하지 않는 일을 수행하는 건 때로 상당한 가치가 뒤따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훌륭하고 필요하고 만족스럽지만 보수를 주지 않는 일은 자원봉사인 동시에 착취입니다. 또한, 동시에, 우리는 밝아 보이기만 하는 “궁극적 목적” 패러다임 저편에 숨겨진 거짓말을 봅니다. 잘 하지도 못하는 일에 자원한다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합니다.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의도치 않은 해를 끼치면서 생각 없는 기쁨을 맛볼 뿐이죠. 단기간의 봉사여행은 그 봉사의 대상이 되는 바로 그 공동체에 부담을 지울 뿐인 것처럼요.
“궁극적 목적”이라는 낱말이 지고 있는 도덕적 무게에서 ‘일’을 해방시킨다면 훨씬 나아질 겁니다. 우리 일의 주관적 요소(유능함, 열정)와 객관적인 요소(필요, 보수)를 하나로 엮기 위한 고난엔 품위가 있습니다. 만일 운이 좋다면,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일에 고용될 것이고 거기에 전력투구함으로써 누군가의 필요도 충족시킬 수 있을 테지요. 이는 충분히 축하할 만한 근거가 됩니다.
우리들 중 능력주의에 바탕한 “궁극적 목적”을 발견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뿐더러, 거기에 도달하는 사람 역시 거의 없습니다. 그게 실패를 의미하진 않습니다. 때로는 ‘보수’ 영역만 지키더라도 성공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일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게 목표인 일용직 근로자들에게는 이것 역시 충분히 진실입니다. 그들의 원칙은 “할 수 있는 몫을 다하라.” 입니다. 일단 우리가 우리 몫을 다한다면, 시원한 물가에서 만나 웃고 떠들며 빨리 퇴근할 얘기를 할 수 있겠죠. 함께 인간다울 수 있다는 것 또한 충분한 “궁극적 목적”이 됩니다. (뉴 리퍼블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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