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세계

영국 총선: 소선거구제 하에서 전체 득표 늘었지만 참패한 노동당

지난주 영국 총선 결과를 두고 보수당(Conservative Party)과 스코틀랜드 민족당(Scottish National Party)의 승리, 그리고 노동당(Labour Party)의 참패라는 신문기사 제목에 이의를 다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밀리반드(Ed Miliband) 노동당 당수는 선거 직후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습니다. 그럼에도 밀리반드와 노동당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결과가 있다면, 지난 2010년 총선에 비해 전체 득표수와 득표율 모두 눈에 띄게 상승했다는 점입니다.

(옮긴이: 영국 총선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소선거구제로 치러집니다. 우리나라가 도입한 비례대표제도 없습니다. 각 선거구에서 1등을 차지한 후보가 의원이 되고, 나머지 표들은 사표(死票)가 됩니다.)

유권자들이 투표한 전체 표 가운데 따져봤을 때 노동당의 득표율은 지난 2010년 총선에 비해 29%에서 30.4%로 무려 1.4%나 늘었습니다. 그럼에도 의석 수는 기존 258석에서 26석이나 줄어든 232석에 그쳤습니다. 반대로 다수당 지위를 유지한 보수당은 5년 전 총선에 비해 득표율은 36.1%에서 36.9%로 0.8% 상승하는 데 그쳤지만, 무려 25석을 더 얻어 다수당 지위를 굳건히 했습니다. (각 선거구 별로) 2등은 의미가 없는 소선거구제 하에서 중요한 건 전체 득표수가 아니라 표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배분하느냐, 즉 접전 지역에서 표를 얼마나 많이 얻어 1등을 많이 배출해내느냐인데, 노동당의 득표를 살펴보면 이 배분의 효율성이 크게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총선 판세를 뒤흔든 스코틀랜드 지역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2010년 총선에서 노동당은 스코틀랜드에서 총 103만 5528표를 얻어 스코틀랜드에 할당된 의석 59석 가운데 41석을 차지했습니다. 25,257표당 한 석을 얻은 셈이죠. 이번에는 스코틀랜드 민족당의 돌풍 속에서 70만 7147표를 얻는 데 그쳤습니다. 비례식으로 계산하면 여전히 27~28석을 얻었을 것 같지만, 노동당이 스코틀랜드에서 승리한 선거구는 단 한 곳. 나머지 대부분 선거구에서는 스코틀랜드 민족당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사표를 양산하고 말았습니다. 스코틀랜드 지역은 그 동안 보수당이 대표적으로 고전하던 곳 가운데 하나입니다. 곳곳에서 2위를 차지하며 사표가 쌓였죠. 이번에도 보수당이 스코틀랜드에서 얻은 의석은 단 한 석입니다. 득표도 40만 표를 조금 상회하는 선으로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에서만 무려 40석을 잃은 노동당에 비하면 보수당은 사실상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은 셈입니다.

스코틀랜드 민족당 외에 변수로 작용한 정당을 꼽으라면 단언 우파 색채가 강한 영국 독립당(U.K. Independent Party)일 겁니다. 2010년에는 전체 득표율 3.1%에 그쳤던 영국독립당은 이번 선거에서 12.6%를 득표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전체 영국 유권자 여덟 명 가운데 한 명이 영국 독립당에 표를 줬지만, 영국 독립당은 단 한 곳에서만 당선자를 배출하는 데 그쳤습니다. 영국독립당이 가져온 표를 분석해보면, 어차피 보수당이 압승할 만한 지역에서 보수당의 표를 일부 가져온 것이 대부분입니다. 보수당 후보들은 영국독립당이 선전한 지역에서도 득표율만 좀 줄었을 뿐 여전히 넉넉하게 승리를 거두며 의석을 지켰습니다. 영국독립당의 약진으로 노동당이 득을 본 선거구는 손에 꼽을 만큼 적습니다.

보수당은 영국독립당에게는 표를 빼앗기는 대신 중도 노선으로 지난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자유민주당(Liberal Democrats Party)의 표를 빼앗아오며 이를 상쇄했습니다. 자유민주당이 강세를 보였던 영국 남서부 지방에서는 당선자를 대거 배출했기 때문에 의석 수를 늘리는 데 중요한 표의 배분 관점에서 본다면 상쇄보다 훨씬 성공적이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입니다. 노동당도 자유민주당 표를 일부 빼앗아왔지만, 의석 수를 늘리는 데는 별 효과를 못 봤습니다.

2010년 총선에서도 노동당은 보수당에게 패했지만, 의석 한 석당 득표수는 보수당보다 적었습니다. 선거를 좀 더 효율적으로 치렀다는 뜻이죠. 하지만 이번에는 효율성에서도 보수당의 압승이라는 평가가 적절해 보입니다. 34,244표당 한 석을 얻은 보수당에 비해 노동당은 한 석을 얻는 데 40,277표나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결과론이지만, 스코틀랜드에서 의원 한 명을 배출시키는 데 무려 70만 표나 썼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리 놀랍지 않은 계산 결과입니다. (New York Times)

원문보기

ingppoo

뉴스페퍼민트에서 주로 세계, 스포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Recent Posts

[뉴페@스프] “응원하는 야구팀보다 강한” 지지정당 대물림… 근데 ‘대전환’ 올 수 있다고?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2 일 ago

[뉴페@스프] ‘이건 내 목소리?’ 나도 모를 정도로 감쪽같이 속였는데… 역설적으로 따라온 부작용

* 비상 계엄령 선포와 내란에 이은 탄핵 정국으로 인해 한동안 쉬었던 스브스프리미엄에 쓴 해설 시차발행을…

4 일 ago

살해범 옹호가 “정의 구현”? ‘피 묻은 돈’을 진정 해결하려면…

우리나라 뉴스가 반헌법적인 계엄령을 선포해 내란죄 피의자가 된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는 뉴스로 도배되는 사이 미국에서…

5 일 ago

미국도 네 번뿐이었는데 우리는? 잦은 탄핵이 좋은 건 아니지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 투표가 오늘 진행됩니다. 첫 번째 투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집단으로 투표에…

1 주 ago

“부정 선거” 우기던 트럼프가 계엄령이라는 카드는 내쳤던 이유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와 해제 이후 미국 언론도 한국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사태에 큰 관심을 보이고…

2 주 ago

트럼프, 대놓고 겨냥하는데… “오히려 기회, 중국은 계획대로 움직이는 중”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에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안보…

3 주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