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과학문화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 “나아가는 삶(On the Move)”

뉴욕 의대의 신경과 교수이자 오랜 동안 임상외과의로 봉사해 왔던 올리버 색스 박사는, 의학 및 과학에 조예가 깊었을 뿐 아니라 그의 환자들이 마주하는 감정적 어려움에 대한 연민을 겸비한 드문 의사였습니다. 그의 저서에 등장하는 여러 사례를 읽노라면, 투렛 신드롬이나 측두엽 간질, 색채를 잃거나 기억을 상실하는 것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는 게 어떠한 것인지 생생히 느낄 수 있습니다. 몇몇 이야기들은 심지어 보르헤스나 칼비노 못지 않은 기이한 울림을 남깁니다.

색스 박사는 환자들의 생리학적 상태를 곁에서 진찰하며, 그들이 지닌 신경질환이 어떻게 매일의 일상과 내면적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인간의 회복탄력성, 삶의 고해에 적응하며 창조와 성취를 일구어가는 능력에 대한 언약이나 다름없습니다.   

그의 저서인 <나아가는 삶(On the Move)>에서 색스 박사는 그의 탁월한 묘사 및 분석력을 자신의 삶을 그리는 데 할애합니다. 어린 시절에서부터 나이가 들어가며 발견한 것들, 직업적 소명과 작가로서의 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책은 색스 박사의 자전적 전작이었던 <텅스텐 삼촌(Uncle Tungsten)>보다도 훨씬 더 사적이라 할 만합니다. 이 책을 읽어나가며, 영국에서 가족들과 어린 시절을 보내는 동안 타고난 예술적 및 의학적 재능이 어떻게 꽃을 피울 수 있었는지, 그가 한때 정서적 부채라 여겼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2차세계대전 당시 아직 소년이었던 올리버는 런던으로 보내져 “끔찍한” 보딩스쿨에 입학하게 됩니다. 가족과 떨어져 두들겨맞고 괴롭힘을 당하며 지낸 경험은 이후 그의 환자들이 스스로를 낯선 이방인처럼 느낄 때 깊이 공감할 수 있게 돕는 계기가 됩니다.

그의 형제였던 마이클은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의 정신증 증세는 어린 올리버를 겁에 질리게 합니다. 마이클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 못지않게 그에게서 벗어날 필요를 느꼈던 올리버는 1960년 미국으로 떠나게 됩니다. 체계와 논리로서의 과학은 마이클의 증세로 대표되는 ‘혼돈’의 피난처 노릇을 했습니다. 올리버, 즉 색스 박사에게 의학 공부는 가업을 잇는 일이자 “환자들이 겪는 정신분열증이나 기타 신경적 정신질환을 내 방식대로 탐험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타고난 수줍음과 얼굴을 알아보는 데 따르는 어려움(이는 안면실인증(prosopagnosia)라 불리는 질환으로, 색스 박사는 2010년 뉴요커지에 실은 긴 에세이에서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은 젊은 시절의 색스 박사가 지닌 사회적 제약이었지만, 곧 그가 지닌 다양한 과학적 관심사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면 금방 열정적인 대화로 이끌려 들어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매일 열여덟 시간 동안 환자를 돌보고 연구하고 남는 시간은 사진, 수영, 웨이트트레이닝, 모터사이클 등 다방면에 걸친 색스 박사의 열정과 호기심으로 채워졌습니다.

그리고 썼습니다. 그는 늘 쓰고 또 썼습니다. 색스 박사는 열네 살 때부터 일기를 써왔고, 가장 최근에 세본 바 천 권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엄청난 양의 서신에 더하여, 몇십 년에 걸쳐 작성해 온 천 권이 넘는 임상노트가 있습니다.

글쓰기는 그를 또다른 세상으로 안내한다고 색스 박사는 말합니다. “일단 쓰기 시작하면 완전히 빠져들어 어떤 잡스러운 생각이나 집착이나 걱정, 심지어 시간의 흐름조차 잊어버리죠. 이처럼 드물고 축복받은 마음의 상태에 이르면 더이상 종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써내려가는 겁니다. 저녁나절이 되어서야 하루종일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써내려가는 과정에서 그 자신에게 비길 데 없이 크나큰 즐거움을 주는 색스 박사의 글은 또한 독자들을 위한 선물입니다. 심원한 지성과 연민, 기쁨에 대한 이해, 인간의 조건 앞에 바치는 시도이자 위안입니다.(뉴욕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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