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 통계연구(Eurostat Study)를 보면, 회원국의 74세 이상 여성을 대상으로 행복도를 조사한 결과 덴마크 노인들이 10점 만점에 8.4점으로 유럽에서 가장 행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유럽연합 평균은 6.8점이었습니다. 보통 나이가 들고 기력이 쇠하면서 죽음이 가까워지면 행복한 감정도 자연히 사그라지는 게 당연한데, 과연 이들이 행복한 노후를 보내는 건 어떤 이유 덕분일까요? 통계 말고 직접 사례를 찾아보기 위해 은퇴한 덴마크 사람들을 만나려 연락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제게 돌아온 답변은 대개 이런 식이었습니다.
“지금은 바빠요. 섬 곳곳을 탐험하고 있거든요.”, “골프 치는 중, 이따 다시 전화 주세요.”, “아, 지금 프랑스로 여행 가서 전화를 못 받아요.”
맙소사, 이쯤 되면 웬만한 직장 여성 인터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간신히 인터뷰 시간을 내도 골프를 치거나 수영을 하고 저녁 문학 강좌를 들으러 가는 틈을 타 잠깐, 혹은 세계 어딘가를 여행하고 막 돌아와서 다음날 자전거를 타고 또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와서 잠깐이 전부였습니다.
유트란트 주 비보르(Viborg, Jutland)에 사는 65살 안나 그레테 미켈센(Anna-Grethe Mikkelsen) 씨는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일상을 소개하면서 “은퇴 후의 삶은 정말 굉장해요! 한 마디로 오랫동안 휴가를 즐기는 기분이죠.”라고 말했습니다. 평생 비서 일을 하다 2006년에 은퇴한 71살 에바 케르네(Eva Kerner) 씨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꼬박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고, 미술관 나들이는 물론 다른 곳으로 여행도 자주 다니죠. 지역 합창단에 들어 정기적으로 연습을 하고 공연을 하고, 솜씨 좋은 재봉사이기도 합니다. 케르네 씨는 말합니다.
“우리 며느리에게 줄 옷 두 벌을 직접 만드는 중이에요. 사람들은 그 많은 일을 다 하려면 진이 다 빠지겠다고 하지만, 제 인생은 제가 봐도 정말 행복해요.”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두 덴마크 여성의 말이 사실 맞습니다. 은퇴 후에도 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고, 특히 마음 맞는 또래 혹은 공동체 속에서 그런 일을 하면서 젊게 사는 것이 행복의 핵심 요건입니다. 케르네 씨 말을 좀 더 빌리면 “스트레스를 안 받고, 무엇이든 자기가 즐기고 싶은 만큼만 하는 것, 그리고 그 일들을 혼자서 외롭게 하는 대신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한다는 점”이 이들을 행복하게 합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상을 공유하고 즐기는 건 특히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잘 하고, 그럴 기회도 많은 편입니다. 그래서 여성들의 행복도가 비슷한 나이대의 남성들의 행복도보다 더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덴마크 행복연구소의 마이크 비킹(Meik Wiking)은 소속감(sense of belonging)이 행복에 대단히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활동적인 삶이 행복에 중요하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건 뇌를 자극해 역시 즐거운 삶을 사는 원동력이 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65살 넘어서도 바쁘게 사는 모든 여성이 행복한 건 결코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죠. 덴마크 사회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교수직을 은퇴한 뒤 수도 코펜하겐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는 71살 제테 아이베르그(Jette Eiberg) 씨는 사회 복지제도를 언급했습니다.
“한 마디로 여기(덴마크)에서 태어난 게 대단한 행운이라고 할 수 있죠. 덴마크 사회는 시민들의 복지와 안녕을 책임지는 사회니까요.”
케르네 씨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친구들끼리도 종종 그런 얘기를 해요. 이 나라 시민으로 노후를 보내는 게 얼마나 엄청난 특권인지를요. 분명한 건 우리 어머니 세대 때만 해도 이런 복지는 당연히 꿈도 못 꿀 일이었다는 거예요. 게다가 요즘 젊은이들의 삶은 분명 더 각박해졌어요. 우리는 분명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덜 겪은 행복한 세대인 거죠. 아이를 키우는 데 나라가 해주는 지원만 봐도 알 수 있어요.”
덴마크 정부는 생후 6개월 이후부터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에 전액 보조금을 지급합니다. 돈이 없어서 아이를 못 키우는 일만은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죠. 이런 육아 제도 덕분에 은퇴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주 봐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덴마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손주들을 보기 싫어하는 건 아니죠. 케르네 씨는 말합니다. “우리 아들, 딸에게 언제든 아이 키우는 데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하라고 해요. 그렇지만 손주에 매여서 우리의 삶이 지장을 받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덴마크는 시민들이 내는 세금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부의 재분배 정책을 펼치는 것이죠. 세금은 많이 내서 생기는 긍정적인 효과 가운데 하나가 (세후) 소득 불평등이 상당히 낮다는 건데, 이웃과 부의 수준이 엇비슷하다는 것도 행복한 삶을 사는 데 적잖은 영향을 미칩니다. 실제로 OECD 회원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경제 수준이 비슷한 이웃들 사이에서 살수록 더 행복하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케르네 씨는 지금 자신과 친구들이 받고 있는 상당히 풍족한 연금이 지금껏 평생 자신이 적잖은 세금을 꼬박꼬박 내온 데 대한 보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덴마크의 법정 노동시간은 일주일에 37시간입니다. 이 규정에 상당히 잘 지켜지는 편에 속하는 덴마크이기에 많은 사람들은 일하는 시간 외에 친구를 사귀고 여가 활동을 즐기며, 은퇴 후의 삶을 준비할 시간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습니다. 아이베르그 씨는 (특히 여성의 경우) 직장 생활이 정체성의 전부가 결코 아니라고 말합니다. 여가 활동을 하면서 사귀게 되는 친구, 새로운 공동체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뜻이죠. 아이베르그 씨는 은퇴 후에도 대학에서 문학 강의를 듣고 여행도 자주 다닙니다.
물론 모든 덴마크 노인들이 이렇게 이상적인 삶을 즐기며 행복하게 사는 건 아닙니다. 나이가 더 들고 몸이 아프면 힘든 건 마찬가지죠. 게다가 여성들의 경우 배우자와 사별한 뒤에 오는 그리움과 외로움은 행복을 앗아가는 가장 큰 요소이기도 합니다. 10년 전 남편과 사별한 80살 루스 렘체(Luth Lemche) 씨는 다리도 불편해 예전만큼 여행을 다니지도, 적극적으로 이런 저런 활동을 하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저는 아직도 가끔 골프도 치고, 무엇보다 지역사회(local kommune)에서 우리 같은 노인네들을 위해 각종 행사도 열어주고 좋아요. 정말 고마운 일이죠. 맞다, 다음주에 언니 만나러 가는데 언니는 무려 89살이라우!”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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