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세계칼럼

처형 비디오를 보는 것도 테러에 동참하는 행위입니다

IS가 요르단 조종사 화형 영상을 공개했지만, 그 생생한 세부 내용은 소셜미디어와 주류 언론에서 상당 부분 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고인이 된 조종사와 그 가족들을 생각해 영상을 공유하지 말자는 움직임도 시작되었죠. 저도 그런 취지에서 이 영상을 보지 않았지만, 그 내용이 워낙 자극적인지라 많은 사람들이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듯합니다. 자신이 본 내용을 생생하게 전해주지 못해 안달인 사람들도 있고요. 하지만 저는 잔인한 처형 동영상을 보는 행위 자체로 우리 모두가 어떤 의미에서 IS의 공범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사들은 특히나 어려운 딜레마 상황에 놓입니다. 행위가 잔인해질수록 뉴스로서의 가치가 높아지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폭스뉴스가 경고 문구와 함께 풀 동영상을 웹사이트에 올렸을 때, 진실 보도만이 최상의 가치는 아니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을 겁니다. 이런 영상은 말 그대로 높은 조회수를 목표로 한 미끼인데, 굳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서 트래픽을 높여줄 이유가 없으니까요.

어떤 이는 이 영상을 보고 알리는 것이 언론인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데일리미러>지의 전 편집자 피어스 모건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플레이 버튼을 클릭”했으나, 영상을 본 후 “이 괴물들이 무슨 짓을 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에” 보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영상이 그에게 어떤 새로운 가르침을 주었다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IS가 끔찍한 짓을 할 수 있는 집단인 것을 영상을 보기 전에는 몰랐다는 말인가요?

모건은 한술 더 떠 “아직도 IS가 종교의 이름으로 행하는 짓에 대해 생각을 결정하지 못한 무슬림이 있다면 이 영상을 한 번 보라고 권하고 싶다”고까지 말했습니다. IS에 대한 입장을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무슬림들로 가득 찬 세상은 도대체 어디입니까? 그는 살해된 요르단 조종사가 수니파 무슬림이었다는 사실을 들먹이며 IS가 이제서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는 IS의 반서구적 성향 때문에 무슬림들이 IS를 지지한다던 자신의 주장과 모순된 것으로 보입니다.

많은 무슬림들이 이미 끔찍한 동영상의 도움 없이도 IS를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IS는 죄수 교환, 처형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스스로에게 이런 행위를 할 수 있는 “국가”의 이미지를 부여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의 영상을 보거나 퍼뜨리는 것은 IS의 각본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범죄는 피해자의 죽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 반응하는 과정을 거쳐 완성됩니다. 모건은 영상을 보고 “어떤 이성적인 주장으로도 다스릴 수 없는 강한 분노”를 느꼈다고 고백했는데, 우리는 IS가 원하는 반응이 바로 이것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동영상 때문에 인터넷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끔찍한 영상을 하나 본 후에 뿔뿔이 흩어지고 마는, 공허한 작용과 반작용의 공간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IS는 수많은 외국인 인질들을 죽였지만, 희생자의 대다수는 무슬림이고 그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새로울 것 없이 끔찍한 동영상 하나를 들여다보는 사이, 동영상 밖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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