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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BC뉴스] ‘먹방’의 나라, 한국

저녁밥 먹는 장면을 웹캠으로 찍어 수천 명에게 중계방송 해주고 싶나요? 당신의 식사 영상을 좋아하는 팬들이 하룻밤에 수백 달러를 구경값으로 준다고 생각해보세요. 꽤 괜찮은 돈벌이죠. 이런 일이 한국에선 가능합니다.

이런 식사 중계 방송을 한국어로는 ‘먹방’이라고 부릅니다. 먹는다는 뜻의 ‘먹’과 방송이라는 말의 ‘방’이 합쳐진 신조어입니다.

서울에 사는 이창현 씨(위 사진)가 ‘먹방’을 하는 사람 중 한명입니다. 자정이면 그는 온라인에 접속해 하루는 매운 생오징어를 먹고, 다음날은 게를 먹는 식의 식사 공연(perform)을 합니다. “공연”이라고 부르는 게 맞습니다. 과장된 몸짓으로 먹거리를 자랑하며 시청자를 안달나게 합니다. 소리 내 게걸스럽게 먹는 것이 쇼의 한 부분입니다. 후루룩 마시는 소리와 으드득 씹는 소리를 잘 전달하기 위해 이 씨는 좋은 마이크를 샀습니다.

이건 단순한 취미가 아닙니다. 매일 1만 명이 그의 먹방을 지켜본다고 합니다. 방송을 보는 관객은 끊임없이 잡담과 평가를 하며 이 씨는 음성으로 (언어로), 입으로 (먹으면서, 시각적이며 청각적으로) 팬들에게 화답합니다.

먹방이 마음에 들면 시청자는 ‘별풍선’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지불 수단으로 보상합니다. 이 씨는 별풍선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묻는 BBC의 질문에 쑥스러워하며 주저했습니다. 그의 방송 화면에 뜨는 별풍선 개수로 짐작해보건대, 2시간 방송에 수백 달러를 버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 씨의 먹방 공연은 사회가 어떻게 변하는지, 텔레비전이 어떻게 변하는 지에 대해 뭔가를 말해주는 현상입니다. 아마도 지금은 한국에 국한된 현상이지만, 미래에는 당신이 나라에서도 일어날 일입니다.

이창현 씨의 먹방은 ‘아프리카’라고 불리는 인터넷 방송 서비스 상에서 이뤄집니다. 아프리카는 “Any FREE broadCasting”의 약자입니다. 이 사이트에선 누구나 자기만의 방송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비싼 장비와 비용이 필요없는 TV채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창현 씨처럼 아프리카에서 방송을 진행하는 사람을 BJ(broadcast jockey)라고 부릅니다.

다른 사람이 밥 먹는 걸 구경하는 게 뭐가 재미있을까요? 그걸 또 컴퓨터 스크린으로 보는 게 무슨 재미일까요? 혹시 일종의 관음증 또는 음식 포르노일까요?

이창현 씨는 자신을 ‘아바타(avatar)’라고 부릅니다. 청중은 이 씨의 먹방을 보며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그렇게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게 이 씨의 설명입니다. “한국에서, 특히 여성에게, 이 점은 아주 중요합니다. 먹방에 나오는 음식들은 대개 살찌기 쉬운 것들입니다. 저는 그런 음식을 먹어 보임으로써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만족감을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필자에게 이 점은 설득력있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먹방의 핵심은 먹는 것이며, “나는 먹지만 너는 먹을 필요 없다”라는 게 앞뒤가 맞아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진짜 재미 요소는 ‘동지애'(companionship)가 아닐까요. 비록 인터넷을 쓰는 장거리 동지애지만, 그건 마치 저녁 식사 파티와 비슷한 느낌입니다. 여러 방에서 각기 식사가 벌어지는 파티입니다. “시청자는 방송을 보는 동시에 잡담도 많이 합니다. 대화 주제는 무한하죠. 심지어 진짜 친구처럼 고민 상담도 해 줍니다.” 이창현 씨의 설명입니다.

우리 시대에 이건 진짜 교우 관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건 거대화된 도시에서 원자화된 개인 사이에 이뤄지는,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각자의 방에서 맺는 관계입니다.

이창현 씨가 돈을 버는 이유는 그가 공연을 잘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채팅창을 계속 주시하며 즐겁고 가벼운 농을 이어나갑니다. 그는 일어나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합니다. 노래도 부릅니다. 이 씨는 그저 카메라 앞에 주저앉아 힘없이 밥을 퍼먹는 폐인이 아닙니다. (물론 이런 연출 역시 먹방의 한 요소이기는 합니다만) 이 씨는 대식가이긴 하지만 잘생겼고 날씬합니다. 그는 과식하면서도 살이 안 찌는 이유로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겨 신진대사가 활발하다고 답합니다.

그리고 돈이 쌓입니다. 이 씨는 돈 때문에 방송하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저는 시청자와 함께 어울려 놀고 있는 것입니다. 같이 즐기는 거죠. 저는 이게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건 텔레비전 공연 가운데 가장 가혹한 형식의 방송입니다. 전통적인 방송국에서 스타들은 출연료를 받고 활동을 하며 그 출연료는 계약 기간 내내 적용됩니다. 시청자 평에 따라 그 다음 방송 출연료가 인상되거나 삭감되거나 하겠지요. 하지만 아프리카와 같은 인터넷 방송 시청자는 “결제” 버튼이 있습니다. BJ가 잘하는 날엔 시청자는 버튼을 누르고, 그렇지 않으면 결제하지 않습니다. 전통적인 방송 업계의 보수 체계와는 전혀 다릅니다.

웹캠으로 이뤄지는 장거리 동지애라는 개념은, 대면 접촉을 통한 따뜻한 인간관계를 믿는 사람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두 부류 다 미래에는 혼재할 것입니다. 한국은 IT 문화가 발달한 나라입니다. 모든 한국인이 온종일 온라인 접속을 하는 듯 합니다. 지금은 한국인이 사이버 저녁 파티를 하고 있다면, 미래에는 당신의 차례가 될 것입니다.

원문출처: BBC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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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페퍼민트의 가치를 잘 담고 있는 기사라고 생각합니다.
    문화권마다 대리만족 개념의 범위가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아프리카 티비 방송의 이면이 서구방송사업자의 관점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한국인들에겐 한물간 하위문화라 돼버린 비제이 방송이 비비시에겐 미래의 방송모습으로 보인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네요

  • 저는 먹방을 본 적은 없습니다만, 혹시 bj들의 경제수준은 어떠한가요? 캡쳐만으로 봤을 땐 전 음식보다 이들의 외모, 옷차림, 집의 인테리어 등에 더 눈길이 가던데. 총체적 '소비'의 대리만족이나 동경, 관음 등의 해석이 끼여들 틈은 없나요? 저도 다이어트하는 여성들의 대리만족이라는 해석엔 공감하기 어렵네요. 다이어트 중엔 음식 냄새만 맡아도 고통스럽죠. 예를 들어 육아 블로그에 올라온 사진들은 예쁜 아기 자랑, 육아 정보 교환, 육아의 고통 나눔 등으로 포장돼있지만, 사실은 부의 과시인 경우가 많더라고요. 독자들은 그보다 낮은 경제적 계급에 있는 이들로서 블로거의 생활수준을 동경하는 경우가 꽤 많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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