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문화세계칼럼

컴버배치 실언 사태에서 배우는 제대로 된 사과법

영국의 영화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최근 방송 인터뷰에서 “유색인종(colored people)”이라는 표현을 써서 여론의 집중 포화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사과는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죠. 그가 발표한 사과 성명을 조목조목 뜯어보면, 컴버배치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 합니다. 컴버배치는 사과문에서 “부적절한 옛 용어를 사용한 것을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내가 바보같은 행동을 한데는 변명의 여지가 없으며, 특히 영화 업계의 인종 간 불평등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이런 단어를 썼다는 점을 특히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제대로 된 사과는 다음과 같은 요소를 담고 있어야 합니다. 우선 왜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는지를 인식하고 있음을 담아야 하고, 그것이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야기해야 하죠. 마지막으로는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담아야 합니다. 컴버배치의 경우와 달리, 사과답지 않은 사과로 명성을 얻은 유명 인사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많은 이들이 형식 상으로는 사과를 하면서도 물의를 일으킨 자신의 행동보다는 그 행동을 공격한 사람들에게 화살을 돌린다거나, 변명으로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려 하죠. “내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면”, “누군가가 불편했다면” 하는 식으로 사과에 조건절을 달아 은근히 상처받거나 불편했던 사람들을 민감한 부류로 몰아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컴버배치가 “이번 사태로 인해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단어, 부정확한 단어를 써서는 안된다는 점이 부각되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은 다소 거만한 오지랖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현실을 둘러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유색(colored)”라는 단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널리 쓰였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이 용어가 어떤 인종주의적 뿌리를 갖는지, “유색인종”에게 이 말이 어떤 느낌으로 와닿는지를 크게 의식하지 못합니다.

이번 사태에서 또 다른 좋은 점을 찾아보자면, 우리 모두 진보가 얼마나 지저분한 과정인지를 알게 되었다는 겁니다. 문제의 발언을 한 인터뷰에서 컴버배치는 백인 아닌 배우들이 배역을 찾기가 힘든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죠. 억압받는 집단의 동지를 자처하는 사람조차 이런 실언을 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편견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언어 생활과 관념 속에 얼마나 뿌리깊게 스며있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이번 사태 덕분에 컴버배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큰 문제라고 생각한 영화계의 인종 차별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어쩌면 덤이라고 할 수 있겠죠. (더 아틀란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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