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경제칼럼

가난한 사람들이 왜 계속 가난한지 이해를 못하시겠다고요? 그렇다면 당신은 소시오패스일지도 모릅니다.

지난주 저는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과 아이들의 보호소를 짓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기금을 모으는 자선단체 모금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많은 이들의 참여와 지지 속에 행사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고, 목표로 했던 금액도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금 행사가 성황리에 열렸다고 가정 폭력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전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보기는 아마 힘들 겁니다. 여전히 사뭇 진지한 얼굴로 제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죠.

“저, 근데 사실 저는 정말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요, 그 사람들(가정 폭력 피해자)은 왜 그냥 집에서 도망치지 않는 거죠? 그렇게 끔찍한 일을 당하고 있는데 왜 그걸 참고 사는 거예요?”

여기서 정말 왜 그들이 가정 폭력의 굴레를 못 벗어나는지를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간단히 요점만 정리해보자면, 우선 여성들이 자기가 집을 나가 이 상황에서 도망치면 남겨진 자식들이 끔찍한 폭력을 홀로 이겨내야 할 상황을 그리며 참는 쪽을 택합니다. 이미 수개월, 수년간 폭력에 노출된 이들은 심리적으로 이런 끔찍한 상황을 버티는 방법을 어느 정도 터득했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자존감은 이미 바닥까지 떨어져있을 것이고,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유도, 경제적으로 새로운 삶을 도모해볼 여유도 아마도 없을 겁니다. 한 마디로 도망가도 무얼 할지 모르고, 갈 데도 없는 상황인 거죠.

자, 제가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가정 폭력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저 위에 적어놓은 저런 종류의 질문은 사실 수많은 분야에서 시도때도 없이 터져나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아껴쓰고 어떻게든 한 푼이라도 모을 생각을 해야지 왜 불평만 하느냐, 건강에 안 좋은 거 알면서도 왜 자꾸 패스트푸드만 먹고 술, 담배는 도대체 왜 못 끊는 것이냐는 등 비슷한 종류의 질문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기보다는 근본적으로 눈 앞에 펼쳐지는 상황에 전혀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인데, 최소한의 공감 능력이 필요한 일을 하는 이들이 저런 질문을 태연하게 던질 때는 정말 사태가 심각하다고 봐야 할 겁니다. 공감 능력이 필요한 직업 가운데 정치인을 빼놓을 수 없겠죠. 좌우를 막론하고 공감의 수준은 어쩌면 비슷할지도 모릅니다. 좌파(영국 노동당)는 어쨌든 가난한 사람들한테 마음의 빚이라도 진 것처럼 이런저런 궁리를 하기야 하겠지만, 도대체 왜 이 사람들이 가난의 굴레를 못 벗어나는지는 모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파(영국 보수당) 가운데 일부는 어쩌면 정말로 무식하고 못 배워서 가난한 거라고 믿고 있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지금 이 순간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저런 질문을 태연하게 던지며 많은 이들의 가슴에 못을 박고 있는 정치인들을 향해 저는 정말로 몇 가지만 묻고 싶습니다. 제 질문이 어쩌면 이해를 돕고 공감 능력을 키워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자, ㅇㅇㅇ 의원님, 의원님에게도 정말로 뭘 해도 안 되는 날, 말 그대로 잊어버리고 싶은 날이 있었겠죠? 일이 전혀 안 풀리고, 그냥 다 잊고 어디 좋은 식당이나 바에 가서 비싼 양주나 한 모금 들이키며 그냥 흘려보내고 싶은 날이요. 일주일 내내 좋은 한정식집, 고기 한 번 못 먹고 일만 죽어라고 하는데도 상황은 점점 불리하게 돌아만 가는 답답한 시기도 있잖아요. 그렇죠? 그러면 이제 생각해보세요.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라는 거 알지만 그래도 한 번 해보세요. 만약 당신의 삶 전체가 매일매일 그런 최악의 날이, 아니 실은 그보다도 더 엉망이지만, 어쨌든 그런 최악의 날의 연속인데 도저히 터널 끝의 불빛 같은 건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당신이 할 수 있는 것도 사실상 별로 없다면 어떡하시겠어요? 휴일? 휴일이 어딨어요. 한달에 28일 정도는 일해야죠. 주식 팔아서 처분하고 한적한 데 가서 살겠다고요? 아이고, 지금 제가 설명한 상황을 전혀 이해를 못하신 건가요? 하루 벌어 하루 살아야 하는 삶이라고요, 월급 많이 주는 일자리를 얻으려면 기술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건  없어요. 그런 기술이 뭔지도 평생 배워본 적이 없어요. 안 돼요,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돼요.

“아니, 그래도 먹는 장사, 뭐든 마련해서 대여해주는 일, 아주 허드렛일이라도 비전이 있는 일이 있을 거 아닌가요? 그런 걸 꼼꼼히 찾아보고 어떻게든 스스로 일어설 생각을 해야지, 그런 의지가 부족한 건 아닐까요?”

여전히 이렇게 묻는 분들이 분명 계실 겁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답하겠어요.

“아주 급박한 상황에 몰려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느니 뭐라도 얻기 위해 웃돈을 주는 걸 알면서도 이를 악물고 무언가를 해치우려 한 적 있으세요?

잠깐,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상황은 아마도 당신이 겪었을 난처하고 급박한 상황을 말하는 건 아니예요. 해외에 땅 사두셨는데, 갑자기 땅값이 폭락했을 때 겪었을 당혹감 같은 거 말고, 부모님 생신 때 드리려고 생각해둔 값비싼 선물 세일 때를 놓쳐서 나중에 입맛 다시며 비싼 돈 주고 사야 할 때 이런 것도 말고요. 진짜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당신을 그냥 없는 사람이 아니라 무식하고 무능한 사람 취급할 때 받는 무기력감에 대해 생각해보셨냐는 겁니다.”

저는 정책을 결정하고 입안하고 집행하는 이들이 이런 상황과 배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걸 갑자기 한꺼번에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한 걸음 한 걸음 알아가고 이해하려다 보면 분명히 나아질 텐데, 전혀 나아지지 않는 사람들도 이해가 안 되고요. 만약 우리 사회가 이런 소시오패스가 만든 정책에 따라 움직이도록 설계돼 있다면, 서민들은 이런 동떨어진 정책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보호받아야 할 겁니다. 만약 서민들의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별 생각없이 정책을 그냥 고치지 않고 내버려두고 있다면 그것 또한 자격 미달인 것이겠죠. 저는 (영국에서) 머지않아 열릴 것 같은 TV 토론에 나온 후보들에게 정말 묻고 싶습니다. 절망적인 나날을 보낸 적이 있는지, 진짜 대다수 서민들이 겪는 무기력감을 느껴봤는지, 그랬다면 그러고 나서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를 말입니다. (Guardian)

원문보기

ingppoo

뉴스페퍼민트에서 주로 세계, 스포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View Comments

Recent Posts

[뉴페@스프] 공격의 고삐 쥔 트럼프, TV 토론으로 승리 방정식 재현할까?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3 일 ago

“‘기생충’처럼 무시당한 이들의 분노” vs “트럼프 지지자들, 책임 돌리지 말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브렛 스티븐스가 "진보 진영의 잘난 척"에 대한 반감이 트럼프에게 승리를 안겨다줄 수 있다는…

4 일 ago

[뉴페@스프] “‘진짜 노동자’의 절망,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미국 대선의 진짜 승부처는 여기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5 일 ago

이번 대선은 50:50? “트럼프도, 해리스도 아닌 뜻밖의 변수는…”

미국 대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선거 결과는 여전히 예측하기 어려운 팽팽한 접전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특히…

1 주 ago

[뉴페@스프] 이야기꽃 피우다 뜨끔했던 친구의 말… “조금씩 내 삶이 달라졌다”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1 주 ago

[뉴페@스프] 스벅 주문법이 3천8백억 개? 창업자 호소까지 불러온 뜻밖의 악순환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1 주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