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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선수를 보기 힘든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

축구팀 첼시(Chelsea F.C.)는 올 시즌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에서 뛰어난 경기력을 바탕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통계 가운데 첼시가 20개 팀 가운데 19위에 그치고 있는 통계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잉글랜드 국적 선수가 넣은 골만을 토대로 성적을 다시 집계했을 때 순위입니다. 잉글랜드 출신 공격수를 쓰지 않았다고 해서 리그 규정을 어긴 것도 아니고, 첼시 뿐 아니라 리그에서 소위 잘 나간다는 구단들은 너도나도 거금을 주고 뛰어난 외국인 선수를 사모으는 데 혈안이 된 상황에서 첼시의 19위가 비난을 받을 일은 물론 아닙니다. 그럼에도 잉글랜드 선수가 점점 자취를 감추고 이것이 직간접적으로 잉글랜드 대표팀의 경기력 하락으로 연결된다는 일각의 지적을 상기시키기에는 더없이 좋은 자료인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는 중계권료에서 다른 유럽 축구리그를 압도하며 엄청난 재정적 성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매년 여름과 겨울 이적시장이 열릴 때마다 수많은 정상급 선수들이 잉글랜드로 오는 건 이미 낯설지 않은 풍경입니다. EPL에서 뛰는 선수들 가운데 잉글랜드 국적이 아닌 선수 비율은 63.92%. 축구에서만큼은 영국을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로 구분하기에 잉글랜드 국적이라는 말을 썼지만, 이것이 불편한 독자들을 위해 영국 국적이 아닌 선수의 비율을 따져봐도 55.07%로 절반이 넘습니다.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최고의 선수들이 뛰는 게 당연한데 국적이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하실지 모르겠지만, 다른 유럽 리그들의 외국인선수 비율(이탈리아:54.8%, 독일:43.5%, 스페인:38.9%, 프랑스:31.6%)보다 확실히 높은 건 사실입니다. 독일의 경우 2002년에 리그 각 팀의 유소년 육성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개혁하면서 자국 선수들의 수준을 끌어올렸습니다. 독일 구단들도 외국인 선수를 사올 수 있지만, 높은 몸값과 여러 불확실성을 고려했을 때 독일에서 어려서부터 공을 찬 선수들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에 키우고 사올 수 있는 방법을 선호하게 됐습니다.

BBC가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뛴 시간을 국적별로 나누어 집계한 결과(시즌 시작부터 10월 1일까지의 통계)를 보면 EPL 경기에서 잉글랜드 선수들이 뛴 시간은 전체의 36.08%로 지난 시즌 같은 기간 32.36%에서 소폭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올 시즌 2부리그에서 승격한 번리(Burnley)의 영향이 큽니다. 아직 잉글랜드 밖으로 스카우터를 보내 우수한 선수를 관찰하고 영입하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번리는 2부리그에서 그랬던 것처럼 잉글랜드 선수들을 위주로 팀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번리를 뺀 수치는 지난해와 정확히 같은 32.36%. 이는 특히 재정이 탄탄하고 성적이 좋은 이른바 ‘빅 클럽’들의 경우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참고로 K-리그의 외국인 선수 보유 규정은 3+1, 즉 3명에 아시아축구연맹 회원국 소속 선수들은 1명 더 보유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베스트 11 가운데 7명은 한국 선수들이라는 뜻입니다.

잉글랜드 축구협회(FA)는 지난 2013년 9월, 오는 2022년까지 이 수치를 45%로 올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나오지 않은 가운데, 지난 브라질 월드컵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은 56년만에 처음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이어진 2014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EPL 구단들은 선수들을 사모으는 데 총 1조 4천억 원을 썼습니다. 이 가운데 63%는 외국인 선수들의 몸값이었죠. 축구협회는 취업 비자 발급을 더욱 까다롭게 해서 유럽연합 회원국 국적이 없는 외국인 선수들을 지금보다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계획이 행동으로 옮겨지지는 않았습니다.

“제 2의 루니”로 각광 받는 이른바 축구신동들은 끝없이 등장하지만, 루니만큼 성장해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선수는 아직 없습니다. 많은 기대를 받으며 첼시에 입단했다가 리그 경기에는 단 한 차례도 뛰어보지 못한 채 방출이나 다름없이 팀을 떠났던 마이클 우즈(Michael Woods)는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합니다.

“경기장에 내보내는 선발 선수 11명 가운데 적어도 3명은 반드시 잉글랜드 국적 선수로 채우도록 규정을 바꾸는 겁니다. 11명 중에 3명이요, 나머지 8명은 충분히 훌륭한 외국인 선수로 채울 수 있어요. 이 정도 제안조차 구단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리그는 계속 승승장구할지 몰라도 EPL은 더 이상 잉글랜드 국적 선수들을 효과적으로 키워내는 밑거름이 되지는 못할 겁니다.”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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