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세계칼럼

[톰행크스 기고문] 오늘의 나를 만든 커뮤니티 칼리지

-배우 톰 행크스가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입니다.

1974년, 나는 형편없는 SAT 점수를 받아든채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대학 세 곳에 원서를 쓸 수 있다길래, 원서 두 장을 MIT와 빌라노바라는 명문 학교에 날려 버렸죠. 어차피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길도 없었지만, 불합격 통지서와 함께 차에 붙일 스티커라도 한 장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마지막 원서 한 장을 보낸 곳이 바로 나의 모교인 채벗(Chabot) 커뮤니티 칼리지였습니다. 집 근처의 2년제 학교로, 수업이 무료였고 누구나 받아주는 곳이었습니다.

수천 명의 재학생들에게 채벗은 컬럼비아요, 소르본이었습니다. 중고 교과서를 살 돈 정도만 있으면 물리학에서 자동차 수리, 외국어에서 회계학까지 세상의 모든 과목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전역한 베테랑에서부터 아이들을 키우다 학교로 돌아온 중년 여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이 함께했죠. 나는 이 곳에서 이수한 학점을 가지고 새크라멘토의 주립대학의 영화 전공 과정으로 편입했습니다.

채벗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필수과목이었던 보건처럼 싫어한 과목도 있었지만 영화학에서는 좋은 성적을 받았습니다. 천문학 강의 첫 시간에 들어갔더니 온통 수학이어서 드랍했던 기억도 있고, 동물학 수업에서는 실험용 초파리가 다 죽어버리는 바람에 거의 낙제할 뻔 했죠. 말하기 수업은 여러모로 기억에 남습니다. 첫째로 자의식 과잉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였기 때문이고, 그 다음으로는 이 수업에서 미녀 승무원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내 차가 고장났을 때 얼마간 그녀의 차로 통학을 했는데, 매주 월,수,금 3일을 조수석에 앉아 통학하면서 한 마디도 하지 못했죠. 말하기 수업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채벗에서 들은 수업은 내가 하고 있는 일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HBO의 미니시리즈 <존 애덤스>를 제작했을 때는 파이프 담배를 피우던 교수님의 역사학 수업에서 배운 아웃라인 포맷을 활용했고, 셰익스피어 수업에서는 5막으로 구성된 연극의 구조에 대해 배웠습니다. 연극 수업에서는 <느릅나무 그늘의 욕망> 같은 작품을 읽었고, 학생용 할인 티켓으로 수업 중에 읽은 작품의 무대를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무대를 보면서 내 꿈은 커져갔고, 이 수업에서는 A를 받았죠.

감자튀김을 먹고 여자 구경을 하며 빈둥대던 때도 많았습니다. 한 학기 등록금이 수 백 만원인 학교에서도 똑같이 일어나는 일이겠죠. 하릴없이 채벗의 도서관에서 시간을 때운 기억도 있습니다. 그곳에서 뉴욕타임즈를 처음 읽었고, 만화가 별로 없어 당황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LP판 대출 코너가 아직도 남아있다면, 대출증에 내 이름이 남아있는 판들도 그 자리에 있을 겁니다. 유진 오닐 작품의 독백들을 제이슨 로바즈가 녹음한 판을 몇 번이고 빌려서 들었죠. 1993년 영화 <필라델피아>를 찍으며 로바즈 씨를 만나 커피를 아주 많이 마시고 나서 녹음했다는 뒷이야기를 직접 들었을 땐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전역의 무료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를 900만 미국인들에게 개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는 600억 달러가 들어가는 이 계획을 무산시켜버릴 가능성이 크지만, 나는 이 계획이 현실이 되길 바랍니다.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돌아온 참전 용사와 싱글맘, 직장에서 해고당한 가장들에게는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전 발판이 되어줄, 보다 낮은 장벽이 필요합니다. 대학에 바로 진학할 돈이 없는 고교 졸업생들은 2년 간의 탐색 기간을 통해 새로운 꿈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계획이 실현되면,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당시 나를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은 더 이상 그 곳에 안 계시지만, 채벗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몇 년 전 아이와 함께 우연히 캠퍼스 근처를 지나게 되었을 때, 나는 아이에게 그 곳에서 보낸 2년의 시간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오늘날의 아빠를 만들어 준 곳이라고요. (뉴욕타임즈)

원문보기

eyesopen1

View Comments

  • 얼마전 케이블 티브이에서 본 톰행크스 주연의 포레스트 검프가 생각나는 기고문이네요. 인생에 있어서 좀 더 나아고자하는 사람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열어 놓는다는 발상이 아주 좋아보입니다. 지구 반대쪽에서나마 마음속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대학이 단지 스펙을 쌓는 도구로 사용되는 지금. 다시 한번 이 나라의 교육제도가 불상해 보이네요...

Recent Posts

[뉴페@스프] “미국 떠받쳐온 힘인데 무색해질 판… 그런데도 나만 좀 봐달라?”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16 시간 ago

머스크가 자초한 테슬라의 위기…반전 드라마? 도태의 시작?

일론 머스크는 지난 대선 기간에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에 '올인'하더니,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에는 정부효율부(DOGE) 수장이…

5 일 ago

[뉴페@스프] 트럼프 또 폭탄 발언… “종잡을 수 없는 트럼프, 움직이게 하는 방법”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6 일 ago

[뉴페@스프] ‘전원 사망’ 참사 브리핑에 나온 그들… “트럼프 말씀이 맞습니다”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1 주 ago

“불의를 멈춰달라” 감동의 목소리…이·팔 합작 다큐의 여운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를 수상한 작품 "노 아더 랜드"에 대한 각계의 반응을 둘러싸고 계속 많은…

1 주 ago

[뉴페@스프] 인사 끝나자마자 어색한 침묵?… 이번 명절, 어떤 대화 나누셨나요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2 주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