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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계 유대인은 왜 크리스마스마다 중국 음식점에 갈까

미국 내 유대인의 크리스마스 풍습이 모두의 시선을 끈 건 2010년 대법관 일레이나 케니건 (Elena Kagan) 의 청문회였을 겁니다.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던 무렵 린제이 그라함(Lindsay Graham) 이 지난 크리스마스에 어디에 있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아시잖아요, 다른 유대인들처럼 중국집에 있었을 겁니다.” 좌중이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척 슈머 의원이 끼어들어 한마디 덧붙였죠. “다른 데는 연 곳이 없잖아요.” (동영상 보기)

이제 미국의 유대인들은 크리스마스라 하면 플럼 소스가 끼얹어진 오리구이나 소고기 로메인 (중국식 국수 요리), 제너럴 쏘 치킨, 산라탕 (시고 매운 중국식 수프) 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열려있는 음식점이 없어서 중국음식점에 간다는 슈머 의원의 설명은 만두 속의 절반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 전통에는 역사적, 사회적, 종교적인 배경이 있지요.

“제너럴 쏘 치킨을 찾아서” ( The Search for General Tso) 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제니퍼 리는 크리스마스에 중국 음식을 먹는 전통이 20세기 초 뉴욕의 가장 큰 이민자 그룹이 유대인과 중국인이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설명합니다.

모두가 문을 닫는 일요일과 휴일에 중국음식점이 문을 연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유대인과 중국인에게는 다른 종류의 유대감이 있었죠. 이들은 “공통점” 이 아니라 이 사회에 속하지 않는다는 “다름” 덕분에 가까워졌습니다. 중국 음식을 좋아하는 유대인은 “이민 역사에서 이방인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줍니다.

1899년에서 1910년 사이 뉴욕의 유대인 숫자는 40만 명에서 100만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도시 인구의 25%를 차지할 정도였죠. 유대인의 미국 사회에 적응하는 동안 코셔음식 (유대인의 율법에 맞는 정결한 음식) 과 함께 중국음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음식은 코셔 음식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코셔 교리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 육류와 유제품을 섞어 쓰지 않는 것인데, 중국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내 다른 이민자 식단 중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이 이탈리안과 멕시칸인데 둘 다 육류와 유제품(치즈 등)을 섞어서 쓰죠. 중국 음식은 유대인이 율법을 어기지 않고 다른 쿠진을 즐길 수 있게 해줍니다.”

차이나 타운과 로워 이스트사이드에 널린 촙 수이 (중국식 잡탕 볶음요리) 나 중국식 덤플링 집은 돼지고기와 조개를 쓴다는 점 이외에는 종교적으로도 많이 닮아있습니다. 그러나 고작 백 년 전에 작은 지역에서 시작된 문화가 미국인과 유대인 전통으로 단단히 자리 잡은 건 여전히 인상적입니다. “중국음식점은 크리스마스 때마다 바빴지만, 이제는 한해 중에 가장 많은 매출을 내는 날일 정도입니다.”

음식 평론가들은 중국 음식이 지역에 따라 모습을 바꾸는 것도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라고 지적합니다. 미국식 중국 음식 (Chinese American) 은 중국 본토로 돌아가 새로운 메뉴를 선보일 정도지요. 미국에서 인기 높은 오렌지 치킨, 돼지고기 에그롤, 제너럴 쏘 치킨, 포츈 쿠키 등은 원래 중국에는 없는 메뉴입니다. 캣츠 델리( Katz’s Deli, 뉴욕의 유명정육점) 의 파르트라미로 에그롤을 만드는 숀펠드 씨는 본토의 맛을 지키지 않는다는 평가에 어깨를 으쓱합니다. “현지에 적응하는 건 중국 음식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에요. 이탈리아의 중국 음식점에 가면, 이탈리아인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을 팔죠.”

현지에 적응하는 중국식 식생활은 유대교의 문화와도 닮아있습니다. 여러 번 멸종 위기를 극복해 온 유대교는, 초기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리던 때와는 완전히 모양새가 다릅니다. 군주제에 사제들이 높은 위치를 차지하던 초기 유대교와 유대교회당에서 랍비를 중심으로 모이는 현대 유대교는 거의 다른 종교 같죠.

그렇다면 중국 음식을 미국의 유대인 삶을 대표하는 문화적 특성 중에 하나로 봐도 될까요? 리씨는 그렇다고 답합니다. “중국 음식은 이제 미국계 유대인의 전통 음식이에요. 겔피트 피쉬(송어 등을 끓인 이스라엘 음식)이나 오래된 동유럽 음식보다 더 대표적일 정도죠.”

종교적 관습은 시대나 지역에 따라 변화합니다. 크리스마스가 아니라면 미국 내 유대인들이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드러낼 일도 거의 없을 겁니다. (The Atlan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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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sangju

샌프란시스코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과 열린 인터넷이 인류의 진보를 도우리라 믿는 전형적인 실리콘밸리 테크 낙천주의자 너드입니다. 주로 테크/미디어/경영/경제 글을 올립니다만 제3세계, 문화생활, 식음료 관련 글을 쓸 때 더 신나하곤 합니다. 트위터 @heesangju에서 쓸데없는 잡담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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