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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에 대한 과잉반응은 바로 테러범이 원하는 것입니다

(이 칼럼을 쓴 피터 하처는 호주 일간지 ‘시드니 모닝 헤럴드’의 정치국제부장입니다.)

월요일 아침 11시가 좀 지난 시각, 저는 시드니 마틴 광장을 지나다 경찰이 린트 카페 주변을 에워싼 현장을 봤습니다. 저는 폴리스 라인 앞에서 구경꾼 수백 명에 섞여 광경을 지켜봤습니다.

경찰은 분명히 현장을 잘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군중은 뭔 일인지 궁금해 했지만, 이 긴장된 상황에서도 마치 길거리 공연을 구경하는 듯 했습니다. 어떤 시민들은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어떤 시민은 다른 구경꾼에게 자리를 비켜주고 돌아갔습니다. 현장은 완벽하게 고요했습니다. 전 집에 와서 TV 뉴스를 보고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총리는 갑작스런 테러를 맞은 호주인의 상태를 대변했습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인질 사건과 관련해 각료회의를 열 거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추가 정보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범행동기를 묻는 질문에 대해 “아직 범행동기를 모른다”라고 짧게 답했습니다. 총리는 범인이 정치적인 동기를 가지고 있을거라는 추측을 함부로 말하는 대신 “아주 충격적인 일이다”라고 신중하게 답했습니다.

그리고 총리는 카페에 갇힌 인질의 가족이나 친구의 심정을 고려해 “저는 이런 상황(인질이 되는 것)에 빠지는 것보다 더 끔찍하고 경악할만한 일을 상상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곧 한 무더기의 정치인들이 방송에 나와서 성명을 냈습니다. 노동당 대표 빌 쇼튼은 이 사건이 ‘소름끼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마치 단호한 자세를 보여주겠다는 것처럼, 야당 지도자 쇼튼은 “호주는 충격을 받았다.하지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호주 각 지역 주지사들이 쏟아낸 성명들을 듣고 있으면, 정치가의 대응이라는 것이 모순을 담고 있음을 느낍니다. 정치인들이 사건에 대해 깊이 언급하면 언급할 수록 국민의 불안감이 더 커진다는 모순입니다. 빅토리아 주지사 앤드루 다니엘은 이번 테러가 “섬뜩한 사건”이라면서 시드니 사건 범인은 빅토리아 시민에게는 어떤 위협도 주지 못한다고 강하게 선언했습니다. 퀸즐랜드 주지사 캠벨 뉴맨은 “모든 경찰력을 동원해 퀸즐랜드 주민을 보호할 것이다”라고 역설했습니다.

하루 종일 대부분의 미디어는 이 사건에 묻어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는 일부 정치인에게 판을 깔아줬고 선전 무대 역할을 했습니다.

테러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관해 호주는 오늘 전 세계에 교훈 하나를 줬습니다.

테러범들은 주목을 끌고, 공포를 조장하고, 그 공포로 인한 과잉반응을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테러를 저지릅니다. 과잉반응은 테러범에게 성공의 지표입니다.

테러는 약한 자가 강한 자와 싸울 때 쓰는 수법입니다. 테러는 적의 강함이 적 자신을 향하도록 만들기 위해 고안됐습니다. 오늘 범인은 어떻게 총 한자루와 무슬림 깃발 하나만으로 세상의 이목을 끌고 심각한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지를 보여줬습니다.

경찰의 대응은 정확히 옳았다고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 정치인과 미디어가 보여준 태도는 반성의 여지가 있었습니다.

월요일 저녁 아보트 총리는 이 사건이 “심각한 충격”이라며 “시드니 시민이 보여준 침착함에 경의를 표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정치인만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원문출처: 시드니모닝헤럴드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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