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51년 전, 1963년 11월 22일, 케네디는 암살되었습니다. 1년이 채 지나기전에 워렌 위원회는 889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바탕으로 이 사건이 리 하비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후로, 수많은 조사와 연구들이 이어졌지만 2002년 출간된 제랄드 포즈너의 “사건 종결(Case Closed)”과 2007년 빈센트 부글리오시의 “역사의 교정(Reclaming History)”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도 모두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케네디 암살은 오스왈드 혼자 저지른 일입니다.
하지만 2009년 CBS 뉴스에서 행한 설문조사에서는 여전히 60에서 80퍼센트의 미국인들이 이 사건에 어떤 음모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이는 케네디에게 총을 쏜 사람이 오스왈드 외에 다른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먼저 음모론을 부정하는, 곧 오스왈드가 범인임을 알려주는 증거들을 봅시다. 오스왈드의 지문이 찍힌 그의 카르카노 볼트액션 라이플은 그의 직장인 텍사스 교과서 보관창고의 그가 만든 저격용 장소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 장소에서도 그의 지문은 발견되었습니다. 케네디가 암살된 딜리 광장의 목격자 중 81%는 세 발의 총성을 들었습니다. 오스왈드의 아지트에는 세 개의 탄피가 있었습니다. 그의 라이플이 실제 총성과 같은 연속 발사가 가능하다는 것도 확인되었습니다. 이 라이플은 오스왈드가 그해 3월 우편으로 구매한 것과 같은 제품입니다. 케네디의 시가행렬이 도착하기 직전에 그의 동료들은 오스왈드를 창고 6층에서 보았고, 암살이 일어난 직후 그가 창고를 떠나는 것 역시 목격되었습니다. 오스왈드는 자기 집으로가 자신의 권총을 챙겼고 자신을 검문한 달라스의 경찰 J.D. 티펫에게 네발을 총알을 발사해 그를 죽였습니다. 여러 목격자가 이를 증언했습니다. 그는 현장을 떠나 근처의 극장으로가 표를 사지 않고 극장 안으로 숨어들었습니다. 경찰이 그를 찾았을 때 그는 다시 자신의 권총을 빼들어 그에게 총을 발사했지만 총은 작동하지 않았고 그는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다 끝났어 젠장”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5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음모론은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세 가지 심리적 요인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음모론은 사실로 밝혀지기도 합니다. 링컨의 암살이 그랬고, 워터게이트 사건도 그랬습니다. 우리는 모든 음모른을 근거없는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케네디 암살과 같이 분명한 증거가 드러났고 50년이 흐른 사건에 대해서는 이제 그만 음모론을 접어야할 것입니다.
(스켑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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