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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과 무생물의 경계는 없다

네덜란드 이펜베르그의 모래 언덕에 바람이 부는 날이면 당신은 커다란 버스 크기의 조형물이 언덕을 천천히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플라스틱 튜브와 나무, 돛이 복잡하게 얽힌 수많은 다리를 움직여 이동하는 이 물체는 마치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들은 네덜란드의 예술가 테오 얀센의 작품입니다. 그의 웹사이트에는 이렇게 써 있습니다. “1990년부터 나는 새로운 종류의 생명체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는 그의 작품들을 스트랜드비스트(strandbeest)라고 부릅니다. “나는 언젠가는 이들을 해변가에 무리지어 흩어놓고 싶어요. 그러면 이들은 자신만의 삶을 살게 되겠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트랜드비스트가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는 하지만, 이들이 살아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 겁니다. 이들은 정교하고 아름답지만 생명을 가지지 않은 어떤 기계에 불과하다고 말이죠.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이런 생각에 동의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 때는 내가 생명의 본질에 대한 진정한 통찰력을 가지기 전이었습니다. 이제 나는 스트랜드비스트가 곰팡이나 식물과같은 다른 생명체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나는 어떤 것도 진정으로 살아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명이란 무엇일까요? 이것은 과학이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철학자와 과학자들은 생명의 보편적이고 정확한 정의를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오늘날의 교과서에는 생명은 조직적이며, 성장하고, 번식하고, 진화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써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의에 맞지 않는 수많은 예외적 생명체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수정 결정은 매우 조직적이며, 성장하고, 자신의 형태를 충실히 복제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수정이 살아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컴퓨터 프로그램들은 번식하고, 짝을 짓고, 진화하지만 이들 역시 우리는 생명체로 여기지 않습니다. 반대로, 젤리 모양의 미생물인 완보동물(tardigrades)이나 아르테미아 새우는 수 년 간의 동면기간 동안 먹지도 않고, 성장하거나 형태를 바꾸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들을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90년대 NASA의 과학자들은 다른 행성의 생명을 찾기 위해 생명을 임시로 정의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진화능력을 갖추고 스스로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생명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물론 이 정의도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DNA와 RNA를 단순한 단백질로 감싸고 있는 바이러스를 생각해 봅시다. 이들은 다른 세포에 침입해 자신을 복제할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떤 생명체보다도 빠르게 진화합니다. 그러나 생물학자들은 이들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여길 것인지에 대해 아직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NASA 에 참여했던 생물학자 제랄드 조이스는 바이러스는 “스스로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생명체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사실 바이러스는 자신이 감염시킨 다른 세포 안에서만 진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우리는 다른 기생 생명체들을 비록 이들이 홀로 살아갈 수 없다 하더라도 당연히 살아있는 것으로 여깁니다. 내장의 기생충이나 다른 식물의 수액을 빠는 덩굴식물, 거미를 감염시켜 죽인 후 그 사체에서 오렌지 색의 뿔을 키우는 곰팡이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바이러스처럼 그 숙주에 번식과 진화를 의존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들은 살아있는 생물로 여겨집니다.

제랄드 조이스는 10년 동안 NASA와 함께 일한 이후, 자신들이 내렸던 생명의 정의를 더 위태롭게 만드는 한 실험과 마주쳤습니다. 그들은 실험실에서 때때로 서로를 복제하는 두 RNA 분자 쌍을 발견했습니다. 40억년 전, 지구가 원시 수프 상태일 때 이와 비슷한 RNA 들이 우연히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이들은 바이러스보다 더 간단한 형태이지만 번식과 진화가 가능합니다. 조이스는 이들이 NASA 의 정의에 부합한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이들이 살아있다고는 쉽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왜 이런 모순들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왜 과학자들은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하는 것을, 그리고 바이러스가 생명체인지를 결정하기를 그렇게 어려워할까요? 그것은 그들이 실재하지 않는 어떤 개념을 정의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나의 결론입니다. 생명이란 그저 관념일 뿐입니다. 현실 세계에서 존재하고 구별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내 말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지는 마음속에 떠올리는 모형과 순수한 개념 사이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때때로 우리의 두뇌는 어떤 대상을 나타내는 표상을 만들어냅니다. 눈에 들어온 소나무에서 반사된 빛과 코를 자극하는 솔잎의 분자들의 자극들이 더해져 우리는 나무에 대한 기억을 만들게 됩니다. 뇌는 다른 대상에 대한 개념들 역시 이러한 관찰을 기반으로 만들어내며, 이는 세상을 인식하는 유용한 방법입니다. 우리가 “나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순수한 개념으로의 나무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나무”는 우리의 마음속에만 존재합니다. 세상에 우리가 나무라고 뭉뚱거려 표현하는 수십억의 식물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당신은 식물학자들이 나무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어떤 식물이 나무(tree)인지, 관목(shrub)인지를 구별하는 것은 때로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나무”와 “관목”은 식물이 가진 고유의 특성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에게 붙인 이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생명(life)”도 이와 비슷합니다. 우리가 어떤 대상들을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으로 구분하는 것은 종종 유용할 수 있지만, 그러한 구분은 사실 우리의 마음 속에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실 생명을 정의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일 뿐 아니라 그 대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불필요하기까지 합니다. 가장 기초적인 수준에서 유일하게 의미있는 것은 그 대상을 이루는 원자들과 다른 입자들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복잡도의 척도에는 물 분자 하나처럼 극히 간단한 대상에서부터 개미집처럼 놀랄만큼 복잡한 대상들이 존재합니다. 생명의 특징이라 여겼던 대사, 번식, 진화와 같은 활동들은 이 복잡도 척도상의 여러 다른 수준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생명의 경계로 딱 떨어지는 경계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들이 때로 우리가 생명체만의 특성으로 여기는 그런 활동들을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살아있다고 여기는 것들이 그런 특성을 갖추지 못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들을 단 하나의 기준, 곧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으로 구분하려 했으며, 현실에서 아무런 의미없는 경계선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생명이란 개념이 그저 우리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실용적인 개념일 뿐이며, 우주의 실재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를 인정하는 것은 여러모로 우리의 생각을 자유롭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는 더 이상 얀센의 작품들이 살아있는 것인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스트랜드비스트가 우리를 매혹시키는 이유는, 이들이 “살아있는 것들”이 우리를 매혹시키는 그 특성들을 정확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이것은 이들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고, 바로 그 복잡함 속에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스트랜드비스트의 돛이 바람에 의해 흔들릴 때, 다리들은 규칙을 가지고 굽혀지고 펴지며, 이 물체의 움직임은 시작됩니다. 나는 스트랜드비스트의 의지와 집요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장엄한 존재가 살아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지켜볼 뿐입니다.

(뉴욕타임즈)

스트랜드비스트 유튜브 영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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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ita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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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외로 생명을 정의하는 건 쉽다고 생각합니다 죽는 것이 생명이죠 수정은 죽지 않습니다 완보동물는 언젠가는 죽습니다 전 간단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생물은 생명 현상의 특성 6가지로 설명이 가능한 것은 고등학교때 배우게 됩니다. 세포로 이루어져있고, 물질 대사를 하고, 자극에 대해 반응하고 항상성을 유지하며, 발생과 생장을 하고, 생식과 유전을 하고, 환경에 적응하고 진화하는 것이 생물이 가지는 특성들입니다. 바이러스는 생물적인 특성과 무생물적인 특성 모두 가지지만 기준에 미달하는 특성이 많기 때문에 replicator로 간주하고, RNA 또한 생명의 기원이라는 가설이 있지만 고유한 생명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생명을 정의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정의를 내리기 위해 전전긍긍했지요. 생명과학은 생명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지요. 따라서 생명에 대한 공통의 합의점과 약속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과서에서도 맨 첫 단원으로 등장을 하게 되는 것일 테고요. 이렇게 내려진 정의를 기반으로 생명과학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살아있는것 같으니까' 그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를 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현상에 대해 공부하려면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먼저 알아야하죠. 이건 물리도, 화학도, 모든 분야의 출발점이 그렇습니다. 학문에 대한 이해가 있고 목표가 있습니다.
    생명을 정의하는 일을 매우 어려운 일이며 나무와 관목을 구별하는 일 또한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이 이렇게 만들어낸 관념들로 다양한 생명현상들에 대해 통합적이고 공통적인 이해를 이뤄낼 수 있습니다. 계통발생학을 연구하는 이유도, 많은 의견 차이가 있지만 어쨌건 이런 분류들을 통해서 생물들간의 진화 관계나 기원에 대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쉬운 예를 들자면, 미지의 새로운 생물을 관찰하게 될 때 생물들이 공통적으로 세포를 지니고, 세포의 구성요소들은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이용하면 앞서 관측했던 사실들로부터 다양한 유추들을 해낼 수 있겠지요. 그 대상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데 충분히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생명과 윤리가 충돌하게 될때 생명의 정의가 비로소 활약하게 됩니다. 생명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다보니 많은 생명들이 희생되고, 줄기세포나 수정란을 이용하는 실험에도 어디까지가 생명인가에 대해서 논의가 되고 있죠. 따라서 생명과학을 할때 생명과학에 대한 고찰들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글을 지워버렸네요ㅎㅎ 다시 작성할게요.

        생물과 무생물은 ‘세포로 이루어져있다’, ‘물질대사를 한다’, ‘자극에 대해 반응하고 항상성을 유지한다’, ‘발생과 생장을 한다’, ‘생식과 유전을 한다’, ‘환경에 적응하고 진화한다’ 여섯가지 기준을 체로 삼아 걸러낼 수 있다고 봅니다. 저자가 말하는 애매하다는 경계도 사실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어느정도 합의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바이러스는 생물이라 보긴 어렵고 'replicator'라 여기며 RNA도 마찬가지로 고유의 생명으로 인정하지 않는 입장입니다. 현재 지구 생물의 전구체이지 생명 그자체는 아니라고 생각이 드네요.

        생명을 정의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정의를 내리기 위해 고민했을테고요. 생명과학은 생명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므로 생명에 대한 공통의 합의점과 약속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과서에서도 맨 첫 단원으로 등장을 하게 되겠죠. 이렇게 내려진 정의를 기반으로 생명과학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살아 있는 것 같으니까' 그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를 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현상에 대해 공부하려면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이건 물리도, 화학도, 모든 분야의 출발점이 그렇고, 정의를 바탕으로 체계가 잡힙니다. 학문은 그것이 다루게 될 대상에 대한 이해가 있고 목표가 있습니다.

        생명을 정의하는 일을 매우 어려운 일인 것은 사실입니다. 저자의 말대로 ‘나무’와 ‘관목’을 구별하는 일은 또한 매우 어려운 일이며 애매모호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관념들로 다양한 생명현상들에 대해 통합적이고 공통적인 이해를 이뤄낼 수 있습니다. 계통발생학을 연구하는 이유도, 많은 의견 차이가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나름의 분류들을 통해서 생물들 간의 진화 관계나 기원에 대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진행됩니다. 더 쉬운 예를 들자면, 미지의 새로운 생물을 관찰하게 될 때 생물들이 공통적으로 세포를 지니고, 세포의 구성요소들은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이용하면 앞서 관측했던 사실들로부터 다양한 유추들을 해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관찰들은 그 대상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데 충분히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생명과 윤리가 충돌하게 될 때 생명의 정의가 비로소 활약하게 됩니다. 생명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다보니 많은 생명들이 희생되고, 줄기세포나 수정란을 이용하는 실험에도 어디까지가 생명인가에 대해서 논의가 됩니다. 따라서 생명과학을 할 때 생명에 대한 원초적인 고찰들은 필수불가결한 것일 수밖에 없고, 이런 입장에서 생명에 대한 정의는 합의되어야 합니다.

        저자의 글은 '생명 정의는 필요없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가 생명 정의의 중요성을 중점적으로 지적하며 글을 쓴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잘못된 생각과 사실을 독자들에게 전달해도 되는 건 아닌거 같은데요~^^

  • 단순히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를 허물고 좀 더 자유로운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이 세상 모든 것에 생명이 있다.'라고 주장하는 게 훨씬 잘 먹힐 듯하네요. 이 세상 모든 게 생명이라고 주장하는 거나 생명이란 환상이고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거나 같은 레벨의 이야기 같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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