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삶의 즐거움을 찾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폭풍우를 만나 태평양에 추락한 척 놀랜드(톰 행크스)는 무인도에서 4년을 지내는 동안 배구공에 직접 그려넣은 가상의 인물 ‘윌슨’과 대화하며 외로움을 견뎌냅니다.
척 놀랜드와 달리 현대인의 삶은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그들과 실제적인 사회적인 관계를 맺고 있을까요? 우리는 종종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낯선 사람의 바로 옆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사회적으로 진화한 생명체인 인간이 이 순간 가장 비사회적인 생명체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가 합리적이지 않다면 어떨까요? 미국 시카고 대학의 니컬러스 에플리와 줄리아나 슈레더는 이 문제를 연구해보기로 결심했고, 일련의 실험을 통해 이런 모순을 설명할 수 있는 단서들을 찾았습니다. 연구 결과는 지난 7월 ‘고독을 찾는 실수(Mistakenly Seeking Solitude)’라는 제목으로 국제학술지 <실험심리학 저널(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에 발표되었습니다.
먼저 이들은 일리노이 홈우드의 메트라 역 등지에서 홀로 기차를 타는 사람들을 섭외했습니다. 기차 탑승자 118명이 실험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현장에서 밝혔습니다. 참가자들은 옆 사람과 대화하기, 고독하게 앉아있기, 평소처럼 행동하기라는 세 가지 행동 중 하나를 할당받았습니다. 참가자들은 실험 후 자신의 경험을 연구진에게 우편으로 보냈습니다.
한편, 연구진은 다른 참가자들에게 위의 세 가지 행동, 즉 대화하기, 고독하게 있기, 평소처럼 행동하기를 그저 머리속으로 상상할 것을 부탁했고, 그 경험이 어떨지를 예측하도록 부탁했습니다.
그 결과, 이 두 실험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정반대로 나타났습니다. 곧, 실제로 행동을 했던 사람들은 대화를 가장 즐거운 경험으로, 그리고 고독을 가장 즐겁지 않은 경험으로 꼽은 반면, 이를 예측만 했던 사람들은 고독을 가장 즐거울 것으로, 그리고 낯선 이와의 대화를 가장 즐겁지 않을 것으로 답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곧, 우리가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기회들을 어떤 오해, 곧 다른 이와의 대화가 즐겁지 않을 것이라는 오해에 의해 놓치고 있음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이런 오해를 가지게 되었을까요? 왜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배우지 못했을까요?
연구진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다음 가설을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지 못하게 하는 어떤 장벽이 존재하고, 이 장벽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즐거움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아마 가장 명백한 장벽은 ‘낯선 사람과는 말을 하지 말것’이라는 사회적 관습일 겁니다. 또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더 예의바른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대화를 거부하거나, 혹은 대화가 시작되더라도 막상 할 말이 없을지 모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첫번째 실험에서 사람들이 낯선 사람과의 대화를 즐겁게 기억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선호를 잘못 예측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효용이 낮아지는 ‘다원적 무지’의 좋은 예입니다. 즉,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침묵을 그 사람들이 나머지 다른 사람들에 대해 무관심하기 때문으로 해석함으로써 누구도 대화를 먼저 시작하기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문에, 단순히 그 순간의 두 사람의 삶의 질이 낮아질 뿐 아니라, 다른 이와의 대화가 즐겁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는 기회마저 차단하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설문조사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대화를 싫어할 것이라는 예측이 실제로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임을 확인했습니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실제 기차역에서 이루어졌던 앞서의 실험을 보다 통제된 환경에서 다시 수행했습니다. 사실 첫번째 실험은 우리가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것이 즐거운 경험이라는 것을 밝혔을 뿐, 낯선 사람으로부터 대화를 요청 ‘당하는’것이 즐거운 경험일지는, 즉 즐거움이 전달되는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또, 첫번째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실험자의 지시를 따랐고,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장벽을 쉽게 무시하게 만들어 그들이 더 쉽게 즐거움을 느끼게 만들었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이를 검증하기 위해 실험실에 가상의 치과 대기실을 만들고 참가자들에게 자유롭게 대화나 고독을 선택하도록 지시했고, 또 어떤 참가자들에게는 아무런 지시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모든 경우에 있어,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거나 또는 대화를 요청당한 이들은 그 경험이 즐거웠다고 말했습니다.
위의 결과들은 인간이 얼마나 사회적인 동물인지를 다시 한 번 알려주는 당연한 결과로 보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삶을 더 즐겁게 만들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놓치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도 알려줍니다. 물론 한국과는 다른 사회 문화적 환경을 가진 나라의 실험 결과를 우리 일상에 바로 적용할 수는 없을 겁니다. 때로 지하철과 버스는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기에는 너무 번잡하고 불편한 공간일 수 있습니다. 또 실제로 상대방이 어떤 일에 집중하고 있거나 대화를 하기에는 피곤한 상태일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도 우리는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그리고 낯선 사람에게 말 붙이는 것을 이상한 행동으로 생각하지나 않을지 두려워 서로 삶의 질을 높여줄 기회들을 그냥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분명한 것은, 우리가 스쳐 보내는 그 한 사람 한 사람과의 대화가 우리로 하여금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을 키울 수 있게 만들고 그 결과, 우리 사회의 공동체 정신을 살리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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