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뉴스를 보노라면 우크라이나 사태, 이라크 내전, 남중국해 분쟁 관련 기사가 국제면을 뒤덮고 있습니다. 이 세 이슈는 언뜻 연관성이 없어 보입니다만, 혹시 공통점은 없을까요?
미국 바드칼리지의 월터 러셀 미드 교수는 최근 <포린 어페어>에 기고한 글 ‘지정학의 귀환’에서 위의 세 사건에 공통점이 있다고 말합니다. 미국 중심 국제 질서에 대한 도전입니다.
소련 붕괴 이후 자리 잡은 세계 질서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경제 체제 세계화, 다자간 기구의 등장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특징으로 세계 최강국으로서 도전받지 않는 미국의 지위입니다.
문제는 그 세계 질서가 지금 위협을 받고 있느냐입니다. 미드 교수는 “중국, 러시아, 이란은 냉전 이후 고착된 현 지정학적 질서를 인정한 적이 없으며 이 질서를 뒤집으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우크라이나 위기는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생생한 사례입니다. 1991년 이후 동유럽에서 지배력을 잃은 데 분노했던 러시아는 결국 크림반도를 공식 합병했습니다. 중국이 점점 더 적극적으로 영토 분쟁을 제기하고 이란이 중동 질서에 명백히 불만을 표시하는 것도 미드 교수 주장의 핵심 근거입니다. 그는 이 세 나라를 “수정주의 세력”으로 규정하며 “이들이 냉전 이후 질서를 뒤집지는 못했지만…… 이론의 여지가 없던 국제 질서를 도전 가능한 상황으로 바꾸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런 미드의 주장에 대해 프린스턴대학의 아이켄베리 교수는 “현실을 엄청나게 오독한 기우”일 뿐이라고 반박합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완전한 수정주의 세력이라기보다는 기껏해야 일시적인 방해물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미국은 60곳 국가와 군사 협력을 맺고 있지만, 러시아는 공식적인 우방국이 8곳에 불과하며, 중국의 군사적 우방은 북한뿐입니다. 미국 주도 연합 세력이 축적한 군사력은 중국이나 러시아가 앞으로 수십 년간 노력해도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압도적입니다. 또 미국은 주변에 다른 강대국을 이웃으로 두지 않은 유일한 강대국이라는 점에서 지리적 이점이 큽니다. 나아가 미국은 보편적으로 호소력 있는 이념을 고양하고 있지만, 러시아나 중국은 내세울 만한 매력적인 사상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이른바 “수정주의 세력”은 실제로 전혀 수정주의자도 아니라는 게 아이켄베리 교수의 믿음입니다. 그들은 궁극적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에서 이득을 얻고 있기 때문에, 현 체제에 도전하지 않습니다. 아이켄베리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비록 그들(중국, 러시아, 이란)이 현 지정학 체제의 정점에 미국이 서 있는 걸 분개하긴 하지만, 그들은 이 체계의 근본적인 논리를 수용하고 있다. 현 체제의 개방성 덕분에 그들은 다른 세계와 무역, 투자, 기술 이전을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러시아와 중국은 UN에 거부권을 가진 국가들이다. 그들의 이익은 현재 체제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 그들은 지정학적 내부자다.”
그럼 이 두 해석 가운데 어느 쪽이 설득력 있을까요? 제가 솔직히 자인할 것이 하나 있군요. 저는 2010년에 펴낸 <제로섬 세계>라는 책에서 중국,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 지정학 경쟁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 바 있습니다. 미국 국력이 상대적으로 쇠퇴하면 미국 주도 국제 질서가 도전을 받을 거라는 게 제 시각이었습니다. 제로섬 게임에서 윈윈 게임으로 국제 관계를 바꾸려고 했던 서방의 노력이 실패했음을 현 정세가 확실하게 보여준다는 미드 교수의 주장에 자연스레 동조하게 됩니다.
물론 결론이 쉽게 나진 않습니다. 우크라이나와 중국해상의 긴장 고조는 제로섬 이론에 딱 맞아 보입니다. 하지만 러시아와 중국 모두 아직은, 미국 주도 국제 질서에 확실히 제동을 걸진 않았습니다. 사실, 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확대하지 못했다면, 푸틴이 ‘서방과 전면적으로 대립하기엔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 크다’고 결정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란의 경우는 현 국제질서 바깥에 있다는 점에서 확실히 수정주의 세력의 특징과 일치합니다. 하지만 경제 제재로 피폐해진 이란 정권 역시, 원자력 발전계획을 두고 서방과 협상을 하며 국제 무대로 복귀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잠재적 도전자인 것이 사실입니다. 러시아와는 다르게, 중국은 신흥 강대국이며 어떤 기준에선 세계 최대 경제 규모를 자랑합니다. 중국은 아직 크림 반도를 합병하는 것 같은 무모한 시도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중국은 국외 이슈에 대해선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죠. 하지만 몇몇 미국 우방을 포함한 이웃 나라 분쟁에 중국이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려는 자세는 명백해 보입니다.
중국이 진정으로 세계 질서를 재편하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단지 현재 틀에서 좀 더 적극적이고 싶은 건지는 학계의 논쟁거리입니다. 분명해 보이는 것은 전통적으로 경제 성장을 강조했던 중국이 최근에는 정치나 안보 이슈에서 더 국수주의적인 자세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점입니다. 이런 변화는 중국 이웃 나라와 미국을 더 긴장하도록 만듭니다.
이런 현상을 “지정학의 귀환”이라거나 “제로섬 세계”의 발흥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요. 어떤 용어를 쓰든 간에 위험한 경향으로 보입니다. (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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