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IT경영경제

무엇이 언론을 편향되게 만들었는가

시카고 대학의 매튜 갠츠코우(Mathew Gentzkow) 교수와 제시 샤피로(Jesse Shapiro)가 미국 400개 신문사의 정치적 성향을 조사했습니다. 연구자들은 객관적으로 각 신문사의 정치적 성향을 측정하기 위해 먼저 민주당과 공화당이 자주 사용하는 언어를 조사했습니다. 진보 성향의 민주당은 ‘최저임금’ ‘정유회사’ ‘야생동물 보호’ 같은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데 비해 보수적인 공화당은 ‘감세’ ‘사유 재산권’ ‘경제 발전’ 같은 단어를 주로 사용합니다. 민주당은 흑인 인권 운동의 상징인 로사 파크스를 즐겨 인용하는 반면 공화당은 컨츄리 뮤직을 들려주는 가장 오래된 라디오 프로그램 ‘그랜드 올 오프리(Grand Ole Opry)’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민주당/공화당에 부합하는 단어를 선정한 후 2005년부터 발행된 모든 신문에서(사설 제외) 각 단어가 언급된 횟수를 산정해보았습니다. 결과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진보, 워싱턴타임즈와 오클라호마일보는 보수, 뉴욕타임즈는 중도 진보, 월스트리트 저널은 중도 보수 등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문사의 ‘성향’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조사해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가정은 신문사 소유주의 입김입니다. 특정 사주가 언론을 장악하면 다양한 견해를 보장할 수 없다는 믿음에서 신문사 인수 합병에 규제를 두는 정책도 많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갠츠교우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특정 사주가 보유한 여러 개의 신문이 같은 정치적 견해를 펼칠 가능성은 낮았습니다. 소유주의 정치 기부금으로 가늠한 소유주의 정치적 성향과 보유 신문사의 성향이 같을 가능성도 낮았죠.

그렇다면 중요한 요인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그 신문을 받아보는 독자들의 구성이었습니다. 민주당을 찍는 유권자들이 많은 소위 블루 스테이트의 지역지는 진보 성향을 띄었으며, 반대로 공화당이 우세한 지역의 언론은 보수 성향을 띄었습니다. 그런 언론 때문에 지역 정치색이 결정된건 아니냐고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질문처럼 보이는 이 문제는 사실 언론이 종교까지 바꾸어놓지는 않을 거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색채가 강한 지역일수록 보수적인 주민이 많고 신문사도 보수적이었습니다. 신문사가 지역 주민의 종교까지 바꿀 만큼의 영향력을 가진 게 아니라면, 신문사가 독자에 영향을 끼쳤다기보다 독자가 신문사의 논조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결국 신문 사업도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따라 소비자가 원하는 걸 제공하고 있다는 거죠.

이 현상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역할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합니다. 시민들이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접할 기회가 줄어들고, 내 의견을 강화시키는 글에만 노출된다면 견해를 바꿀 일이 생기기나 할까요? (NYT)

원문보기

heesangju

샌프란시스코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과 열린 인터넷이 인류의 진보를 도우리라 믿는 전형적인 실리콘밸리 테크 낙천주의자 너드입니다. 주로 테크/미디어/경영/경제 글을 올립니다만 제3세계, 문화생활, 식음료 관련 글을 쓸 때 더 신나하곤 합니다. 트위터 @heesangju에서 쓸데없는 잡담을 하고 있습니다.

View Comments

  • 항상 좋은 뉴스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어느게 닭과 달걀의 시작이냐는 질문에 언론이 종교까지 바꾸어놓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면 대답은 단순해딥니다. " 부분에 오타를 발견했네요~

Recent Posts

[뉴페@스프] “응원하는 야구팀보다 강한” 지지정당 대물림… 근데 ‘대전환’ 올 수 있다고?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18 시간 ago

[뉴페@스프] ‘이건 내 목소리?’ 나도 모를 정도로 감쪽같이 속였는데… 역설적으로 따라온 부작용

* 비상 계엄령 선포와 내란에 이은 탄핵 정국으로 인해 한동안 쉬었던 스브스프리미엄에 쓴 해설 시차발행을…

3 일 ago

살해범 옹호가 “정의 구현”? ‘피 묻은 돈’을 진정 해결하려면…

우리나라 뉴스가 반헌법적인 계엄령을 선포해 내란죄 피의자가 된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는 뉴스로 도배되는 사이 미국에서…

4 일 ago

미국도 네 번뿐이었는데 우리는? 잦은 탄핵이 좋은 건 아니지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 투표가 오늘 진행됩니다. 첫 번째 투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집단으로 투표에…

1 주 ago

“부정 선거” 우기던 트럼프가 계엄령이라는 카드는 내쳤던 이유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와 해제 이후 미국 언론도 한국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사태에 큰 관심을 보이고…

2 주 ago

트럼프, 대놓고 겨냥하는데… “오히려 기회, 중국은 계획대로 움직이는 중”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에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안보…

3 주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