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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역사 전쟁, 미국이 결자해지해야

-지난주 국내 언론에서 간략하게 소개된 미국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APARC)의 신기욱 소장과 대니얼 스나이더 부소장의 포린어페어스지 칼럼의 확장 요약본입니다.

최근 2차대전 당시의 역사 문제를 둘러싸고 동아시아의 분위기가 악화되면서, 역내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 사이는 멀어지고 중국과 미국의 라이벌 관계는 격화되고 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작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예고 없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일이었습니다. 주변국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뻔히 알면서 강행한 일인데다가,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과 만나 도발적인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한지 수주 만이어서 파장은 더욱 컸죠. 한국과 일본은 지난 20년 동안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지만, 그 어떤 성과도 오래 가지는 못했습니다. 한국은 미국의 역할을 요청했지만, 미국은 대화와 자제를 촉구하면서도 직접적인 개입을 꺼려왔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미국도 마냥 지금의 정책을 유지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중국은 이미 한국과 입장을 함께 하면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일본의 “군국주의”에 반대한다는 프로파간다를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면서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려면, 과거사 문제 해결 과정을 주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현 상황에 미국의 책임이 없다는 것은 속 편한 희망사항에 불과합니다. 영토와 보상, 정의를 둘러싸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있는데도 이를 덮어둔 채 전후 지역 질서를 만들어간 주체가 바로 미국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전후에 내린 몇 가지 결정은 역내 갈등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일례로, 천황이 일본 좌파를 견제하기 위해 민족주의 성향의 보수주의자들의 부활을 도운 일은 일본 내 과거사 청산을 방해했지만, 미국은 이를 내버려 두었죠. 한국과 일본이 맺은 국교 정상화 협약도 워싱턴의 주선으로 이루어진 것이죠. 냉전 시기에는 이러한 정책에 핑계가 있었습니다. 소련과 중국이라는 공동의 주적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역내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경제가 통합되면서 묻어둔 이슈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는 바로 일제 식민 통치 하에서 강제 노동에 동원된 개개인에 대한 보상입니다. 여기에는 아시아 전역에서 동원된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도 포함됩니다. 미국은 지금까지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 조약, 그리고 한일, 중일 간 국교 정상화 조약으로 보상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일본을 포함한 각국 법학자들은 국가 간에 문제가 해결되었어도 개개인이 보상을 청구할 권리는 여전히 유지된다고 말합니다. 2000년 독일 정부와 기업들이 함께 만든 미래기금(Fund for the Future)이 좋은 모델이 될 것입니다. 52억 유로 규모의 이 기금으로 지금까지 100여 나라 166만 명의 강제 노동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았습니다. 물론 기금 창설은 일본이 주도해야겠지만, 미국이 할 수 있는 일도 있을 겁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법적 해석을 바꾸어 개인 피해자들이 보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다거나, 일본이 이런 기금을 만들어 보상할 경우 관련국에 이번이 보상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책이라는 약속을 받아두는 과정에도 역할을 할 수 있겠죠.

그 다음으로는 공개적인 사과가 있어야 합니다.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바르샤바 전쟁 희생자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장면은 과거 잘못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로 기억되고 있지만, 일본은 1995년에 제한적인 내용을 담은 총리 담화를 발표한 게 전부입니다. 그나마 무라야마 담화의 내용을 부인하는 보수 정치인들의 발언이 끊이질 않죠. 독일은 냉전을 통해 2차 대전의 적국이었던 프랑스, 영국 등과 화해할 기회가 있었지만 일본은 오히려 가장 큰 피해국 가운데 하나인 중국과 멀어졌다는 점에서 독일과 일본을 나란히 비교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총리가 난징 대학살 추모관을 방문하거나 서울의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난다면 이 장면은 브란트 총리의 사과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여기에도 미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먼저 나서서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희생을 돌아보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죠. 미국이 먼저 자신의 과거사를 청산해야만, 이 지역의 과거사 문제에 개입하는 행위도 정당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과제는 미래 세대를 제대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독일과 프랑스가 오랜 토론에 걸쳐 공동 역사 교과서를 펴낸 것 처럼, 동아시아의 미래 세대를 위한 역사 교과서도 나와야 합니다. 미국은 이 지역 국가들의 역사 교과서에 대한 연구를 해왔고, 그러한 연구로 공동 역사 교과서 집필 과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은 과거 홀로코스트 문제와 북아일랜드의 갈등 종식에도 개입해 성공을 거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이 다른 나라의 과거사 정리라는 부담스러운 과제에 관여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일랜드계 미국인, 유대계 미국인 커뮤니티가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기 때문입니다. 동아시아 문제에 있어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국계 미국인들의 노력으로 미국 내 위안부 기념비가 설립되기도 했죠. 미국은 지금까지 전쟁의 상처는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는 자세로 일관해왔지만, 세월은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인터넷의 발전에 힘입어 걸러지지 않은 강경 민족주의가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중국도 한국처럼 민주화된다면, 더 많은 과거사 문제들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미국이 동아시아 안보와 평화의 수호자를 자처한다면, 이제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Foreign Affai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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