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사회에서 음주로 인한 각종 폐해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매일같이 듣습니다. 알콜 중독으로 파탄난 가정, 술에 취해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 음주로 인한 각종 질병은 미디어의 단골 소재입니다. 보건 전문가, 정치인, 범죄학자, 사회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과도한 음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자며 다양한 제안을 내어놓습니다. 대부분 주류 가격에 하한선을 정하거나, 술집 운영 시간을 제한하는 등 규제의 형태를 띤 해결책들입니다.
하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영국인들은 언제나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음주가 현대 사회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죠. 르네상스 시대에는 일인당 연간 맥주와 에일 소비량이 600리터에 달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측정 방식이나 기록을 100% 신뢰하기는 어려워도 이는 엄청난 양입니다. 2011년 영국인의 일인당 연간 알콜 소비량은 74리터에 불과했으니까요. 크게 보면 음주를 둘러싼 오늘날의 현상도 중세와 계몽기, 빅토리안 시대를 관통하며 유유히 명맥을 이어온 도덕적 패닉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술 때문에 사회의 근본이 무너질 거라는 위기의식은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죠.
오늘날 달라진 것은 크게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여성들의 음주량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근대 이전까지 여성은 남성에 비해 약한 존재로 인식되었고, 조신하게 정숙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 하에 살았기 때문에 술을 많이 마실 수 없었습니다. 두번째는 혼자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입니다. 1800년대 전까지만해도 술을 파는 가게는 드물었고, 음주는 대부분 연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술을 곁들인 축제는 일상을 벗어나 남녀노소, 부자와 빈민 간 소통의 장이었습니다. 남들의 눈을 피해 혼자 술을 마시는 행위는 사회적인 지탄을 받았죠. 그러나 수퍼마켓에서 술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오늘날, 점점 많은 사람들이 음주량이나 행동에 제재를 받지 않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저는 술을 파는 상점과 다른 여가 활동에 밀려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펍이 음주 문제의 해결책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영국의 자랑스러운 전통인 펍이 가족,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소통하는 지역사회의 열린 공간으로 되살아날 수 있다면 술이 초래하는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것입니다.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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