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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를 멸종시킨 건 기후변화가 아닌 초기 인류?

현존하는 코끼리보다 훨씬 더 큰 몸집과 긴 엄니를 갖고 시베리아를 비롯한 추운 지방에 살았던 매머드(Mammoth). 캥거루나 코알라처럼 주머니에 새끼를 넣어 다니며 기르는 유대목 동물로 지금의 하마에 버금가는 큰 몸집을 갖고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에 분포하던 디프로토돈(Diprotodon). 지금까지 학계는 이들 초대형 초식동물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진 주된 이유로 갑작스런 기후 변화를 꼽아왔습니다. 그런데 오늘부터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서 열리는 학회 ‘초대형 동물들과 생태계(Megafauna and Ecosystem Function)’ 참가자들은 기후 변화가 아니라 초기 인류가 대형 동물들을 멸종시켰다고 주장합니다. 옥스포드 대학 생태과학과의 야드빈데르 말리(Yadvinder Malhi) 교수는 새로운 주장을 간단히 정리해 설명했습니다.

“1만 년 쯤 전에 빙하기를 비롯한 갑작스런 기후 변화가 지구에 닥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매머드를 비롯한 초대형 동물들은 수백만 년 동안 지구에 살아오면서 수십, 수백 번의 기후 변화를 겪어왔어요. 1만년 전 기후 변화가 특별히 가혹했다고 보긴 어렵고요. 그보다도 1만년 전은 초기 인류가 이들이 살고 있던 지역으로 이동해 거주를 시작한 시점과 일치하죠. 기후 변화와 달리 인간이라는 새로운 종족과의 만남은 동물들에게 씨를 말리는 재앙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7만년 전쯤 지금의 아프리카 대륙에 등장한 것으로 추정되는 현생 인류가 지금의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으로 건너간 시점은 5만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이 시기는 디프로토돈이 멸종한 시기와 거의 일치합니다. 그리고 1만 4천년 전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사이의 육로를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디딘 뒤 4천년 동안 이번에는 아메리카 대륙의 대형 초식동물들이 점점 자취를 감춰 멸종에 이릅니다. 코끼리나 코뿔소, 물소, 하마와 사자 등 몸집이 큰 동물들이 살고 있는 아프리카나 남아시아 일대를 대(大)동물의 고향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원래 다른 대륙에도 몸집이 더 큰 동물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새로운 학계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의 조상인 인류를 만나 멸종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높은 겁니다. 만약 초대형 동물들의 멸종이 정말 인류에 의한 것으로 밝혀진다면 지금껏 기본 전제로 여겨지던 학설들이 여럿 수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껏 학계는 자연의 변화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었던 인류가 변화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하고 나아가 자연을 정복하기 시작한 건 수천년 전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여겨 왔습니다. 하지만 인류가 특정 종을 멸종시킬 만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이 때부터 이미 인류는 자연과 생태계의 균형에 영향을 미쳐온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초대형 동물들은 번식지 안팎으로 식물의 씨앗을 뿌리고 영양을 나누며 생태계의 균형을 맞추는 데 일조해 왔습니다. 코끼리 같은 동물들이 아마존 일대의 열대과일을 먹고 그 씨를 배설물과 함께 다른 지역에 퍼뜨리는 식으로 말이죠. 동토층으로 뒤덮힌 시베리아 일대에서 풀이 자랄 수 있었던 것도 매머드가 열심히 풀을 먹고 씨앗을 옮겼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이들 동물들의 멸종으로 생태계의 영양 공급이 부족해지고, 균형이 깨졌습니다. 아마존에서는 전반적인 식생의 번식이 동물의 멸종으로 저해를 받았다면, 반대로 디프로토돈이 멸종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서는 식물을 먹어치우던 디프로토돈이 멸종한 뒤로 식물이 지나치게 온 땅을 덮어버려 산불, 들불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수백만 년 동안 지구에 살며 생태계의 한 축을 담당해오던 초대형 동물들이 멸종한 게 비교적 최근이라 할 수 있는 수만 년 전의 일이기 때문에 일부 과학자들은 현재 지구의 생태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정확히 복원하려면 몸집이 큰 초식동물들을 자연으로 되돌려보낸 뒤 결과를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코끼리나 코뿔소의 개체 수가 줄어드는 문제 또한 단순한 동물 보호 차원에서 다룰 일이 아니라 생태계 전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서 접근해야 할 겁니다.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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