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은 설익은 근대가 사회 전반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던 시기였습니다. 한 무리의 지성인들이 서로를 사후에 부검하기로 약속한 “상호부검협회(The Society of Mutual Autopsy)”도 당시 난립하던 협회중의 하나였습니다.
당시 부검은 인체의 신비에 접근하는 가장 확실한 방식이었습니다. 또한 한 인간의 지적, 정신적 특성이 육체, 특히 뇌의 형태와 구조에 영향을 받으리라는 생각 역시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검의 문제점은 부검이 행해지는 사체가 주로 무덤에서 탈취된 가난한 이들이었거나 사형을 당한 범죄자였다는 사실입니다. 대체로 이들은 사망한 이후에야 부검의 대상으로 결정 되었고 이들의 성격이나 인생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채 부검이 이루어졌습니다.
협회를 결성한 지식인들은 이들을 부검한 연구결과로 인간의 보편적인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서로를 사후에 부검하기로 약속하고, 또한 부검시에 그의 인생과 성격, 취향에 대한 글을 작성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역사학자 제니퍼 마이클 헥트는 자신의 논문에서 이 협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876년 10월, 스무명의 프랑스인들은 상호부검협회를 만들었고 과학의 발전을 위해 서로의 뇌를 부검하기로 서약했습니다. 이 협회는 몇 년 만에 여러 좌파와 극좌파의 유명인을 포함한 100명 이상의 회원을 가지는 협회로 성장했습니다. 이 협회의 전성기는 19세기의 마지막 20년이었지만 1차대전 시기까지는 새로운 회원이 가입했고 2차대전이 시작하기 전까지 서로를 부검하며 과학논문지에 자세한 뇌의 부검결과를 실었습니다.
이들의 과학적 목적은 많은 과학자의 관심을 끌었고, 브로카 영역으로 잘 알려진 뇌과학자 폴 브로카 역시 자신의 뇌를 이들로 하여금 해부하도록 허락했습니다.
한편, 이 협회의 또 다른 목적은 무신론의 홍보에도 있었습니다. 모두 무신론자였던 이들은 자신들이 스스로의 신체를 과학적 목적을 위해 아무런 종교적 거리낌없이 기증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좋은 의도로 시작한 협회들이 그러하듯이 이들의 쇠퇴도 매우 사소한 일로 시작되었습니다.
한 회원이 그의 아버지의 뇌를 해부하면서 그의 성격을 다소 찬양일색으로 묘사한 일이 있었고 이는 회원들간의 다툼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또한 창립회원중의 한 명이 종교에 귀의하게 되었고 이 역시 모임을 이끄는 이들간의 큰 불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들의 기본 정신은 오늘날에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는 한 개인이 자신의 신체를 과학을 위해 기증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의대에 기증할 경우 사체는 교육을 위해 사용되며 법의학연구소와 뇌질환 연구를 위한 뇌 은행도 기증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행위는 더이상 1870년대 이들의 선언만큼 정치적인 행위는 아닙니다.
제니퍼는 자신의 논문을 이렇게 끝맺고 있습니다.
이들은 당신의 인생을 간단한 보고서와 해부결과로 영원히 남길 수 있게 만든다는 세속적인 의미와 한 개인이 과학에 기여하며 궁극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게 만든다는 상당히 매혹적인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었습니다.
(Mind Ha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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