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세계

종교의 이름으로 고객을 거절할 자유를 허하라?

현재 미국 애리조나를 비롯한 여러 주에서는 사업주들이 동성애자 등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위배되는 집단에게 서비스를 거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의 법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오바마의 건강보험개혁안에 따라 직원들의 피임 관련 비용을 지원해야 하는 것이 종교의 자유에 반한다며 헌법 소원을 낸 사업주들도 있죠. 이러한 움직임이 종교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는 공포에서 비롯된 것이든, 아니면 지독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든 간에 그와 같은 정서가 눈에 띄게 확산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 공포가 정당하든, 정당하지 못 하든 간에 공포가 존재한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고요. 이른바 ‘종교의 자유 법’을 지지하는 이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종교의 자유 문제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며 비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들도 미국 내 종교의 자유를 북한 등 세계 여러 나라들과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다른 나라의 종교 탄압에 대해 충분히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현재 주 단위에서 입안되고 있는 ‘종교의 자유 법’은 미국 내 동성 결혼 허용에 영향을 받은 바가 큽니다. 동성 커플의 결혼식에 납품을 거부한 빵집이나 꽃집 등이 소송을 당하면서 종교의 자유가 위협받는다고 느낀 사람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종교의 자유 법’을 지지하는 한 목사는 이 법안이 동성애자들의 자유도 보장한다고 말합니다. 동성애자인 사업주도 동성애 혐오자에 대한 서비스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죠.

현 상황에서 논쟁의 핵심은 미국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종교의 자유가 상업 활동에서의 차별 금지보다 우선하는가 입니다. 종교 단체들은 ‘종교의 자유’라는 개념이 집이나 교회에서만 종교활동을 할 권리가 아니라, 공적인 영역에서도 의미 있는 방식으로 사상을 표출할 자유를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종교의 자유 법’의 지지자들은 인종 차별을 금지한 시민권법을 지지하지만, 동성애의 경우는 문제가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수 많은 반박 근거에도 불구하고 동성애 성향이 선택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흑인’으로 태어나는 것과는 다르다고 말합니다. 장사를 하면서 인종으로 고객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게 사회적인 합의 사항인데 비해, 자신의 판단에 따라 도덕적, 종교적으로 비난 받을만한 사람과는 사업적으로 얽히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미국 사람들도 많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 논란의 배경에는 미국 사회의 급격한 문화, 인구적 변화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새로운 가치의 등장에 따라 전통적인 가치가 위협받는 것은 인류 역사상 새로운 현상이 아니지만,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최근 너무 많은 것들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미시시피주에서 ‘종교의 자유 법’을 지지하는 한 목사는 “미국 사회가 종교인들에게 관용을 요구하면서도, 우리의 믿음에 관용과 존중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NPR)

(역주: 27일, 잰 브루어 애리조나주 주지사는 이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원문보기

eyesopen1

View Comments

  • 인종문제와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비껴가는 심각한 왜곡입니다.
    어느 누구도 손님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물건을 판매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손님의 얼굴에 동성애자라고 써 있는 것도 아니지요.

    문제가 되는 것은 손님이 요구하는 서비스가 직접적으로 판매자의 신념에 반하는 경우입니다. 즉 서비스의 내용이 판매자의 신념과 직접 충돌하는 경우입니다.
    예컨데 동성애에 대해 비판적인 판매자에게 '동성애 케잌을 만들어달라' 라고 요구하는 것이죠. 이런 요구조차 강제로 이행해야한다는 것은 신념의 자유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동성애 지지자에게 동성애 반대 홍보책자를 출판해달라고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나 다름 없죠.

    게다가 이런 서비스를 굳이 신념의 자유를 부정하면서까지 강요해야 할 합리적 이유도 찾을 수 없습니다. 세상엔 수많은 판매자가 있고, 그 중에는 얼마든지 해당 서비스를 해줄 판매자도 많이 있는데 말이죠. 다른 판매자를 찾으면 되는 방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타인의 신념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면서까지 특정 서비스를 구매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을까요?

    이런 서비스에 대한 강요를 금지하는 것은 단순히 특정 종교에 대한 혐오를 금지하는 것을 떠나, 기본적인 신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행위에 해당합니다. 이것을 겉모습을 보고 서비스를 거절하는 인종주의와 비교하는 것은 심각한 왜곡입니다.

Recent Posts

기후변화로 인한 ‘변화’가 이 정도였어? 뜻밖의 결과들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 기후, 자연 재해는 우리에게 더는 낯선 일이 아닙니다. 아예 "기후 재해"라는 말이…

6 시간 ago

[뉴페@스프] 경합지 잡긴 잡아야 하는데… 바이든의 딜레마, 돌파구 있을까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3 일 ago

데이트 상대로 ‘심리 상담’ 받는 사람을 선호한다고? 운동만 자기 관리가 아니다

보스턴 대학에서 일하는 정신과 의사가 ‘자녀의 정신 건강에 과몰입하는 미국 부모들’에 대한 칼럼을 기고 했습니다.…

4 일 ago

[뉴페@스프] 습관처럼 익숙한 것 너머를 쳐다볼 때 비로소 보이는 것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6 일 ago

‘사이다 발언’에 박수 갈채? 그에 앞서 생각해 볼 두 가지 용기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상대로 테러 공격을 벌인 뒤 그에 대한 반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군사 작전…

7 일 ago

[뉴페@스프] 점점 더 커지는 불평등의 ‘사각지대’가 있다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2 주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