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 에서 과학저술을 가르치며, 본인이 작가이기도 한 제스 므누킨이 Slate 에 기고한 글입니다.)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죽음을 들었을 때 나는 울었습니다. 그가 22살에 약을 끊었고 23년동안 술과 약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나를 공포에 질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그 23년 동안 아카데미를 받았고, 후보로 3번이나 지명되었으며, 그의 또래에서 가장 재능있는 배우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는 세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12년의 어느날, 그는 진통제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는 그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습니다.
약물 중독은 다양한 원인을 가지고 있고, 유전적 원인과 환경적 원인이 모두 존재합니다. 중독에 쉽게 빠지는 집안이 있지만, 동시에 많은 중독자들은 자기 가족들 중 처음으로 중독에 빠진 사람들입니다. 약을 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도 영향을 끼치지만, 그런 환경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약물중독에 빠지는 것도 아닙니다. 어떻게 약을 끊을 수 있는지는 더 복잡합니다. 약을 끊기 위한 표준화된 방법은 아직 존재하지 않으며 서로 다른 방법들의 효과를 분석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개인적 비밀을 잘 밝히지 않는다는 근본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요양원의 효과도 의심스럽습니다. 호프만은 지난 해 5월 스스로 요양원을 찾아갔으나 결국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번 끊었던 약물에 다시 중독되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한 연구는 의지와 무관한 만성질병인 당뇨, 천식, 고혈압 등이 재발하는 확률과 약물을 다시 찾는 확률이 비슷함을 보였습니다. 곧, 약을 끊었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얼마나 이를 버틸 수 있는가가 바로 문제의 핵심입니다. 한 연구는 5년동안 절제에 성공한 이들은 안전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보였지만, 그 연구는 단 8년동안 사람들을 관찰했던 연구였습니다.
나는 19살이었던 1991년, 약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2년 뒤, 나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다시 그로부터 2년 뒤 헤로인에 중독되었습니다. 알콜중독과 약물중독에 대해 우리가 알고있는 단 한가지는, 아무리 오랜 시간 이를 끊었다 하더라도 다시 여기에 빠져드는 것이 너무나 쉬운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2011년 나는 10여년의 뉴욕 생활을 끝내고 내가 자라고 교육받은 보스턴으로 돌아왔습니다. 나는 39살이었고 결혼한 상태였으며 1살 반 된 아이와 곧 태어날 아이가 있었습니다. 나는 세 권의 책을 썼고 몇 번의 상을 받았으며 MIT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남들에게 밝히는 내 인생입니다.
그러나 보스턴은 내가 남들에게 밝히지 않는 내 인생의 한 단면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나는 23살이던 1995년에서 1997년까지 정맥주사를 사용하는 마약에 중독되었었습니다. 나는 아이를 유아원에 데려다주면서 당시 내가 살던 아파트를 지나가야 했고, 내 연구실로 오면서 재활치료를 받던 침술원을 지나야 했습니다. 어느날 오후 나는 집사람과 함께 내가 과거에 실려왔던 응급실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녀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을 겁니다.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2004년으로 약을 끊은지 6년 이상 지났을때였습니다.
중독에 대한 한 연구는 장기간의 약물복용이 두뇌의 보상회로를 바꾼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어떤 간단한 유혹에 먼저 빠졌을 때 쉽게 과거의 약물에 다시 중독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 두뇌의 변화도 다시 장기간의 금욕으로 고칠 수 있습니다. 나는 종종 내게 마약을 팔던 이의 아파트 앞을 지났지만 다시 그에게 약을 살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험들은 마치 두개의 다른 세상이 얽혀진 지점을 내가 지나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MIT 의 동료나 다른 작가 친구들, 나의 출판사 지인들 중 누구도 내가 그 반대편 세상에 살았었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겁니다.
이는 불편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이 불편한 현실을 잊어버릴까봐 두렵습니다. 대부분의 일상에 치인 성인들은 업무를 마치고 종종 한 잔의 와인을 즐깁니다. 내게는 이 한 잔의 와인이 나를 과거로 돌려보내는 폭탄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무심코 와인 한잔을 받아 마신다면, 나는 아파트에 홀로 누워 팔에 주사기를 꽂고 삶을 끝마치게 될 지 모릅니다.
지난 2년 반동안 많은 일이 내게 있었습니다. 아이는 태어났고 우리는 집을 샀습니다. 나는 더 오랜시간을 MIT에 있게 되었고, 더 이상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 장소들을 지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는 종종 내가 얼마나 위험한 상태였는지를 잊고 살아가지만, 때로 내 팔의 상처나 버스 안에서 눈에 촛점을 잃은 이들은 나의 과거를 일깨워 줍니다. 당시 나의 친구들 중 몇몇은 결국 약을 끊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몇몇은 여전히 약을 끊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는 한 번은 운이 좋았습니다. 다시는 그 실험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무엇이 호프만으로 하여금, 그 오랜 기간의 인내뒤에 다시 약을 시작하도록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시금 화학적 위로의 세상으로 걸어 들어간 그가, 스스로 그 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는 것은 내게 너무 당연한 일로 느껴집니다. (S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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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은 아예 시작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담배도 그렇고..
근데 애들한테 이런 유혹이 참 강해서 문젭니다.
틀린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네요.
한 군데만 지적해주시면 그 부분에 대한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글이 너무 이상한 나머지 원문을 보고 그만 한마디했다가 이런 귀찮은 일이 생길까봐 댓글을 지우려 했지만 그런 기능이 없어서 못했습니다. 하지만 기왕 답변을 하셨으니 애써 번역해서 올리셨는데 미안하지만 조금만 쓸게요.
번역에 틀린 데가 너무 많아서 어디부터 언급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짧은 글인데 빼먹은 데는 왜 그렇게 많아요? 신문처럼 지면의 제약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I’ll notice someone nodding out on the bus. 여기서 nod out은 "눈인사"가 아니에요. slang으로서 "마약을 하고 멍한 상태에 빠지거나 잠이 든다"는 말이에요. 그리고 바로 그 전 문장의 "Days can go by without my thinking about how close I came to being a statistic"는 어디로 갔어요? "나는 종종.........잊고 살아가지만"이 그것의 번역인가요? to ‘be a statistic’ is to have the statistical example apply to you, ie: to be one of those who relapsed or died as a result.
a glass of wine is a gateway to my past—and that past provides a pretty robust pool of evidence that there’s not much separation between my having a drink and my ending up alone in an apartment with a needle in my arm. 여기서 gateway를 왜 "폭탄"이라고 완전히 의역하셨는지는 억지로 짐작해볼 수 있겠어요. 하지만 이건 그냥 "과거로 돌아가는 관문"이라고 해야죠. 아마도 통신에서 쓰이는 의미를 생각하고 gateway를 썼을 수도 있죠. 현재와 과거를 접속시켜주는 통로라는 의미로요. 어쨌든 그게 그거죠. (robust는 wine을 염두에 둔 말장난도 엿볼 수 있는데요, 번역에서 여기까지 배려할 순 없겠죠.) 위에서 4번째 단락에 "I decided to have a drink"가 있고 2년 후에 헤로인에 중독되었다고 하죠? 그런 자기의 과거는 상당히 생생하고 확고한 증거의 자원이라는 것이죠. 무슨 증거냐? 단 한 잔의 포도주였지만, 한 잔 두 잔, 그러다 결국 마약에 손을 대고 중독에 이르렀죠. 단 한 잔의 술을 마시는 것과 그러다가 결국 팔뚝에 바늘을 꼽고 혼자 아파트에 누워 있게 되는 경험 사이에는 별로 큰 구분이 없다는 증거. my having a drink, my ending up, 이렇게 my라고 해서 generalize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거죠.
그밖에 결정적으로 이상한 데가 많지만 시간이 없고 수고스러워 이만 씁니다. 특히 2번째 단락, 3번째 단락.
Anonymous 님, 답변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로 anonymous 로 쓰여진 글을 지울 수 있는 권한을 관리자 외의 다른 이들에게 제공하는 웹사이트는 거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잘 아실테구요. “이런 귀찮은 일이 생길까봐” 댓글을 꼭 지우시고 싶으셨다면 다시 댓글로 위 글을 지워달라고 쓰셨으면 제가 지웠을 것입니다.
일단 '틀렸다' 와 '빼먹었다'는 표현은 Anonymous 님과 저의 '번역'에 대한 생각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물론, 어디까지를 '번역'에 포함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저희의 ‘번역’ (또는 ‘저희가 올리는 글들’) 에 대한 생각은 위의 About 에 올려져 있는 슬로우뉴스의 인터뷰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anonymous 님이 ‘이 사이트는 번역을 하는 곳이 아니다’라고 생각하셔도 저희로서는 무관하다는 뜻입니다.)
‘Nod out’ 은 제가 잘못 생각했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두번째 문단의 ‘억지로 짐작하신’ 내용이 아마 저의 의도가 거의 맞으리라 생각하고 그러기를 희망합니다. 물론 제가 억지로 그런 의역을 한 것은 아니구요.
그 문장에 대해서는 전문 번역가 김명남 선생님이 트위터로 언급을 하셨습니다. 그 트윗과 저의 답변을 여기에 붙입니다.
김명남 @starlakim 15h
방금 RT한 기사, 뉴스페퍼민트 덕분에 고맙게 읽었지만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어서. 밑에서 3번째 문단 마지막 2문장은 다음과 같이 번역하는 편이 낫다.
김명남 @starlakim 15h
'내게는 딱 한 잔의 와인도 과거로 돌려보내는 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거가 상당히 강하게 시사하는 바, 내게는 술을 딱 한 잔 마시는 것과 팔에 주사 바늘을 꽂은 채 홀로 집에서 죽어가는 것이 그다지 멀리 떨어진 일이 아닙니다.'
hyoseok @hyoseok 15h
@starlakim 아주 정확한 번역입니다. 제가 조금 자기표현에 취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정도는 용서해주셔도 괜찮을까요.
hyoseok @hyoseok 15h
@starlakim 그런데 다시 보니 제가 조금 많이 틀렸군요. 저는 ending up 이 그 날의 ending up 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인생의 ending up 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게 더 자극적이기도 하구요.
그 후 이 부분을 수정하려다 anonymous 님의 답글이 달려, 제가 증거를 훼손했다는 오해를 받을까 하여 더 이상 수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Ending up 에 대한 anonymous 님의 의견이 오히려 처음의 저와 비슷하다는 점이(anonymous 님은 동의하지 않으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흥미롭군요.)
anonymous 님의 마지막 문장, 곧 "그밖에 결정적으로 ~ " 에 대해서는, 다시 몇 시간 전의 상황과 같은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즉, 결정적으로 이상한 곳을 한 군데만 다시 지적해 주시면 저 역시 다시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댓글의 두 번째 문단에서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곧 anonymous 로 쓰신 이상 직접 삭제와 수정은 가능하지 않습니다만 원하신다면 수정도 해드릴 수 있습니다.
——————————————
대체로 온라인에서의 논의는 실제 사회에서보다 그들이 가진 지위, 성별, 연령 이라는, 현실에서는 보다 결정적 일 수 있는 요소들의 영향을 덜 받으며, 특히 논의의 궁극적인 목적중의 하나인 관찰자들의 평가라는 측면에서, 다른 이들이 논의의 내용에 더욱 집중하게 만드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대부분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한가지, 다른 이들이 보기에 다소 부당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논의를 관찰하는 이들이 논쟁의 당사자들에게 고려해주는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누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혔고 누가 익명을 유지하는지 입니다.
이는 그의 과거와 배경을 통해 다른 이들이 그의 의견과 본의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는 표면적인 이유 뿐만 아니라, 곧 역으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어지는 정체성은 평판이라는 사회기제를 통해 예의라는 방식으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전적으로 압도하고자 하는 자유에 제약을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다소 장황한 이야기를 한 이유는, 아마 고금을 통틀어 친구와 연인에게 아니 심지어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이 말을 하는 것이 절대 예의가 아니라고 알려진 대표적인 말이 바로 “할 말이 있는데 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anonymous 님의 마지막 문장이 바로 이러한 문장이며, 이는 인간의 호기심을 이용해 상대방을 휘두르려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사악한 무기이자, 논쟁 중에는 다른 이들에게 쉽게 자신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보이게 만드는 부당한 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다시, ‘시간이 없고 수고스러운’ 가운데 ‘귀찮은 일이 생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 단락만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님의 번역)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번 끊었던 약물에 다시 중독되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한 연구는 의지와 무관한 만성질병인 당뇨, 천식, 고혈압 등이 재발하는 확률과 약물을 다시 찾는 확률이 비슷함을 보였습니다. 곧, 약을 끊었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얼마나 이를 버틸 수 있는가가 바로 문제의 핵심입니다. 한 연구는 5년동안 절제에 성공한 이들은 안전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보였지만, 그 연구는 단 8년동안 사람들을 관찰했던 연구였습니다.
(원문) If anything, the science on relapses is even more slippery. (We do know that relapse rates for drug and alcohol addiction are comparable to people’s inability to control other chronic illnesses, such as type 2 diabetes, asthma, and hypertension.) The challenges are as basic as agreeing on a definition for long-term sobriety. In a graphic titled “Extended Abstinence is Predictive of Sustained Recovery,” the National Institute of Drug Abuse says, “After 5 years—if you are sober, you will probably stay that way.” I unconsciously added a “forever” to the end of that sentence—but the study that chart is based on ran for eight years, a bar Hoffman cleared easily.
전 단락에서 AA에는 어떤 정해진 체계나 연구 방법론이 없어서 치료의 효과를 평가하기 힘들다고 하고, 호프만이 입원 치료를 받은 시설은 치료의 성공 확률을 알기 어렵게 만들어 놓는다는obfustcate(= confuse, obscure) 비난을 받는다고 하잖아요. 그 다음 단락에서 재발에 관한 구체적인 연구 사례는 불안정해서 더욱 파악하기 힘들다고 하죠even more slippery.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의 재발은 다른 만성 질병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제 번역)는 부분이 가리키는 링크는 따라가 보셨나요? 이 부분이 가리키는 부분에 해당하는 구절은 이렇습니다. “More studies of heritability are needed across drug types and sexes, but the evidence suggests significant genetic contribution to the risk of addiction comparable to that seen in other chronic illnesses.”
의학은 잘 모르겠지만 연구 자료를 보면 2형 당뇨병, 천식, 고혈압 등은 유전적인 요소가 강한 만성 질병이죠. 의약의 도움 없이 다스리기 힘든 병들이죠. 마약/알코올 중독도 그와 같다는 거예요. 그런데 님은 어떻게 번역해놓으셨죠?
그 다음 문장 "The challenges are as basic as agreeing on a definition for long-term sobriety."은 장기간 알코올이나 마약을 하지 않고 지내는 절제 기간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대한 의견의 일치를 보는 기초적인 부분까지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Extended……… Drug Abuse says”는 빼도 되겠죠. 그래도 제목은 빼도 되겠지만 연구 주체를 빼면 안 되겠죠. 그 다음 인용문 “5년 뒤에도 술이나 마약을 하지 않고 있다면 대개는 그 상태가 유지될 것이다”라고 하죠. 저자는 무의식적으로 영원히forever라는 말을 덧붙였다고 하고요. 그렇지만 그 도표의 자료가 된 연구는 8년 동안 행해진 것이며 호프만은 그 장벽을 쉽게 넘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님은 어떻게 번역하셨나요?
길게 설명을 드린 다음에 “그밖에 결정적으로 이상한 데가 많지만 시간이 없고 수고스러워 이만 씁니다”라고 말한 게 “사악”하다고요? “인간의 호기심을 이용해 상대방을 휘두르려는” 사람들의 “사악한 무기”라고요? 지적해달라고 하셔서 성의껏 설명했잖아요. 그리고 진짜 시간이 없고 바쁘니까 원문의 2째 3째 단락을 추가로 지적하고 끝맺었고요.
오프라인의 정체성에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제가 제기한 것들은 그게 설령 대학교의 영문과 교수가 번역한 것이라도, 외국 대학의 유명 교수가 쓴 글이라 해도 달라지지 않아요. 댓글에서 지적해달라고 했어도 그냥 쓴웃음 짓고 그냥 넘어갈 것을 건드린 것은 의료에 관한 중요한 정보 전달의 기능을 하는 기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정말로 제 일이 바쁘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려고 했어요. 제게 아무런 이익이 되는 일도 아니고요. 다시 댓글을 남겨 앞선 댓글을 지워달라고 할 생각까지는 못했어요. 애초에 한마디 툭 던지고 지나간 점은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아무튼 님이 그게 뭔지 “한 가지만” 지적해달라고 하셨고, 그래서 선의에서 지적했어요. 그 정도 설명했으면 자신의 번역을 다시 돌아보리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잘못 생각한 거 같군요. 정확한 정보 전달이 주기능인 기사와 번역을 가지고 논하는데 도덕적 훈계와 인신공격(익명이니 인신공격이 성립되지 않겠지만)이 개입하다니 참으로 유감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일단, 그저 나의 삶과 전혀 무관한, 이상한 일을 겪었을 뿐이라고 무시해버릴 수 있는 이런 공간에 계속 신경을 써주시는 점은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간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한 이상, “진짜 시간이 없고 바쁘니까”라던지 “정말로 제 일이 바쁘기 때문에”라던지 “제게 아무런 이익이 되는 일도 아니고요” 같은 불평은 서로가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굳이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적어도 그런 불평을 쓰는 시간은 절약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저는 제 이름과 얼굴이 걸려 있으니 어쨌든 이익이 되던가 손해가 되던가 하겠지요. 하지만 시간이 없고 바쁜 쪽으로 말하자면, 저희와 무관한 제 3자를 선정하여 서로의 상황을 보고하고 바쁜 정도를 수량화하여 님과 제가 공개대결을 했을 때 저도 절대로 지지 않을 자신이 정말로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도 님처럼 이렇게 글을 쓰고 있구요.
이번에 지적하신 단락에 대해서는 저는 제 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Anonymous 님께서 제가 앞서의 댓글에서 말씀드린, About 에 링크되어 있는 슬로우뉴스의 인터뷰를 조금이라도 읽어보셨다면 위와 같은 지적은 하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그 인터뷰는 3개월 전에 작성된 것이고, 저희는 1년 반 이상을 그런 기준으로 각자 내용을 전달해 왔습니다. 위의 단락을 지적하는 기준으로 제 글을 보신다면, 이 글의 한 단락 단락만이 아니라 모든 단락을, 그리고 이 글만이 아니라 이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모든 글에 문제를 지적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물론 저도 스스로 제 글에 그와 같은 지적을 할 수 있구요. 제가 앞서의 댓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Anonymous 님은 저희 사이트를 Anonymous 님이 가지고 계신 번역이란 어떠해야한다는 생각과는 무관하게, 그저 “영어로 쓰여진 글을 링크하면서, 그 글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우리말로 자기들 나름대로 표현한 글들이 실려있는 사이트”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정체성을 언급한 것은, Anonymous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누가 번역을 했느냐에 따라 옳고 그름이 달라진다는 뜻으로 한 것이 전혀 아닙니다. 그 점은 아실거라고 보구요. 제가 앞의 댓글에서 말씀드린 것은, 그리고 지금의 저희 대화에서도 이미 드러나고 있습니다만, 정체성이 없는 이와의 논의는 논의에 불필요한 부담을 주며 논의의 생산성을 떨어뜨립니다. 님은 언제든지 이 일을 님과 완전히 무관한 일이라 여겨도 심리적 부담 외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겠지요. 심지어는 또 다른 이가 님을 위장하여 등장한다 하더라도 제가 그것을 구별하기 힘들테구요. 또, 저희가 이틀동안 여러 시간을 서로 소모했는데, 몇 달 뒤에 다시 제 번역을 지적하러 오셨을 때 제가 누군지 못 알아본다면 섭섭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계신 곳이 어딘지 모르겠습니다만, 몇 년 뒤에 우연히 제가 그 곳을 지나가다가 알 수 없는 봉변을 당했을 때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이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와서야 되겠습니까.
어쨌든, 이런 답변과 무관하게, 적어도 제 번역은 제가 다시 돌아보겠습니다. 그 점은 맞게 생각하셨습니다. 물론 늘 돌아보고 있습니다만, 좀 더 신경써서 돌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Go go, Veritaholic!
"인간의 호기심을 이용해 상대방을 휘두르려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사악한 무기이자, 논쟁 중에는 다른 이들에게 쉽게 자신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보이게 만드는 부당한 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다시, ‘시간이 없고 수고스러운’ 가운데 ‘귀찮은 일이 생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라는 비난에 '정말로 시간이 없어서' 일일이 다 지적하지는 않는다는 걸 알아달라는 것이지 다른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인터넷에서 익명성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명을 걸고 댓글을 다시는 분은 나름의 소신대로 하시되 그게 절대적으로 도덕적인 우위에 서는 행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산성을 말씀하셨는데요, 오히려 익명성으로 인해 더욱 자유롭고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죠. 예의의 문제, 태도의 문제, 악성 댓글, 이런 것들은 자유를 위해 감수해야 하는 것일 테고요. 댓글을 다는 사람이 인신공격이나 욕을 하지 않는 이상, 어떤 문제점을 제기하면 그 이슈에 대한 답과 이슈 자체에 집중하면 되지 않을까요? 상대방의 주장에 맞서 구문분석이랄지 그런 걸로요. 또는 대답하지 않을, 댓글을 지울 또는 댓글 자체를 원천봉쇄할 자유나 권리를 가지고 계시니 그걸 행사하셔도 될 거고요. 저는 님의 반응이 있으니 그에 응했어요.
한편 님은 무언가 추구하기 위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일반에게 널리 읽히기를 바라는 일종의 매체(?)를 운영하시는 분으로써 실명을 걸 수밖에 없고, 거기에는 책임과 부담이 따르는 것이죠.
저는 인터넷을 통해 많은 리서치를 하지만 댓글을 다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번역을 가지고 댓글을 단 건 아마 이게 처음인 듯해요. 실명을 건다고 생산성이나 진정성 있는 토론이 된다는 보장은 없죠. 현실에 그에 대한 robust pool of evidence가 풍부히 있잖아요? 안녕히 계십시오.
먼저 n 님에게 잠깐 감사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
Anonymous 님,
일단 저희가 공동으로 증명하고 있는 가장 확실한 사실은 저희가 그렇게 스스로 서로 강조하듯이 정말로 이 두 사람이 시간이 없고 바쁜 것은 아니라는 사실로 보이는 군요.
익명성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는 무수한 논의와 연구결과들이 있습니다. 저희 사이트에서도 여러 번 다루었구요. 당연히 장점과 단점이 다 있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님의 초기 댓글들에서 지성과 그와 어울리지 않는 무례와 날카로움이 동시에 보였고, 후자의 근원이 곧 익명성에서 유래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댓글을 통해, 곧 짧은 대화를 통해서나마 관계가 형성되어 갈수록 그러한 무례가 사라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것이 완전히 틀린 생각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제가 쓴 ‘사악한’이나 ‘부당한’ 과 같은 자극적인 단어들은 혹시나 댓글들을 보실 다른 분들을 위한 것이었기도 합니다. 실명을 걸고 사이트를 유지하는 처지에,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무례에 대한 응징을 원하는 다른 분들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대답하지 않을, 댓글을 지울, 또는 댓글 자체를 원천봉쇄할 자유나 권리”는 오히려 실명을 걸고 사이트를 유지하는 자에게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구요.
댓글을 거의 달지 않으시는 분이 저희 사이트에 댓글을 달아주셔서 영광이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그리고 죄송하기도 하네요.
그리고 제가 이걸 다시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친구, 연인, 혹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할 말이 있는데 하지 않겠다”는 식의 말을 한 뒤 욕을 먹은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정말로 시간이 없어서 그랬고,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욕은 먹었답니다.
제가 존경하는 교수님 한 분이 생각나네요. 제가 처음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교수님도 함께 계셨고요. 학생 한 분이 질문을 하고 제가 답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뭐.. 나름 열심히 답을 했는데, 나중에 교수님께서 개인 이메일로 그 상황에 대한 정확한 답을 알려주셨습니다. 더불어서 어떤 방식으로 정확한 답을 학생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지도 지도하셨고요. 그리고 마지막에 잘했다는 칭찬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충분히 교수님은 그 수업공간에서 한 두마디로 제 답변에 더 정확한 답을 보탰을 수도 있습니다. 그 많은 학생들 앞에서.. 하지만 참으셨다가 나중에 저에게만 알려주신거죠. 아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좋은 것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지식에 대한 욕심이고 더 발전하기 위한 힘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로 저는 그 드러남이 어쩔 수 없이 넘쳐나는 것이었으면 합니다.
안녕하세요, romanegloo 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저도 마음 속으로나마 늘 다짐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실천은 그 만큼 어렵습니다만...
좋은 하루 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