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대학교에서 게르만슬라브어문학/유대학을 가르치고 있는 사샤 샌데로비치(Sasha Senderovich)의 NYT 기고문입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 댁 근처에 있었던 거대한 레닌 동상에 압도당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지난 일요일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에프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에서 레닌 동상이 철거되었습니다.민족주의 성향의 스보보다(Svoboda)당은 철거를 주도한 세력을 자처하며, “소비에트 점령의 종말이자, 마지막 탈식민화의 시작”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레닌 동상은 우크라이나를 강제로 합병한 구 소련,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우크라이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푸틴의 러시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지금까지의 상황을 돌아보면, 동상 철거라는 상징적인 제스처가 곧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 거라는 믿음은 환상에 가깝습니다. 1991년 8월, KGB를 창설한 펠릭스 제르진스키의 동상이 철거되었을 때도 이것이 구 소련의 종말을 의미한다는 희망적인 해석이 난무했지만 그 실체는 푸틴 정권 하에서도 굳건한 것 처럼 말이죠.
언론에서는 키에프의 레닌 동상 철거를 베를린 장벽의 붕괴에 비유하며 추켜세웠지만, 이는 시대착오적인 추억에 젖은 해석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동서 화합과 유럽 통합의 꿈이 금방이라도 현실이 되는 듯 했지만, 오늘날 유럽은 경기 불황과 우파 민족주의의 부상을 겪고 있으니까요. 키에프 레닌 동상 철거는 오히려 2003년 미군에 의한 후세인 동상 철거와 비유할 만 합니다. 후세인이 성조기로 대체된 후 이라크의 상황이 단번에 달라지지 않았듯이, 레닌이 유럽연합으로 대체된다고 해서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좋게만 달라질까요? 유럽연합과의 가까운 관계가 민주주의와 투명성을 가져다줄지, 아니면 우크라이나가 그저 유럽의 서비스 경제로 전락하게 될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상징이 몰락하는 것은 그저 이를 대체할 또 다른 상징의 부상을 의미할 뿐입니다. 우크라이나를 과거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이미 삶 속에 녹아들어와 있는 상징들을 전복시키는 것입니다. 사실 키에프의 레닌 동상은 철거 전부터 이미 그 의미가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소련 붕괴 후 20년, 시장 앞에 위치해 은행과 상품 광고지로 뒤덮힌 레닌 동상은 이미 이 곳 주민들에게 “시장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레닌”이라는 말장난의 대상이었죠. (N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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