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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의 미래 존재 가치는?

본지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의 존재 가치에 대해 처음부터 회의적인 입장을 취해왔습니다. APEC이 “수다를 떨 수 있는 완벽한 기회(A Perfect Excuse for a Chat)”의 약자라고 비꼬기도 했고, 2007년에는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켜 중요한 주제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를 오히려 방해하므로” 해악이 더 큰 기구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죠. 하지만 이 의견은 여전히 소수의견인가 봅니다. APEC은 확장에 확장을 거듭해 오늘날 세계 GDP의 50%와 인구의 40%를 대표하는 기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올해 무엇보다 화제가 된 소식이 미국 정부 셧다운로 인한 오바마 대통령의 불참이었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이 자리가 실질적인 행동이 이루어지는 곳이라기 보다는 협력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곳이라는 점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APEC 지지자들의 주장대로 APEC이 정책 공유를 활성화시켰고, 국가 간 조율과 협력의 문화를 만들어왔으며, 정상 간 양자회담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일부 긍정적인 기능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APEC은 분명 존재론적인 질문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의제 확장의 문제입니다. APEC은 애초에 무역 자유화라는 주제를 가지고 출범했고, 실제로 출범 이후 이 지역의 관세가 낮아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국가 간 자유무역협정이나 WTO의 역할에 힘입은 바가 크고, 도하라운드가 교착 상태에 빠진 현재 APEC의 의제도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이런 고민을 반영하듯 올해의 주제는 무역 자유화에서 살짝 비껴간 “연결성”이었습니다. 두번째는 무역 자유화라는 주제를 두고도 내부적인 갈등이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와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동시에 논의되고 있는 것이죠. 물론 일이 잘 풀린다면 이 두 협정이 하나로 합쳐질 수도 있고, 협정이 결국에는 성사될 수도 있겠지만 그러고 나면 APEC은 그 역할을 다 했으니 해체되어야 할까요? 싱가포르 APEC사무국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일까요? 세번째는 APEC이 출범한 1989년과 비교해 세월이 많이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APEC이 아니더라도 정상들이 만날 수 있는 장은 여럿이고, 핵심 주제로 삼고 있는 무역 문제와 관련해서도 당장 12월에 WTO 장관급 회의가 예정되어 있죠.
APEC을 중심으로 생겨난 학계와 관료 사회는 오랜 세월에 걸쳐 공고해졌고, 그 덕분에 지지자들도 많아졌습니다. 언론도 예외는 아닙니다.  취재기자들은 APEC에서 아주 후한 대접을 받습니다. 저는 1996년 회의에서 받은 티셔츠를 아직도 입고 있죠. 올해는 기자들에게 무료 발마사지와 1일 관광권이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진짜 필요한데 빠져 있는 것은 바로 기사 거리입니다. (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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