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4월 8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인공지능(AI), 범용 인공지능(AGI) 같은 단어가 더는 낯설지 않은 용어가 된 요즘입니다.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강력하고 새로운 기술인 만큼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논의하고 대비해야 할 것들도 많습니다. 그 가운데 우선순위로 꼽히는 것이 일자리가 어떻게 바뀔지, 인간의 노동은 얼마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을지일 겁니다.
인공지능이 생산성과 인간의 노동,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두고는 모든 종류의 예측이 쏟아져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간이 기계에 일자리를 빼앗겨 노동시장의 주도권을 잃고 스스로 부양하지 못할 만큼 궁지로 몰리게 되리라는 전망도 있고, 반대로 그런 어두운 전망은 대개 과장됐으며, 기술의 발달로 높아진 생산성을 토대로 인류는 더 큰 번영을 누리게 될 거란 주장도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모조리 앗아가리라는 디스토피아를 점치는 말과 글은 우리의 두려움을 자극하는 만큼 많은 관심을 받곤 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일자리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가지 요소 가운데 하나일 뿐 기술 발전에 따라 반드시 정해진 결과가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비관적인 전망은 정확도가 높지 않아 보입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피터 코이가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가 지금의 일자리가 모두 사라지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 경제학자들의 의견을 모아 정리했습니다.
전문번역: AI가 우리 일자리를 다 빼앗아 갈까? 경제학자들 의견은 이렇다
노아 스미스는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일을 더 잘하는 분야가 많아지더라도 인간의 모든 노동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그 이유로 ‘비교우위’ 논리를 듭니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아주 뛰어나지 않은 분야에선 굳이 인간의 노동을 기계로 대체하고 자동화하지 않을 거란 전망입니다.
데이비드 오터, 대런 아세모글루, 사이먼 존슨이 공동 소장을 맡고 있는 MIT 미래의 일자리 연구소는 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왔는데, 이들도 미래를 대체로 낙관적으로 봅니다. (이에 관해서는 팟캐스트 아메리카노에서도 자세히 다룬 바 있습니다.)
이들이 가장 경계하는 건 일종의 ‘기술 결정론’입니다. 흔히 기술의 발전 정도에 따라 미래가 정해진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에선 우리가 제도를 어떻게 만들고 운용하느냐에 따라 기술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MIT 미래의 일자리 보고서는 단점을 줄이고, 장점을 극대화한 방향으로 기술 발전을 유도한다면 인간과 기계(인공지능)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내다봅니다. 지금 있는 일자리 가운데 일부는 줄어들거나 사라지겠지만, 동시에 더 늘어나거나 새로 생기는 일자리도 있을 수 있다는 거죠. 사람과 기계가 같이 운전대를 잡고 서로 도와주며 앞으로 나아가는 ‘코파일럿’이 활성화된 미래는 낙관적으로 볼 이유가 많습니다.
기술 혁신만큼 중요한 제도 혁신
요즘 대세가 된 범용 인공지능 기술만 봐도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닙니다. 세상에 그런 식으로 발전하는 기술은 없습니다. 기술의 발전, 채택, 접목, 보완, 다시 발전에 이르는 모든 과정과 그 속도는 사실 우리가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의 산물이며, 그래서 정책과 규제가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결과를 피할 수 있게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일도, 많은 이에게 이로운 결과를 위해 인센티브를 적절히 설정하는 일도 그렇고,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지점이 많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존하는 코파일럿이 인류 전체에 이로운 방향으로 운영되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은 뭐가 있을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를 정리해 보자면 기술 혁신 못지않게 중요한 제도를 혁신하는 일이 될 겁니다. 인공지능 기술이 곳곳에 접목된 노동, 생산 현장에 20세기의 산업 구조에 맞춰 짜놓은 지금의 제도를 그대로 방치해 두면 노동 생산성은 떨어지고, 불평등이 심화할 게 불 보듯 뻔합니다. 새로 생겨나는 기회와 혜택을 극소수가 독점하고, 대다수 노동자는 기회도 얻어보지 못한 채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시나리오를 원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겁니다.
대런 아세모글루 교수가 브루킹스 연구소를 통해 펴낸 짧은 보고서에서 좋은 예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세제는 대체로 로봇을 도입하고 공정 자동화를 추진하는 결정에 많은 혜택을 줍니다. 반대로 노동자를 고용해 생산하는 데는 세금을 훨씬 많이 매깁니다. 지금과 같이 세율이 정해진 데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자동화를 권장하는 세제가 노동자들에게 괜찮은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로봇이나 기계를 도입해 공정을 자동화하는 투자에 세금을 더 매겨서 세수의 일부를 노동자들의 실업 급여나 재취업에 필요한 교육 예산으로 쓰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생산성의 향상과 경제 성장의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지 못한다면 사회적으로 치러야 할 비용이 무척 클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적, 지역적 분열과 갈등이 커지고, 제도를 향한 불신도 높아질 것이며, 나아가 혁신 자체를 두려워하고 거부하는 성향까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름만 요란할 뿐 혁신이 결국 내 밥그릇이 위험해지는 변화라면 누구나 거부감, 나아가 적대감을 드러낼 겁니다. 마찬가지로 기술이 발전해 봤자 부자만 더 부유해지고 서민들의 삶은 피폐해진다는 인식이 팽배하면, 기술 발전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혜택을 분배하는 논의조차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회는 결국 변화에 무뎌지고, 뒤처질 가능성이 큽니다.
노동자에게 충분한 경제적 보호 장치를 제공하면서 기술 혁신을 유도하는 일은 못 잡을 두 마리 토끼가 아닙니다. 새로운 기술이 접목됐을 때 필요한 일자리에 어울리는 기술을 배우고 익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기존 일자리가 사라졌을 때 생계를 걱정하지 않으면서 필요한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는 도덕적 해이를 부를 수 있는 무분별한 지원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자동화된 세상은 한동안 오지 않으리란 현실을 고려했을 때 새로운 기술이 있어도 이를 함께 조종하고 운용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기술은 무용지물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일자리에 어울리는 노동자를 교육하는 것이 제도 혁신의 핵심입니다. 기술 개발에 어울리는 제도를 갖추고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혁신이자 성공적인 코파일럿을 위한 중요한 전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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