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11월 12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이종혁 교수의 양안 관계 분석은 아메리카노 전문가 인터뷰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는 13일 대만 총통 선거 이후에 대만 선거를 둘러싼 중국과 미국의 셈법을 이종혁 교수와 함께 분석해볼 예정입니다.
미국 지도자들에게는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예방할 의무가 있습니다. 미국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힘이 센 강대국으로서 전 세계 곳곳에서 질서를 관리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을 예방하거나 관리하지 못하면서 미국의 역량에 의문 부호가 붙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전 세계 어디서든 분쟁이 일어나면 우리는 모두 미국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21세기 들어 미국의 대항마로 떠오른 중국과 미국은 다양한 사안에서 복잡한 이유로 경쟁하고 서로 견제하며, 때로는 부딪치기도 합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만약 군사적인 충돌로 이어진다면 그 전장이 될 가능성이 큰 곳 중 하나가 바로 대만입니다. 대만 해협을 사이에 둔 중국과 대만의 양안 관계에 많은 사람이 주목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러시아나 이스라엘에서와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요? 스탠퍼드대학교의 오리아나 스카일러 마스트로 교수가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썼습니다.
전문 번역: 미국이 중국-타이완 관계에 관해 착각하고 있는 것
마스트로 교수의 분석과 의견 중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 오늘은 마스트로 교수의 칼럼을 비판적으로 읽어보려 합니다. 먼저 이 세상의 갈등을 예방할 의무는 미국에만 있지 않습니다. 새롭게 강대국으로 떠오른 중국도 당연히 주변 국가와 갈등을 일으키지 말아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마스트로 교수는 칼럼에 먼저 도발한 곳은 중국이라고 분명히 밝혀놓고도 동시에 미국이 상황에 개입해 과도하게 반응하거나 중국을 향해 ‘선 넘는 도발’을 해선 안 된다고 썼습니다. 양안 관계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역사를 소개하면서는 마치 과거 양안 관계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갈등을 봉합하고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처럼 말합니다. 또 양안 관계가 평화적으로 유지된 것이 마치 미국과 중국 지도자들끼리 협력하고 서로 이해한 덕분인 것처럼 가정하고 있는데, 이는 나치 독일의 요구를 사실상 다 들어줬던 뮌헨협정이 떠오를 만큼 순진한 가정입니다.
이 칼럼의 가장 큰 전제는 국제사회의 안보 인식과 대만의 상황에 따라 중국의 대외 정책이 영향을 받고, 결국 양안 관계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협력, 이해는 평화로운 양안 관계의 필요조건일 뿐 절대로 충분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중국과 같은 국가를 분석하려면 그보다도 지도자가 처한 정치적 상황과 그에 따른 인센티브를 꼼꼼히 살펴봐야 합니다. 그로 인해 불가피하게 내리는 결정들이 중국의 대외 정책을 좌우하는 요소가 되곤 하기 때문이죠.
마스트로 교수는 크게 두 가지 중요한 요소를 간과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중국 국내 정치 상황입니다. 시진핑은 지금까지 중국 지도자들과 정치적으로 엄연히 다른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과거 양안 관계를 이해하고 접근하던 공식을 현재 상황에 대입하면 엉뚱한 답이 나옵니다. 두 번째 요소는 미국과 중국이 생각하는 “평화 통일”이 전혀 다르다는 점입니다. 말로는 미국도, 중국도 평화 통일을 원한다고 하지만, 두 나라의 “평화 통일”은 자세히 뜯어보면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납니다. 특히 대만 사람들은 “중국식 평화 통일”에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1950년대 중국은 대만에 몇 차례 군사 작전을 벌였다가 굴욕적인 패배를 겪었습니다. 마오쩌둥의 전략적 착오에서 비롯된 실패 덕분에 중국은 한 번도 자신의 군사력을 대만을 점령할 수 있을 만큼 강하다고 과신하지 않았고, 대만은 중국의 침공에 대한 걱정을 어느 정도 덜 수 있었습니다. 덩샤오핑과 그의 후계자들은 대만과 평화적 통일을 원했습니다. 또 중국이 내부적으로 경제 발전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야 하던 시기에는 대만과 갈등을 일으켜봤자 득이 될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만과 평화가 유지된 측면도 있습니다.
시진핑 시대 들어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시진핑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 상황이 장기 집권을 선언한 자신에게 별로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입니다. 시진핑 권력의 정당성은 중국 공산당 구성원들의 궁극적인 합의와 지지에서 나옵니다. 사실상 중국 공산당의 역사적 정당성에 의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1980년대 이후 경제 발전과 사회 안정을 비롯한 역사적 성취가 뒷받침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덩샤오핑 이후 굳어지는 듯하던 관행을 깨고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한 시진핑은 공산당 고위 간부 자리를 자신의 추종자들로 채워 기존 집단 영도 체제를 무너뜨렸습니다. 또한, 제로 코비드 정책 등 극단적인 사회 정책은 더욱 심각한 경기 침체를 불렀고, 대중의 신뢰도 점차 잃고 있습니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라도 국제사회와 협력하고자 했던 전임 지도자들과 달리 시진핑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중국 공산당의 역사적 성과에서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시진핑은 권력의 정당성을 공산당이 아닌 개인의 성과와 카리스마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시진핑은 항상 자신을 마오쩌둥, 덩샤오핑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 싶어 하지만, 그가 이룬 역사적 성취나 카리스마는 두 거목에 비하면 빈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점점 더 사면초가로 몰리는 시진핑은 중국의 잠재력을 희생하면서까지 민족주의를 부활시켜 돌파구로 삼으려 하고 있습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내세운 시진핑에게 대만 통일은 정확히 꿰어야 하는 첫 단추와도 같습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대만 통일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군사력을 증강하고 국제사회와 계속해서 갈등을 빚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시진핑 개인은 당연히 자신의 정치생명을 더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중국은 자연히 매우 공격적인 외교 정책을 일컫는 “전랑 외교”를 펴는데, 국제사회의 협력으로는 이렇게 공격적인 중국의 행보를 제어하기 어렵습니다. 마오쩌둥도, 덩샤오핑도 이룩하지 못한 대만 통일이라는 과업을 완수하는 순간 시진핑은 정당성을 인정받고, 권력도 안정을 찾을 것입니다.
다만 대만 통일이 반드시 무력 통일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시진핑도 평화적인 통일을 할 수만 있다면 이를 선호할 것입니다. 문제는 어떤 방식의 통일이냐를 논하기에 앞서 대만 사람들의 생각이 철저히 무시당한다는 점입니다. 이 칼럼도 잔인할 정도로 철저히 중국과 미국, 두 강대국의 시선에서만 양안 관계를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만 사람들은 지금처럼 체제가 완전히 다른 중국과의 통일을 바라지 않을 겁니다.
서양 학자와 전문가들은 중국 공산당의 정치적 수사에 현혹되곤 합니다. 중국 공산당이 내세우는 민주, 인권, 평화, 정의와 같은 기본 원리는 실제로 중국 밖의 사람들이 이해하는 것과는 아주 다릅니다. 민주주의는 과정이 아니라 결과로써 의미가 있으며, 인권에는 정치적 자유보다 경제적 독립을 뜻하는 바가 많고, 평화와 정의와 같은 용어들도 중국 공산당의 뜻과 목적에 의해 종종 다르게 해석됩니다. 애초에 중국이 말하는 “평화 통일”도 대만을 자신과 같은 동등한 처지에서 바라보는 진정한 의미의 평화가 아니라, 그저 중국 공산당이 세워놓은 통일 시스템을 대만이 “군사적인 충돌 없이”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풀이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겁니다.
시진핑이 집권하는 동안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아마도 홍콩을 다뤘던 방식일 겁니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기조 아래 내세우던 “일국양제” 시스템은 홍콩 민주화 요구를 무참히 짓밟은 중국 공산당의 대응에서 그 민낯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베이징은 “중국식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홍콩의 민주주의 시스템을 철저히 파괴했고, 새로운 사상 교육과 사회 관리를 통해 홍콩 민중들을 억압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목격한 대만 국민들이 중국의 일방적인 “평화 통일”에 과연 동의할까요?
대만이 절대로 중국의 시스템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이 칼럼이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이 중국을 도발하지 않기 위해 유화적인 태도로 일관한다면, 이는 오히려 시진핑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낼 가능성도 있습니다. 즉, 시진핑은 중국을 안심시키려고 신경 쓰는 미국의 태도를 보고, 유사시에도 미국이 개입에 소극적일 거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시진핑 본인에게는 대만 통일이 필요한데, 대만 사람들은 이를 결사반대할 경우 시진핑에게 남는 선택지는 무력 통일밖에 없고, 이때 미국의 전쟁 억지력이 시진핑의 마음속에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중국을 향한 미국의 소극적인 태도는 전쟁을 예방하기는커녕 오히려 중국을 더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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