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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페@스프] 영원한 애도에 관하여: 어떤 자살 유족의 이야기

* 지난해 11월부터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그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글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12월 5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이 칼럼의 해설은 예일대학교 정신의학과 나종호 교수가 썼습니다. 나종호 교수는 뉴스페퍼민트에 정신건강에 관한 기사, 칼럼을 소개했던 에디터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도서관”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영원한 애도에 관하여: 어떤 자살 유족의 이야기

158명의 생명이 떠나간 10월 29일 이후 한 달여의 시간이 지났다. 참사 이후 오갔던 우리 사회의 애도에 관한 다양한 논의를 통해 애도에 대한 흔한 오해들을 엿볼 수 있었다.

애도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 중 하나는 바로 애도가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생각이다. 애도를 마치 일정 기간 떠났다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여행처럼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애도는 사실 ‘여행’보다는 ‘여정’에 가깝다.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이 영원하듯, 고인을 기리는 애도 과정 또한 끝이 없기 때문이다.

애도가 슬픔과 동의어라는 생각도 애도에 관한 또 다른 오해다. 애도에 있어 슬픔은 분명 중요한 요소 중 하나지만, 애도란 실제로는 한 가지 감정이 아니라 여러 감정의 복합체다. 사랑하는 동생을 자살로 잃은 질 바이알로스키의 칼럼에도 이런 복합적인 감정이 잘 드러난다. 어떤 날은 심연의 슬픔에 빠져있다가, 어떤 순간에는 분노라는 감정이 엄습하는 식이다.

애도는 새로운 나를 만나는 과정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나는 영원히 그 사람을 잃기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사랑하는 이와 나 사이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고, 그 사람이 없이도 세상은 살 만하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거쳐 애도는 결국 우리 삶의 일부가 된다. 대부분 사람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 그렇게 ‘통합된 애도(integrated grief)’에 이르게 된다.

 

전문번역: 슬픔은 영원한 것이다

 

지속적 애도 장애

하지만 사별을 경험한 사람의 약 10%는 지속적으로(12개월 이상) 강렬한 애도 반응을 보이며, 이로 인해 일상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 현상을 연구자들은 ‘지속적 애도 장애(prolonged grief disorder)’라 명명했다. 지속적 애도 장애는 사랑하는 사람을 갑작스러운 혹은 충격적인 사건으로 잃을 경우 더 높은 비율로 나타난다. 재난이나 살인, 자살과 같은 경우가 여기 해당한다. 수많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2022년 봄, 미국 정신의학 협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에서 발간하는 진단 체계인 DSM-5의 개정판(DSM-5-TR)에 ‘지속적 애도 장애’라는 진단명이 공식적으로 추가되었다.

글쓴이는 ‘지속적 애도 장애’라는 진단명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정신 의학은 다른 의학의 분과들과 마찬가지로 ‘질병 모델’을 바탕으로 하기에 대부분 진단명에는 ‘장애’라는 이름이 붙는다. ‘장애’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가, 사별이라는 보편적인 경험에 붙여지는 데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정신과 의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반론은 진단을 내리는 것은 누군가의 애도 과정에 낙인을 찍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단명에 맞는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뿐이다.

글쓴이의 감정 묘사를 통해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자살로 잃은, 자살 유가족들의 애도 과정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자살 유가족은 다른 원인으로 사별한 사람에 비해 더 큰 수치심, 죄책감에 시달리며, 때로는 분노 혹은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그때 연락을 했더라면’, ‘그때 내가 신호를 알아차렸다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복합적인 감정들이 격렬한 애도 증상과 맞물리면, 심각한 정서적 통증을 유발하며, 자살 생각이나 시도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자살률 높은 한국 사회와 애도에 대한 바른 이해

이 이야기들이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인 다섯 명 중 한 명은 자살로 지인을 잃는다고 한다. 미국보다 자살률이 2배 가까이 높은 한국의 상황을 고려하면, 한국에서는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을 자살로 잃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2021년 한국인의 사망 원인 중 5위가 자살이며, 자살 사망자 수는 당뇨병이나 간질환, 고혈압성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 수보다 많다.

글쓴이는 자살로 사망한 사람들이 죽고 싶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살고 싶지만, 절망감에 압도되어 세상을 떠난 것’이라 말한다. 정신과 의사로서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단지 자살 생각에 사로잡힌 뇌는 인간의 본능인 생명에 대한 의지를 잠시 흐릿하게 할 정도로 통제하기 힘들 뿐이다.

누군가가 자살로 세상을 떠났든 지병으로 생을 마감했든 모든 죽음은 삶의 작은 일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인을 존중하는 방법은 죽음 앞에서 고인의 삶을 축복하고 기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자살 유가족들은 ‘자살’이라는 죽음의 무게가 고인의 삶을 압도하는 것을 경험적으로 너무나도 잘 안다. 사람들은 고인의 마지막 5분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추고, 정작 아름다웠던 고인의 삶은 잊게 된다. 자살에 찍힌 사회적 낙인은 그만큼 강력하다.

 

자살에 대한 낙인 줄여야

글쓴이의 제언대로 고인의 삶과 죽음을 기리기 위해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사회적 스트레스 감소, 정신 건강 서비스의 확대를 포함한 여러 정책적 노력을 통해 자살 예방 사업을 확대하는 것이다. 동시에 자살에 대한 낙인을 약화함으로써 유가족만 홀로 애도하지 않고, 죄책감과 수치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자살 유가족들이 더 양지로 나올 수 있도록 말이다. 미국에서는 수많은 자살 유가족, 활동가, 정신건강 전문가들의 노력으로 최고의 신문사에 자살 유가족이 공개적으로 칼럼을 투고하는 것이 어느덧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그때까지 불편하더라도 우리는 자살에 대한 논의를 계속해야 한다.

글을 쓰며 스스로 묻게 된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거의 20년째 유지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자살은 얼마나 논의되고 있는가?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 수많은 자살 유가족들을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자살을 여전히 자살이 아닌 ‘극단적 선택’이라 부르며 회피하려고 하는, 또 누군가의 ‘선택’이라 단정 짓는 현실에서, 우리보다 자살률이 낮은 일본보다 자살 예방 예산의 1%도 채 쓰지 않는 우리는 이 심각한 사회 문제를 직면하고 맞설 준비가 되어있는가?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 희망의 전화 ☎129 / 생명의 전화 ☎1588-9191 /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ruka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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