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알렉스 존스, 음모론과 웰니스 산업의 위험한 결합

지난주, 미국 법원은 샌디훅 총기난사 사건의 피해자 유족들이 조작극을 꾸미고 있다고 허위 정보를 퍼뜨린 알렉스 존스에게 10억 달러 가까운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알렉스 존스 같은 음모론과 웰니스 산업의 위험한 결합을 조명한 글로 지난 8월 17일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올렸던 글입니다.


“인포워즈(Infowars)”라는 매체를 운영하며 극우 음모론 전파에 앞장섰던 알렉스 존스(Alex Jones)가 최근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희생자 유족들이 제기한 일련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5천만 달러 가까운 큰 배상금을 물게 됐습니다. 존스는 모두 26명이 사망한 샌디훅 총기 난사 사건이 총기 규제론자들이 꾸며낸 조작극이라는 주장을 비롯, 9/11 테러, 기후변화, 코로나, 미국 대선 등에 대한 각종 음모론을 전파하며 수백만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영향력을 행사해 온 인물입니다.

알렉스 존스

이번 재판 결과는 음모론자들에 대한 징벌적 배상의 판례가 성립됐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지만, 재판 과정을 통해 알렉스 존스의 재정 상태가 공개되면서 “극우 음모론 사업 모델”의 실체가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도 흥미롭습니다. “집요하게 음모론을 펴는 이유가 결국엔 다 돈 때문”이라는 속설이 어느 정도 입증된 셈입니다.

(존스가 운영하는 웹사이트들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해로운 제품을 파는 사기에 가까운 웹사이트라고 판단해 이 글에는 링크를 싣지 않습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파라드 만주는 8월 11자 칼럼을 통해 이른바 “웰니스-음모론 산업 복합체”란 무엇인지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알렉스 존스의 웹사이트에서는 다이어트약, 발기부전 치료제, 코로나-사스 치료 치약 등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각종 건강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습니다. 존스가 설립한 법인 “자유언론 시스템스(Free Speech Systems)”가 이 온라인 몰을 통해 올리는 매출은 2016~2019년 연평균 5,500만 달러에 달합니다. 존스가 페이스북, 유튜브, 애플 등 주요 플랫폼에서 쫓겨났음에도 타격을 입지 않은 것은 이런 사업 모델 덕분입니다. 이 정도면 존스가 전면에 내세우는 논쟁적인 라디오쇼는 주력 상품인 엉터리 건강 보조제를 팔기 위한 미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인포워즈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곧바로 건강보조제 광고가 줄줄이 팝업으로 뜹니다.

파라드 만주는 이것이 근거 없는 정치적 주장과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엉터리 건강 제품이 공생하는 생태계라고 설명합니다. 이런 사업 모델을 활용하는 이는 알렉스 존스뿐이 아닙니다. 한 방송 작가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트럼프의 SNS “트루스 소셜” 앱에 게재된 광고를 소개했는데, 광고 품목은 “코로나 백신 맞은 사람을 구별해내는 판독기”, “애국심을 키워주는 단백질 파우더”, “리버럴의 종이 빨대 강요가 지긋지긋한 사람들을 위한, 플라스틱을 50% 더 사용한 빨대” 등이었습니다.

사진=Unsplash

웰니스 산업과 정치적 음모론 사이에는 상당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등의 정신에 기반한 “웰니스 철학”은 음모론이 뿌리를 내리기 좋은 토양입니다. 캘리포니아의 좌파 웰니스 커뮤니티가 큐아넌(QAnon) 음모론이 퍼진 온상이었다는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보도는 이를 뒷받침합니다.

웰니스 업계에서 사용하는 “클렌징”, “디톡스”, “각성” 같은 키워드는 안티 백신 운동과도 연결됩니다. 학계에서는 트럼프 시대의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과 뉴에이지풍 대체 요법을 결합한 세계관을 가리키는 “영성의 음모론(conspirituality = conspiracy 음모 + spirituality 영성)”라는 용어가 등장하기도 했죠.

음모론자들은 정부와 주류 언론을 무조건 믿지 말라고 외치고, 웰니스 산업은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이나 대체 의학을 신봉한다는 점에서 반엘리트주의 역시 두 집단의 공통분모로 작용합니다. 신념으로 무장한 소비자 집단을 상대로 어마어마한 마진을 남기는 알렉스 존스의 온라인 쇼핑몰 사업이 규제 없이 번창하는 한, 그의 거침없는 거짓말 행진을 막을 방법은 없다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지난 2020년 2월, 유명인의 홍보와 결합된 비과학적 웰니스 산업의 번창을 우려하는 의료인의 칼럼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호주에 사는 외과의 니키 스탬프는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칼럼에서 의사의 처방 대신 “기적적인 요법”이나 “마법 같은 테라피”에 기대는 웰니스 산업이 개인과 사회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웰니스 산업이 번성한 데는 환자들, 특히 웰니스 산업의 주요 고객인 여성 환자들의 수요와 필요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의료계의 책임도 있다고 지적하죠. 의학이 나의 고통을 외면하고, 의사들은 내 아픔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제대로 된 소통도 하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다른 곳에서 위안을 얻고 구원을 찾는다는 겁니다. 웰니스 산업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의료계도 내부적으로 반성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웰니스 산업이 개인의 건강과 공중보건을 위협하듯이 음모론은 공론장을 오염시키고 민주주의를 저해합니다. 이들이 노리는 사회의 “틈새”가 어디인지 수시로 살피고 유해한 주장과 해법이 그 틈새를 채우지 못하게 예방하지 않는다면, 알렉스 존스의 사업체와 같이 막강한 시너지를 일으키는 해로운 복합체는 어디서든 번창할 수 있습니다. 성공 사례가 쌓이다 보면 아예 “사업 모델”이 확산하는 것도 머지않은 일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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