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미중 갈등 시대, 각국의 쉽지 않은 균형 잡기

지난 8월 8일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올린 글입니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아시아 지역을 방문하면서 관련 뉴스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대만 방문으로 인한 중국과 미국 사이의 갈등 고조가 가장 큰 주목을 받았지만, 국내에서는 방문지 가운데 한국이 포함되었음에도 휴가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은 것을 두고 공방이 오갔습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 이면에 한국 정부가 공항 의전도 제공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이 일었고, (이후 대통령실이 오보라고 밝혔지만) 만남을 조율 중이라는 기사가 떴다가 결국 전화 통화를 하기는 했지만 총체적인 국익을 고려해서 만나지 않은 것이라는 입장이 나오는 등 중요한 동맹국을 상대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은 것은 미국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일정이 국제무대의 깡패(bully)에 맞서 미국의 명분을 다지는 행보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미국의 대중(對中) 정책에 일관성이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고 분석했습니다.

공격적인 민족주의를 표방해온 시진핑 주석이 세 번째 임기를 앞둔 민감한 시점을 지역 방문 시기로 삼은 것은 좋지 못한 타이밍이라는 지적과 함께 백악관과 입장도 제대로 조율하지 못한 것도 실책이라는 겁니다. 기사는 대통령의 입으로 대만을 지키겠다고 약속한 후 대통령실이 한 발 물러나는 식의 “전략적 모호함”은 “전략적 혼란”을 불러왔고,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대만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대만이 이른바 비대칭전을 치를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애틀란틱은 미국과 발을 맞추느라 갈팡질팡한 영국의 대중 정책 역사를 되짚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2015년에만 해도 영국은 “서구 최고의 중국 파트너”를 자처하고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 투자은행(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에 가입하는 등 친중 행보를 보였지만, 2020년 이후로는 태도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유럽 국가 최초로 화웨이의 5G 네트워크 사용을 규제하고, 신장 위구르족 인권 문제에도 목소리를 높이는가 하면, 본토의 탄압을 피해 이민하려는 홍콩 주민들에게 시민권을 주었습니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EU 탈퇴, 팬데믹 등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가장 큰 변수는 트럼프 행정부였다고 애틀란틱은 분석했습니다. 트럼프 정부가 대중 강경책을 추진하면서 동맹국들에 노골적으로 동참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미국 정권이 다시 한번 바뀌고, 최근 들어 영국의 대중 강경 노선은 상당히 누그러진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사는 영국이 미국과 유럽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즉, 미국은 중국과의 양강 경쟁 구도를 어느 정도 받아들였는데, 중국을 관리해야 할 위험 요소 정도로 보는 유럽은 중국을 통해 미국의 패권이 약화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기고 있어 영국으로서는 셈법이 복잡해졌다는 겁니다. 애틀란틱은 이어 미국이 민주주의와 같은 명분만으로 동맹국들에 자신의 대중 정책에 발맞출 것을 강요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중국과 경제적으로 얽힐 수밖에 없는 동맹국들에 어필하고 동맹을 실질적으로 강화할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미국과의 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면서도 경제적인 면에서 중국을 저버릴 수 없는 “중간크기 강국(midsize powers)” 영국의 고민은 한국의 상황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새로운 냉전이라고까지 불리는 2강 구도에 영향을 받지 않을 국가는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유지해야 할 원칙은 무엇인지, 국익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면서도 우리가 속한 지정학적 환경을 만들어 가는 2강, 그리고 다른 국가들의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유연성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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