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생각이 뇌 속 화학물질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됐습니다. 이는 세로토닌, 멜라토닌, 도파민 등 뇌 내 호르몬을 조절함으로써 우울한 기분을 없애주는, 곧 우울증 증상을 완화해주는 항우울제의 인기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18세 이상 성인 8명 중 한 명이 우울증 약을 처방받은 적이 있다고 할 정도로 항우울제는 많이 처방됩니다.
하지만 대부분 약들은 8~12주 정도의 투약 기간을 기준으로 임상시험이 이루어지며, 따라서 이 약을 몇 달에서 몇 년씩 투약할 때 어떤 영향이 있을지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지난 4월 20일, 플로스원(PLOS One)에는 우울증 진단을 받았지만, 우울증 약을 먹지 않은 이들과 약을 먹은 이들의 2년간의 변화를 비교한 연구가 실렸습니다. 그리고 뉴욕타임스가 그 내용을 해설한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 연구는 미국의료비 패널조사(United States’ Medical Expenditures Panel Survey)를 이용한 것으로, 참여자들은 자신의 기분과 정신 상태 외에도 신체 건강과 일상생활 수행 능력 등에 대해 답했습니다.
2년간 모은 두 그룹의 데이터를 비교한 결과, 연구진은 항우울제의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구체적으로 약을 먹은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모두 정신 상태는 2년 동안 조금 개선되었고, 신체 상태는 조금 나빠졌습니다. 이는 노화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보입니다.
물론 연구진은 이번 연구만으로 항우울제가 장기적인 효과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설사 이들이 같은 진단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우울증 증상이 더 심한 이들이 실제로 약을 먹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이들이 조사가 시작될 때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이미 약을 먹고 있었고, 따라서 약의 효과를 이미 본 상태에서 추가로 나타난 개선 효과가 크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장기적인 복용이 추가적인 개선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약을 계속 먹어야 하느냐는 질문도 해볼 수 있습니다.
사실 어떤 의사들은 항우울제가 플라시보 효과를 주는 설탕으로 만든 약과 거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물론 모든 이에게는 아니라도 상당히 많은 증상의 환자들에게 효과가 확실히 있다고 생각하는 의사들도 있습니다.
물론 항우울제에는 그 자체로 부작용이 있습니다. 뇌졸중, 심장마비, 낙상 등의 사례가 있으며 구토, 흥분, 체중 증가, 성욕 감퇴, 소화불량이라는 일반적인 부작용도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약이 그렇듯 장기 복용은 약의 효과를 약화하는 내성을 부를 수 있으며, 복용을 중단했을 때 금단 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항우울제의 경우 항우울제 중단 증후군이라는 증상이 있습니다.
사실 어떤 약의 장기적 효과를 파악하기란 그 자체로 힘든 일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오자, 우리는 사태의 긴급성을 인정해 백신의 장기적 효과를 파악하기 전에 이를 사용했습니다. 장기적 효과를 정확히 알려면 대부분 실제로 그 시간만큼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단순한 화학 반응의 경우 특수한 물질을 처리하거나 온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시간을 빨리 돌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쥐나 인간과 같은 복잡한 생명체에 긴 시간의 자극을 주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실제로 그 시간을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곧 일반적인 임상시험 기간을 8~12주로 삼는 데는 긴 시간 임상시험에 따른 비용 외에도 ‘단기간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매우 낮다’라는 가정이 들어있는 셈입니다.
무언가의 장기적 효과를 알기 어려운 이유는 또 있습니다. 바로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다른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 100년 동안 복용할 경우 반드시 죽게 되는 약이 있다 하더라도 인간의 수명이 200년 이상으로 늘어나지 않는 한 그 사실을 발견하기는 극히 어려울 것입니다.
어쨌든 이번 기사에도 어떤 결론은 내려야 하겠지요. 우울증 증상이 있다면 약을 먹는 것이 좋습니다. 이는 현대과학의 성과입니다. 하지만 아주 오래 복용하게 된다면, 계속 믿을 수 있는 의사와 상담하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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