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코로나 시대 넛지의 한계

1970년대 심리학자 다니엘 카네만은 아모스 트버스키와 같이 인간의 행동을 연구합니다. 카네만은 이 연구로 2002년 심리학자로는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습니다. 연구를 경제학에 적용한 행동경제학은 학문의 현실적 적용이란 점에서 21세기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일 것입니다. 그리고 팔꿈치로 쿡 찌르는 행동을 뜻하는 넛지(nudge)는 그 결정판입니다.

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와 법학자 캐스 선스타인은 2008년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가된 “넛지”를 출판했고 선스타인은 2009년 백악관의 부름을 받아 미국 정부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6년 후 당시 대통령이었던 바락 오바마는 정부 정책에 행동경제학을 접목할 것을 권장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습니다. 2017년 세일러는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

영국 정부 또한 2010년 행동 통찰력 팀(BIT)을 만들었습니다. 2014년 이 팀은 합작 투자의 형태로 정부에서 독립해 이제는 각국 정부와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 전 세계에 넛지를 활용하며 정부에 조언하는 조직은 20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넛지의 가장 잘 알려진 사례는 오늘날 수많은 남성용 소변기 한가운데 그려져 있는 파리일 겁니다. 항생제 과다 처방을 막기 위해 병원에 편지를 보내 효과를 본 사례도 있습니다. 메시지를 조금 바꾸는 것도 넛지의 예입니다. 영국에서 세금을 늦게 납부하는 납세자들에게 영국인 10명 중 9명은 소득세를 제때 납부한다는 메시지를 포함하자 12만 명이 추가로 세금을 제때 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넛지에 대한 비판과 그 한계에 대한 지적도 만만치 않습니다. 한 가지 비판은 넛지를 이용해 정부가 개인의 삶에 과도하게 간섭한다는 비판입니다. 화장실의 파리를 생각하면 분명 그런 느낌이 들긴 합니다. 하지만 화장실을 청소하는 분들의 수고를 생각하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또 다른 비판은 개인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겁니다. 물론 우리의 일상은 수많은 넛지로 가득 차 있으며, 그러한 넛지 중 어떤 것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것 자체가 각자가 가진 자율성의 몫일 겁니다. 하지만 개인을 조종하려는 이 수많은 시도에 더해 비록 선한 의도라 하더라도 정부가 여기에 동참한다는 사실은 분명 꺼림칙한 면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넛지”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넛지를 둘러싼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넛지는 문제의 본질 대신 피상적인 해결책만을 제시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2016년 한 실험은 이론적으로는 당연히 작동해야 할 넛지를 이용한 저소득층 복지가 현실에서는 원하는 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보였습니다.

미국의 과학전문지인 언다크는 지난 3월,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넛지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넛지의 한계 중 하나는 정부가 구체적인 행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비용이 적게 들고 부담이 덜한 넛지를 선호한다는 것입니다. 곧 행동경제학 그 자체는 정치적 입장이 없지만 “큰 정부”를 선호하지 않는 이들은 정부의 직접적 규제와 같은 구체적인 개입보다 넛지와 같이 가벼운 개입을 선호할 수 있습니다.

이는 팬데믹이 막 창궐하던 시기에도 문제가 됐습니다. 2020년 3월,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가 락다운을 하지 않기로 했을 때 그 결정에 BIT의 팀장이던 데이비드 할펀이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행동과학자들은 영국 정부에 그 결정의 근거를 요구했고, 의회 조사 결과 당시 정부의 고위 관리들은 시민들이 락다운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결과적으로 정확하지 않은 가정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코로나 초기, 아직 백신과 치료법이 등장하기 전 넛지는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 중 하나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넛지가 일상의 가벼운 행동에는 효과가 증명됐지만, 코로나와 같은 극단적 상황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하는 데도 효과가 있을지는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넛지의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사진=Unsplash

일례로, 영국이 첫 재택명령(stay-at-home order)을 내리자 연구자들은 어떤 메시지가 효과적일지를 테스트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이 명령을 잘 따르고 있다는 메시지가 효과적일까요? 아니면 당신에게 가까운 사람이 이를 통해 위험을 피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효과적일까요?

실험 결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여러 넛지 중 효과가 있었던 것은 바이러스에 약한 이들을 떠올리며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을 글로 쓰도록 한 실험군뿐이었습니다. 심지어 그 효과도 2주밖에 지속하지 않았습니다.

넛지의 또 다른 약점은 실험실에서는 나타나던 효과가 전체 국가와 같은 대규모 차원에서는 줄어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126건의 무작위 비교 연구(RCT)를 살펴본 한 메타 연구는 실험실 수준에서는 8.7%의 사람들이 바뀐 반면 현실에서는 1.4%만이 자기 행동을 바꾸었음을 보였습니다.

백신 접종이 중요한 목표가 됐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아직 백신이 나오기 전인 2020년 가을, 독감 백신 접종 대상자들에게 문자를 보내는 넛지는 백신 접종률을 5% 올렸고, 이 결과는 이후 코로나 백신 접종에도 활용되었습니다. 그 결과 예약률은 6%, 실제 접종률은 3.6%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초기의 높은 접종률이 곧 한계에 이르자, 정부는 새로운 넛지를 생각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백신 접종자에게 주는 복권이었습니다. 미국 필라델피아 주 정부는 5만 달러의 상금을 건 복권 행사를 세 차례 치렀습니다. 첫 번째 행사는 11%의 효과가 나타났지만, 전체적으로는 거의 효과가 없었습니다.

이는 넛지가 이미 그 행동을 할 마음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를 행동으로 옮기도록 해주는 효과는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별 효과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8월, 세일러는 이제 넛지가 아니라 백신 패스와 같은 강력한 방법을 정부가 사용하는 편이 낫다고 권고했습니다.

넛지는 분명 어떤 문제에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복잡한 동물이고, 그런 인간들이 모인 이 세상은 더 복잡합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어떤 지시를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반면, 그 지시에 반발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상대에게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결국 핵심은 본질이 아닌 넛지만을 이용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겠지요. 곧, 주객이 전도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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