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를 향한 경제 제재로 미국과 유럽 각국이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 수입을 중단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은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전부터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안에서 기후변화 관련 법안을 쉽사리 통과시키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대통령과 같은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 한 명을 설득 못해서 진전을 이뤄내지 못한 건지, 조 맨신은 누구인지에 관해 지난 10월 25일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올린 글입니다. 당시 쓴 글의 제목은 “바이든 정부 기후변화 법안, 민주당 상원의원 한 명 때문에 도루묵 될 위기”였습니다.
오늘은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현재 미국 의회의 의석 분포를 먼저 짚어 봅시다. 미국 의회는 상원과 하원이 있는 양원제죠. 상원은 50개 주에서 2명씩 100명이 정원이고, 하원 435석은 10년마다 치르는 인구 총조사(Census) 결과를 토대로 인구 비례에 따라 배분합니다. 민주당은 현재 하원에서 222석으로 공화당(213석)보다 9석 많은 다수당입니다. 상원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정확히 50석씩 양분하고 있는데, 이 경우에는 상원의장 역할을 겸하는 부통령에게 마지막 표를 주므로, 역시 민주당이 다수당인 상황입니다.
미국의 입법 과정을 거칠게 한 줄로 요약하면 상·하 양원의 표결을 거쳐 대통령이 서명하면 됩니다. 바이든 행정부와 여당인 민주당이 원하는 법을 입안할 때 상원은 가장 걱정해야 하는 아킬레스건이 됩니다. 한 명이라도 이탈하면 법안이 무산될 테니까요. 바꿔 말하면 민주당의 모든 상원의원이 어떤 법이든 거부권을 쥐고 있는 셈입니다. 반대로 바이든 행정부의 개혁에 어떻게든 제동을 걸고 싶은 야당 공화당으로서는 가장 공을 들여 공략해야 하는 곳이 민주당 상원의원입니다. 한 표만 끌어와도 모든 걸 도루묵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요.
민주당이 우려하던, 공화당은 내심 바라던 일이 지난주 의회에서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기후변화의 속도를 늦추기 위한 민주당과 바이든 행정부의 야심 찬 계획보다 자기 (지역구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일이 더 중요했던 인물은 웨스트버지니아(West Virginia)주 상원의원 조 맨신(Joe Manchin)이었습니다. 뉴욕타임스 데일리 팟캐스트가 맨신 의원의 행보를 조명한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Build Back Better.
지난 대선에서 바이든 후보가 내세웠던 모토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무너진 미국을 제대로 재건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구호죠. 단지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가는 데 그치지 않고, 이 기회에 트럼프 집권 4년 동안 세계적인 추세에 뒤처치며 여기저기서 추락한 미국의 위상을 되찾겠다는 목표를 담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후변화 대책은 바이든 행정부가 전임 트럼프 행정부와 뚜렷한 차별점을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사안입니다. 그런데 바이든 행정부가 야심 차게 준비한 기후변화 관련 법안이 민주당 상원의원 한 명의 반대 때문에 알맹이는 쏙 빠지고 껍데기만 남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한 대규모 사회적 안전망 확충 법안에 포함된 기후변화 방지 법안의 핵심은 깨끗한 발전(發電) 프로그램(Clean Electricity Program)입니다. 석탄이나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를 때 전기를 생산하는 지금의 발전 방식은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합니다. 발전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는 미국에서 차량 배기가스에 이어 온실 효과에 두 번째로 큰 영향을 미칩니다. 깨끗한 발전 프로그램은 화석연료 발전을 풍력, 태양, 원자력 등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깨끗한 발전 방식으로 대체하는 겁니다.
프로그램에는 당근과 채찍이 섞여 있습니다.
먼저 당근부터 살펴보죠. 석탄이나 천연가스로 전기를 생산하는 회사는 온실가스와 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기존 발전소 문을 닫고 깨끗한 에너지원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를 지을 수 있습니다. 이때 기존 발전소 문을 닫고 새 발전소를 짓는 데 드는 비용을 기존 발전 용량 대비 연간 전력 생산량의 4%까지 정부가 보조해 줍니다. 채찍도 있습니다. 깨끗한 발전소를 새로 짓지 않는 전력회사들은 벌금을 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연간 전력 생산량의 최소 4%의 에너지원을 화석연료에서 깨끗한 에너지로 바꾸지 않는 회사들이 처벌 대상입니다.
이미 기후변화로 인한 기후 재해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고, 탄소 배출을 시급히 줄여야 한다는 과학자들의 경고는 계속 수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시장에서 친환경 에너지, 저탄소 산업을 향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변화의 속도는 더딥니다. 이에 바이든 행정부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을 세워뒀습니다.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제시한 최소한의 목표치가 이 정도입니다. 깨끗한 발전 프로그램이 계획대로 시행되면 2030년에 미국은 전력의 80%를 탄소와 오염물질을 전혀 배출하지 않는 깨끗한 에너지원에서 얻게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파리 기후변화협약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는 등 기후변화나 녹색 성장에 아무런 관심이 없던 전임 트럼프 행정부의 실정을 만회할 수 있다고 바이든 행정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는 1,500억 달러. 약 180조 원이 듭니다. 평소 같으면 적지 않은 액수지만,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해 전례 없는 수준으로 돈과 자원을 쏟아부어 인프라를 확충하고 사회 안전망을 갖추겠다는 목표 아래 집행되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패키지 규모를 고려하면 아주 많은 돈도 아닙니다. 원화로 환산해 소개하려면 조(兆)로도 모자라 경(京)을 쓰는 일이 잦아진 요즘입니다.
아무리 계획이 훌륭해도 법에 녹이지 못하면, 그 법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겠죠. 다른 모든 인프라 확충 법안과 마찬가지로 바이든 행정부는 이 법안을 두고도 의회와 협의를 거듭했습니다. 아마 처음부터 깨끗한 발전 프로그램이 세상의 빛을 보느냐 마느냐는 상원의원 100명 가운데 단 한 명, 조 맨신 의원의 손에 달렸다는 걸 정부도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맨신 의원은 민주당 의원 가운데 가장 공화당에 가까운 성향의 의원으로 분류됩니다. 웨스트버지니아주의 다른 상원의원은 공화당 소속입니다. 그러다 보니 비단 에너지 법안뿐 아니라 바이든 행정부가 내세운 거의 모든 아젠다의 운명을 의회에서 조 맨신 의원이 좌우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깨끗한 발전 프로그램은 맨신 의원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맨신 의원의 지역구인 웨스트버지니아주 지역 경제에는 탄광, 천연가스전을 비롯한 전통적인 에너지 산업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지역구의 경제를 지탱해온 산업의 문을 유예기간을 둔다고 해도 결국엔 아예 닫으라는 법에 자신 있게 서명할 수 있는 의원이 얼마나 있을까요?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백악관과 민주당 상원 지도부는 그래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내내 맨신 의원의 요구사항을 거의 다 들어주려 했습니다. (처음에 배경 설명에서 언급한 대로 맨신 의원의 한 표가 없으면 모든 게 도루묵이 되는데, 공화당 상원의원 가운데 찬성표를 끌어 올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 민주당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맨신 의원은 법안에 무작정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에게 프로그램의 내용을 반영한 법안을 자신이 주도해서 쓸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죠. 자기가 직접 쓴 법안이라면 반대하지 않을 테니, 민주당도 맨신 의원의 요구를 들어줍니다. 당내 진보 진영이 원하는 만큼 강력한 탄소 배출 억제책은 없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법을 만들어 통과시키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그렇게 법안을 쓰게 된 맨신 의원과 의원실의 입법, 정책 보좌관들은 몇 달 동안 민주당 내 인사들, 백악관, 또 웨스트버지니아의 기업들, 그리고 로비스트들과 회의를 이어갑니다.
그 결과가 지난주 나왔습니다. 법안은 끝내 쓰이지 못했습니다. 맨신 의원이 찬성표를 던질 수 있는 수준의 프로그램과 바이든 행정부가 핵심으로 삼고자 했던 정책 목표 사이의 거리는 도저히 좁힐 수 없었습니다. 맨신 의원은 백악관 담당자에게 깨끗한 발전 프로그램이 법안에 포함되는 한 자신은 바이든 행정부의 인프라 확충 법안 자체에 찬성할 수 없다는 뜻을 전합니다.
맨신 의원은 이미 발전소들이 깨끗한 에너지원을 도입하고 있는데, 정부가 나서서 굳이 돈을 주거나 벌금을 물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발전소들의 에너지원 전환율은 연간 발전 용량의 2% 정도입니다. 깨끗한 발전 프로그램의 목표는 이를 최소 연간 4%로 높이는 것이고요. 단지 전환의 속도가 두 배 빠른 것뿐 아니라, 프로그램의 또 다른 핵심은 깨끗한 에너지원을 도입하지 않았을 때 발전소가 내야 하는 벌금에 있습니다. 즉, 벌금을 내기 싫으면 깨끗한 에너지원을 쓸 수밖에 없게 하는 제도가 도입돼야 실제로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거죠.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맨신 의원은 이 프로그램이 결국 석탄 발전소, 천연가스 발전소를 비롯해 화석연료 산업의 문 자체를 닫아버리는 걸 목표로 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 모릅니다. 자신의 지역구가 기대고 있는 산업이 사양산업으로 분류되는 산업인데, 산업의 문을 더 빨리 닫도록 유도하는 게 골자인 법안이라면 아무래도 부담스럽겠죠. 지역 경제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법안을 막지는 못할망정 거기에 힘을 보탠 의원으로 기록되는 건 피하고 싶었을 겁니다.
개인적인 이유도 있을 수 있습니다. 바로 맨신 의원이 석탄 산업에 적잖은 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인이 되기 전에 맨신은 웨스트버지니아에서 석탄 매매·중개업체를 차려 성공한 사업가였습니다. 출마와 동시에 기업은 아들에게 물려줬지만, 여전히 해당 기업의 주주이기도 한 맨신 의원은 지난해 주주 배당금으로만 50만 달러를 받았습니다. 이는 다 공개된 자료로, 상원 윤리 규정에 어긋나는 부분은 전혀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맨신 의원이 깨끗한 발전 프로그램에 반대한 이유가 순전히 지역 경제를 위해서만은 아니었을 수 있다고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이긴 합니다.
깨끗한 발전 프로그램을 빼더라도 여전히 30억 달러 규모의 재생에너지 지원 세제 혜택 등 여러 가지 기후변화 대책이 인프라 확충 법안 곳곳에 배치돼 있습니다. (맨신 의원은 이런 인센티브에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습니다.) 또 입법에 실패하더라도 바이든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또는 환경보호청(EPA) 등 연방정부 산하 기관을 동원해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여러 정책을 시행할 수 있습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도(cap and trade)를 개선해 실질적으로 온실가스 배출 업체가 부담을 지게 하는 방안도 있습니다.
탄소세(carbon tax)를 도입하는 방안도 있습니다. 탄소세는 말 그대로 온실가스나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기업에 벌금에 준하는 세금을 거두는 겁니다. 목표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면서 사업을 지속하는 것이 수지가 맞지 않는 일이 되게 해서 결국, 탄소 배출 기업들의 문을 닫는 겁니다. 기후변화의 주범에게 직접 책임을 지운다는 주장은 그럴듯해 보이고,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호소력이 있어 보이지만, 10년 넘게 논의만 됐지 탄소세가 도입되지 않은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당장 기업들은 탄소세가 도입되면 가격을 통해 세금(벌금) 때문에 발생한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겁니다. 사실상 모든 소비자를 상대로 세금을 더 거두는 셈이 되는데, 이는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피하고 싶은 상황입니다. 공화당이 탄소세 논의가 나올 때마다 이를 에너지세(energy tax)라고 명명하는 것도 그 점을 공략한 겁니다.
요약하자면, 맨신 의원이 받아들일 수 있는 최대치는 탄소 배출을 줄이는 일을 시장의 자율에 맡기는 정책입니다. 깨끗한 에너지원을 도입하면 혜택을 주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그러지 않았을 때 벌금을 물리거나 강제로 산업 전체의 문을 닫으려는 건 지역구를 고려해서든, 개인적인 이익 때문이든 맨신 의원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반대로 바이든 행정부가 내놓은 깨끗한 발전 프로그램의 핵심은 당근보다도 채찍에 있습니다. 즉, 석탄 발전소 같은 온실가스 배출 주범들의 퇴장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것이 정책의 목표인 겁니다.
맨신 의원의 결정에 민주당 내에서, 특히 진보 진영에서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특히 깨끗한 발전 프로그램의 뼈대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티나 스마스(Tina Smith, 미네소타) 상원의원은 곧바로 강력한 기후변화 대책이 빠진다면, 자신도 바이든 행정부의 인프라 확충 법안에 찬성표를 던질 수 없다고 맞섰습니다. 이어 의원모임(caucus) 안에서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의원들을 규합해 조 맨신 의원 한 명에게 휘둘려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연이어 보내고 있습니다.
맨신 의원은 당에 짐이 된다면 탈당해 무소속으로 활동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공화당으로 당적을 바꿀 생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오히려 당내 진보 세력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석탄 산업의 안녕에 해가 되는 법안에 서명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거로 볼 수도 있습니다. 민주당으로선 50번째 표를 채울 수 없다면 다수당의 지위를 잃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바이든 대통령과 척 슈머 원내대표에겐 무척 어려운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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