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미국과 개인주의

미국에는 도대체 왜 이렇게 백신 안 맞는 사람이 많을까? 개인적으로도 이 질문에 만족할 만한 답을 찾고자 많은 품을 들였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확실한 이유를 찾지는 못했지만, 프리코노믹스 라디오에 출연한 비교문화심리학자의 설명이 흥미로워서 소개했던 글입니다.

이런 종류의 ‘큰 설명’은 어쩔 수 없이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곤 하는데, 그 점이 걱정됐는지 글 중간에 주의를 당부하는 문단도 집어넣었네요.

* 이번 글은 특정 국가, 문화권의 특징을 추려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범하게 되는 일반화의 오류를 곳곳에서 범하고 있습니다. 앞서 세대 분류법의 문제로 지적한 것과 같은 문제라 할 수 있죠. 그 나라나 문화권에서 나타나는 경향이 모든 구성원에게 일괄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하면 더 큰 오해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설명도 함께 담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개인주의 또는 빡빡한/느슨한 문화가 형성된 원인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했다거나 피상적인 관찰 아니냐는 지적도 받았던 글입니다.


정치적 양극화 탓에 특히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한 주들의 백신 접종률이 낮아 미국 평균을 깎아내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앞서 전해드렸습니다. 그렇다고 백신을 안 맞은 사람들을 전부 다 음모론이나 믿는 한심한 사람으로 매도해서도 안 되겠죠.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현재 우리나라는 백신 수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곤욕을 치르고 있는데, 백신이 남아도는 미국은 백신 못 믿겠다, 안 맞겠다는 사람을 설득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쨌든 개인이 선택할 일 아닌가? 왜 나라가, 사회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하는가?

백신을 안 맞은 많은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백신만이 아닙니다. 마스크를 쓰느냐 마느냐를 두고도 미국은 반으로 갈라졌었죠. 갈등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론 드산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최근 새 학년 시작을 앞두고 학생들에게 마스크를 써야 등교할 수 있게 규칙을 정하는 학교에는 주 정부 지원금을 끊겠다고 공표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차기 대선주자로 눈도장을 찍고 싶은 드산티스의 상황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한국에서 도지사가 마스크를 못 쓰게 하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면 어떤 후과를 치렀을지 생각해보면 정말 달라도 너무 다른 현실의 단면을 보는 듯합니다. 마스크 의무 착용에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도 결은 비슷합니다. 마스크를 쓰느냐 마느냐는 개인이 선택할 문제지, 정부나 사회가 강제할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도대체 개인의 선택이 미국인들에겐 얼마나 중요한 걸까요? 처음에는 공동체에 부과하는 의무 규범(mandate)에 미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거부감을 느끼는가에 관한 글을 쓰려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상식인 게 미국에선 통하지 않을 때가 정말 많습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겠죠. 의료보험 사각지대가 너무 크니, 더 많은 사람이 보험 혜택을 받게 하자는 주장이 나올 때마다 어떤 보험을 이용할지 개인의 선택에 맡기는 미국의 자유로운 제도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니 그냥 두라는 헛소리가 버젓이 먹히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이렇게 틈만 나면 개인의 선택을 강조하는 미국 사람들을 보며 미국의 개인주의란 무엇일지, 그 특징을 다른 나라와 비교한다면 실체적인 차이가 드러날지 궁금했습니다. 그러다 프리코노믹스 라디오에 출연한 비교문화심리학자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개인주의는 미국 문화를 가장 잘 설명하는 열쇳말 중 하나입니다. 노동, 여행, 결혼, 연애, 육아, 돌봄, 경찰 제도, 국가와 개인의 관계, 죽음을 대하는 자세에 이르기까지 개인주의의 영향을 받지 않은 문화, 제도를 찾기 어렵습니다. 다른 나라의 제도를 미국에 이식하려 할 때 잘 안 되는 이유가 대개 문화적 차이 때문입니다. 이는 반대로 미국에서 잘 굴러가는 제도를 다른 나라가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여러 문화권에서 사람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양식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는 비교문화심리학자 미셸 길핀드 교수는 여러 문화를 빡빡한 문화(tight culture)와 느슨한 문화(loose culture)로 나눕니다.

사실 문화를 종합적으로 측정하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그래서 객관적인 데이터를 토대로 측정한 문화를 과학적으로 분석, 비교하기도 어렵죠. 길핀드 교수는 객관적인 수치 대신 큰 기준에 따라 문화를 분류했습니다.

길핀드 교수는 33개국에서 총 7천 명을 인터뷰했습니다. 그 나라 문화가 빡빡한지 느슨한지 분류하기 위해 한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누군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사람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규탄하고 비판하는가?”

“대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 행동이고 바람직한지에 관한 합의된 답안이 있는가?”

 

단적인 예로 팬데믹 시국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 지하철을 탄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한국에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료 시민들이 이를 지적할 것이고, 그 승객은 마스크를 사서 쓰지 않겠다고 버티기 어려울 겁니다. 지하철에서 내려 당장 마스크를 구입해야만 목적지까지 계속 갈 수 있을 겁니다. 미국에선 어떨까요? 누구도 마스크를 쓰라고 지적하지 않을 겁니다. 그랬다간 “당신이 뭔데 내 자유를 침해하느냐”며 싸움이 날 가능성이 크니까요. 한국은 빡빡한 문화, 미국은 느슨한 문화로 분류됩니다.

한국처럼 사회적 규범이 엄격하게 적용되고, 사람들이 다 같이 질서를 지키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빡빡한 문화’의 나라로는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인도, 싱가포르, 중국, 일본, 터키 등이 있습니다. 주로 아시아, 중동 국가들이 여기 속했고, 유럽에선 북유럽, 혹은 독일계 국가들이 여기 속합니다.

반대로 미국처럼 공동체의 규범보다는 개인이 더 중요한 ‘느슨한 문화’의 나라로는 우크라이나, 에스토니아, 헝가리, 이스라엘, 네덜란드, 브라질 등이 있습니다. 영미권 국가, 라틴아메리카, 남유럽 국가들이 대개 여기에 속합니다. 공산주의 체제를 겪은 나라에서 느슨한 문화가 발견되는 건 다소 의외인데, 길핀드 교수는 모든 걸 통제하던 전체주의가 사라지고 거대한 규범의 공백이 생긴 전형적인 아노미 현상으로 이를 설명합니다.

빡빡하고 느슨한 문화가 형성되는 요인으로 자연재해나 질병, 외세의 침입 등 외부에 상존하는 위협이 있느냐 없느냐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그런 위협이 덜한 편이어서 느슨한 문화가 형성될 수 있는 요건을 갖췄습니다. 특히 미국은 시간이 흐를수록 문화가 더 느슨해졌습니다. 언론에서 재량(leeway), 유연성(flexibility), 허용하다(allow)와 같은 단어가 등장하는 빈도는 꾸준히 높아졌습니다. 물론 세계대전이나 냉전 중에 갈등이 고조될 때, 9.11 테러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처럼 규범을 앞세우던 시기도 있었지만, 원래 빡빡한 문화로 분류되는 나라와 비교하면 미국은 늘 느슨한 편에 속했습니다.

하버드대학교의 진화심리학자 조 헨릭 교수는 문화를 사람들의 머릿속에 저장된, 행동 양식, 규범에 관한 사회적으로 학습된 정보의 총합으로 정의합니다. 각종 유인, 휴리스틱, 편견, 신념 등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라며 익히고 배운 것들이 문화를 이루고, 반대로 성적 충동 같은 경우 사회적으로 학습됐다기보다 본능에 가까우므로 문화가 아니라는 겁니다. 사진=Unsplash

빡빡한 문화에서 사람들은 규범을 더 잘 지키고, 규제를 시행했을 때 효과도 높습니다. 앞서 예로 든 코로나19 상황에서 마스크 착용을 두고도 반응이 다르죠. 방역 수칙을 지켜야 할 규범으로 받아들이느냐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협으로 여기느냐가 다른 결과를 낳았습니다. 실제로 길핀드 교수가 분류한 느슨한 나라에서는 빡빡한 나라에서보다 (인구 대비)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5배, 사망자 수는 9배나 더 많았습니다. 반대로 창의성을 발휘하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경쟁하는 가운데서만 꽃필 수 있는 혁신은 빡빡한 문화에서보다 느슨한 문화에서 더 잘 일어났습니다. 코로나19 방역 성적표는 나빴을지 몰라도 백신을 더 효과적으로 생산, 수급하는 데는 느슨한 문화에 속하는 국가들이 더 잘 대처했습니다.

빡빡한 문화와 느슨한 문화의 눈에 띄는 차이는 이 밖에도 많습니다. 재미있는 것 몇 가지만 추려 보자면, 거리의 시계도 빡빡한 문화권에선 상대적으로 정확했다는 겁니다. 독일, 일본이 그랬죠. 반면에 느슨한 문화로 분류되는 브라질이나 그리스에서는 거리의 시곗바늘이 엉뚱한 숫자를 가리키고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제멋대로 가는데도 오랫동안 방치된 시계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느슨한 문화에선 상대적으로 규범을 잘 따르지 않고, 자기관리도 철저하지 않은데, 미국에선 사람만 비만이라 문제가 아니라 개, 고양이도 50% 이상이 비만입니다. 빡빡한 문화권에선 자기관리가 상대적으로 철저합니다. 사생활 영역이라고 발끈할 만한 부문에서도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이 정해져 있다 보니 조금만 살이 찌면 주변에서 함부로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비만도 적고, 중독도 덜하며, 규범을 어기면 실제로 처벌을 받다 보니 범죄율도 대체로 낮습니다.

 

물론 한 나라 전체의 문화를 예단하는 일은 신중해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 이룬 공동체가 추상적인 특징을 획일적으로 공유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당장 미국만 해도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이 엄존하고, 주별로도 차이가 두드러집니다. 느슨한 문화권 안에서도 소수자들은 상대적으로 빡빡한 문화를 체화하고 살기 마련입니다.

빡빡한 문화와 느슨한 문화는 서로 공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특히 서로 다른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군대는 원칙과 규율을 강조하는 집단이지만, 문화가 지나치게 경직되면 혁신에서 뒤처지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미국 해군은 더욱 다양한 아이디어를 포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더 느슨한 문화를 심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자율적인 노동 환경을 가꿔 성공한 테슬라나 우버 같은 테크 회사들도 업무 특성에 따라 체계를 더 갖추고 처리해야 할 일들을 위해 때로는 빡빡한 문화를 도입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주의를 비롯한 미국의 독특한 특징 탓에 우리가 늘 염두에 둬야 할 주의사항을 한 가지만 언급하고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제도는 문화의 영향을 받습니다. 성공한 제도를 수입하려는 노력도, 실패한 제도를 반면교사로 삼으려는 노력도 이 점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성공 또는 실패 사례로 삼는 미국의 제도에는 당연히 미국의 문화가 녹아 있습니다. 하버드대학교의 진화심리학자 조 헨릭 교수는 미국의 제도는 WEIRD한 특징을 지닌 미국 사람들을 대상으로만 검증을 거쳤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WEIRD는 엉뚱하거나 이상하다는 뜻의 weird가 아니라 서구의(Western), 교육받은(Educated), 산업화된(Industrialized), 부유한(Rich), 민주주의 국가(Democracy) 출신을 뜻하는 단어의 앞글자만 따온 겁니다.

특히 현대의 사회심리학은 미국에서 비약적으로 발달했는데, 사회심리학 연구의 96%가 미국인, 그중에서도 소위 WEIRD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입니다. 그러니 이런 연구가 아무리 많이 쌓여도 그 연구 결과와 교훈을 다른 문화권에 적용하면 엇박자가 날 수 있습니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섣불리 제도와 문화를 수입하거나 수출하려다가는 단순한 오해, 혼란을 넘어 편견이 강화되고 서로 혐오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고자 할 때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ingppoo

뉴스페퍼민트에서 주로 세계, 스포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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