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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고 싶었을 때, 아버지가 내게 해준 말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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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퍼민트 에디터이기도 했던 정신과 전문의 나종호 님이 오랜만에 글을 번역해 자신의 브런치에 올렸습니다. 환자 본인들의 이야기를 실어 질병에 대한 낙인을 해소하는 걸 목표로 하는 사이트 themighty.com의 기사입니다. 역자의 허락을 구해 뉴스페퍼민트에도 글을 싣습니다. 나종호 님이 전에 뉴스페퍼민트에 소개했던 글은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원문에 있는 편집자의 말을 보면,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이 글을 읽고 자살에 관한 생각이 다시 들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급한 도움을 청하고 싶을 때 연락처가 적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자살예방상담 전화번호는 1393입니다.


 

꺼내기 쉬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제 삶이 자살로 끝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딱 두 번 있었어요. 한 번은 10대 초반일 때였고, 두 번째 그런 생각을 했을 때 저는 20대였어요.

두 번 모두 삶이 조금 힘들어졌을 때긴 하지만, 정확히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는 저도 잘 몰랐어요.

왜?

라고 스스로 물었을 때 제가 떠올릴 수 있는 답은 하나뿐이었어요. 그저, 그 일(자살)이 잘못된 일이라기보다는 정답에 가까워 보였고, 내 힘으로는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았어요.

당시 저는 딱히 슬프지도 않았어요. 주변에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것도 아니었고, 따돌림을 당하거나 폭력의 피해자였던 것도 아니죠. 주변에 누군가가 불치병에 걸리지도 않았고, 경제적 위기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어요. 멀쩡한 직업이 있었고, 실연을 당한 것도 아니었어요.

그런데도 저는 당시 극도의 외로움을,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고독을 느끼곤 했어요. 제가 삶에 대한 의욕을 잃은 건 삶이 저에게 아무런 의욕이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저는 진정한 행복이란 게 있다고 믿지 않았어요. 그런 건 평생 찾지 못할 것 같았어요. 불가능한 그 목표에 설사 제가 닿더라도 그 행복을 누릴 만한 자격이 제겐 없다고 생각했어요.

제 삶은 고독과 고통으로 가득했어요. 저는 늘 저 자신을 홀로 두었죠. 마치 어릴 때 집에서 안 좋은 일이 있으면 방에 틀어박혀 있는 아이처럼요. 칠흑 같은 어둠이 저의 낮과 밤을 지배했고, 그런 상태는 마치 추운 겨울처럼 몇 달 동안 지속됐어요.

어느 추운 2월의 아침, 저는 유서를 쓰기 시작했어요. 어떤 내용을 쓸지 이미 훤히 다 알고 있었어요. 우선 제게 주어진 아름다운 삶에 대해 제가 얼마나 감사한지에 관해 썼어요. 사랑하는 가족, 내가 해냈던 많은 일과 경험에 관해 썼죠. 제게 기쁨을 주었던 추억들에 관해서도 썼어요. 제가 예의 바르고, 타인에게 공감할 줄 아는 사랑스러운 남자로 자랄 수 있도록 제게 주어졌던 믿을 수 없는 삶의 경험을 써나갔죠.

하지만 유서의 마지막은 이렇게 썼던 거로 기억해요.

저는 당신이 제가 매우 행복하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하지만 동시에 저는 너무나, 지독하게 외롭다는 것도요.

제가 자라면서 겪은 역경과 그로 인한 고통을 떠올렸어요. 저는 14살 때부터 정신과 약물을 처방받았어요. 하지만 대학에 가면서부터 약을 끊었죠. 가족 중에 정신건강 문제가 있는 이가 있다는 걸 알았지만, 저는 제 문제들이 진짜 질병이 아니라 그저 “생각”의 탓 아닐까 의심했어요. 어린 시절부터 억제됐던 불안들로 인해 제 자존감은 떨어졌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포기하게 됐죠.

저는 결국 병원에 입원했어요. 그리고 살아남았죠.

이후 수년간 저 자신을 쉼 없이 채찍질했어요. 다시 약물을 먹었고, 심리치료를 통해 제 머릿속의 악마들과 마주했죠. 우정, 약물, 그리고 기도와 함께하는 동안 저는 어느덧 30대 중반이 됐습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 기다려주었던 완전히 새로운 삶의 챕터를 발견했죠.

저는 그동안 지나간 시간들, 힘들었던 기억들을 돌아보지 않았어요. 그리고 다행히도 수년간 그와 비슷한 감정들을 느끼지 않았죠. 하지만 저는 그때, 그 자리에 무언가 고장 난 것처럼, 그리고 속이 텅 빈 것처럼 앉아있던 그 기분이 어땠는지를 너무나 잘 알아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재단하고, 저를 이해하지 못했던 때를요. 저는 그때 어떤 말들이 제게 도움이 됐고, 어떤 건 별로 도움이 안 됐는지 배웠습니다.

  • 제가 볼 수 없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로 저를 설득하려는 건 도움이 안 됐어요. 그건 오직 제가 정상과 더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처럼 느끼게 할 뿐이었어요.
  • 제게 지시를 하거나 조언하는 것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저 자신을 위해 제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생각은 오히려 그렇다면 내 손으로 더 끔찍한 일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곤 했죠.
  • 저를 위해 울어주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저더러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도움이 안 됐죠. 두 행동 모두 제게 죄책감을 불러일으켰고, 더욱 강렬한 고통을 줄 뿐이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죄책감을 변화의 원동력으로 삼는다고도 하는데, 저는 아니었어요. 저는 죄책감 때문에 저 자신이 다른 사람의 짐인 것처럼 느껴져서 더 힘들었어요.
  • 당시 제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딱 하나였어요. 사실 저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일이었죠. 당시 저는 아버지와 10년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었는데, 제가 힘들어한다는 사실이 아버지의 귀에도 어떻게 전해졌나봐요. 아버지가 제게 연락을 해왔어요.

아버지는 당신의 삶에서 가장 외로웠던 순간을 이야기해줬어요. 사랑하는 가족을 알코올로 떠나보내야 했던 때의 감정에 관한 이야기였죠. 사업이 기울고, 그가 경험해야 했던 고립과 수치심에 대해서도 자세히 이야기해줬어요.

아버지의 이야기들에 저는 공감할 수 있었어요. 아버지는 저 때문에 기분이 상하거나 실망하지 않았어요. 울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저를 재단하지도 않았죠. 그리고 제 문제들에 대해 그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지금도 아버지가 그때 제게 해준 말을 잊지 못해요. 그 말들은 제 삶을 완전히 바꾸어놓았어요.

아들아, 너는 언제든 혼자가 아니야. 내가 항상 여기 네 옆에 있을 테니까. 그리고 우리는 필요한 만큼, 언제까지든 그렇게 함께 있을 거야. 우리한테 지금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뿐이야. 다른 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아버지의 그 말은 나를 있는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사랑으로 가득 찬 말이었어요. 저는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으리라 기대하지 않았었죠. 아버지는 실제로 내 옆에 있던 것도 아니고,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으니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말일 뿐이었는데, 저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한 20분쯤 울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는 20분 동안 제가 우는 것을 그저 조용히 듣고만 계시다가 이렇게 말했어요.

그게 언제든지, 네가 준비됐을 때… 그때 우리 함께 일어서서 다시 삶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거야. 그리고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함께 찾아보자. 알겠지?

몇 년이 지나 저는 더 강해졌고, 지혜를 얻었어요. 다른 사람이 외로움을 느낄 때 저는 그들의 눈빛에서 고독을 감지할 수 있어요. 누구든지 사실 다 느낄 수 있어요. 그건 그 사람이 혼자인 것처럼 느끼고 싶지 않다는 신호거든요.

누군가와 동행하는 것은 그 사람을 나의 기준으로 재단하거나 가르치는 게 아니에요. 연민하는 건 더더욱 아니고요. 타인에게 부담이 된다거나 죄책감을 느낄 거라고 추측하지도 않아요. 동행이란 우정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에요. 동행은 그저 함께 있는 거예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할 것 같던 사람들도 서로에게 속할 수 있다는 걸 배운 그날부터 저는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자살이 항상 우울증이 있는 사람에게만 오는 건 아니에요. 우울한 사람들이 꼭 자살로 죽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타인에게서 떨어져 있다는 감정은 매우 치명적일 수 있어요.

만약 당신, 또는 당신이 아는 사람이 자해하려고 하거나 이 세상을 떠나려고 한다면, 부디 함께 있어 주세요. 우리는 당신이 필요해요. 당신과 같은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해요. 우리는 당신의 따뜻한 마음과 사랑이 필요해요. 우리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야 해요.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법도 배워야 하고요. 당신은 지금 이 순간에는 느끼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당신은 여기에 꼭 필요한 사람이에요.

우리에게 중요한 건 지금, 바로 여기, 이 순간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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