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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가는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것들

(Séverine Autesserre, 워싱턴포스트 멍키 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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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5월 1일로 예정된 군대 철수 시점이 다가오면서 아프가니스탄 평화 협상은 바이든 행정부가 가장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협상이 지지부진한 탓에 미군이 철수하는 시점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으리란 전망도 나옵니다. 오래전부터 협상은 시작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는 예멘에서는 충돌이 계속되고 인권 유린 사례도 속출하는 등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협상이 진전돼 평화 협정이 체결되더라도 분쟁 지역에 폭력을 종식하고 진짜 평화가 안착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무척 많습니다. 평화를 향한 첫걸음에 불과한 평화 협정이 유명무실해지고, 끝내 휴짓조각처럼 버려지는 사례를 우리는 콜롬비아, 이라크, 남수단 등 세계 곳곳에서 무수히 목도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20년 넘게 진행한 제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우리가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택한 접근법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펴낸 제 책 “평화의 최전선(The Frontlines of Peace)”에서 소개한 세 가지 발견을 정리했습니다. 지난 20년간 전 세계 12개 분쟁 지역을 위주로 전쟁과 평화에 관한 다양한 주제를 깊이 있게 연구한 결과입니다.

 

1. 총성, 포성이 끊이지 않는 전쟁 지역에서도 평화가 유지되는 곳들의 비결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주 판좌이(Panjwai)라는 지역 주민들은 이달 정부군과 탈레반 사이에 휴전 협상을 끌어냈습니다. 우선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서로 총을 거두기로 했습니다. 이제 첫 단추를 끼웠을 뿐이지만, 분명 의미 있는 성과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참혹한 전쟁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콩고 내전으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콩고 키부호수에 있는 이드쥐(Idjwi)라는 섬은 지난 20년 넘는 세월 동안 전쟁의 참화가 비켜 간 ‘평화의 섬’으로 남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소말리아에서는 지금도 매주 자살폭탄 공격을 비롯한 테러 공격이 끊이지 않지만, 소말리아 북부 소말릴랜드(Somaliland) 자치구는 전혀 다른 세상입니다. 지난 20년간 소말릴랜드에서는 무력 충돌이나 테러 공격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죠.

콜롬비아의 산호세 데 아빠르따도(San José de Apartadó)는 주민들이 앞장서서 살인, 납치, 고문 등 자칫 분쟁으로 비화할 수 있는 행위를 하지 못하게 자율적으로 통제하는 데 성공하며, 내전과 폭력으로 얼룩진 주변 지역에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 곳곳의 분쟁 지역을 유심히 관찰해보면 이렇게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평화를 구축한 곳들을 여러 군데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와하트 알 살람 네베 샬롬(Wahat Al Salam-Neve Shalom)이란 마을이 있는데, 이곳은 아예 이스라엘 사람과 팔레스타인 사람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만든 마을입니다. 실제로 이 마을 주민들은 서로 차이를 인정하며 평화롭게 지냅니다.

 

2. 폭력을 줄이는 데 있어 보통 사람들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

지금 바이든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예멘에서 전쟁을 끝내기 위해 고위급 정치지도자들 사이에 평화 협상을 중재하고 독려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흔히 대통령 등 정부 수반과 반군 지도자가 환히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과 함께 “평화 협정이 체결됐고, 지역에 평화가 찾아왔다.”와 같은 제목의 기사가 신문 1면에 대서특필되는 그런 상황을 만들어내려는 거죠. 그럴 수 있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자신들의 치적으로 삼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이 접근법은 너무 추상적이며 진짜 평화를 가져오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위에서 살펴본 사례들도 상의하달식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부터 신뢰를 쌓아 올려 평화를 정착시킨 사례가 대부분입니다.

콩고 이드쥐 섬의 주민들은 평화를 구축하는 일만큼은 모두가 한데 뜻을 모아 나섰습니다. 이들은 “평화적인 문화”를 적극적으로 퍼뜨리고 정착시켜 지역 사회 안에 폭력이 발붙일 틈을 지워나갔습니다. 지역사회 안에서 분쟁을 중재하고 해소하는 단체와 규범을 만들었습니다. 이드쥐섬 주민은 물론 외부에서 섬에 오는 사람들도 평화를 유지하고 폭력을 멀리하는 데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합니다.

소말리아와 소말릴랜드의 차이점도 비슷합니다. 소말리아 대부분은 외부 세력이 주도하는 상의하달식 평화를 추구했지만, 소말릴랜드는 시민들이 꾸린 자치 기구와 풀뿌리 조직, 단체들이 평화를 구축하고 직접 유지했습니다.

제가 분쟁 사례를 연구한 모든 나라, 지역에서 보통 사람들과 이들이 꾸린 풀뿌리 단체 활동가들이 실질적인 평화의 중요성을 알리고 협상을 촉구하는 여론을 형성해 정부와 반군의 지도자가 협상 테이블로 끌려 나온 사례가 정말 많았습니다. 위에서 예로 든 지역뿐 아니라 보스니아, 인도네시아, 이라크에서 평화를 정착한 모범 사례로 꼽히는 지역도 다 그렇습니다. 세계 2차대전 때도 보통 사람들이 일상의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내 주변에서부터 쉴 새 없이 노력해 성공한 사례가 많습니다.

 

3. 새로운 접근법이 오히려 더 잘 먹힐 수도

미국 외교관이나 UN처럼 평화를 중재하기 위해 분쟁 지역에 개입한 세력들이 더는 먹히지 않는 구식 평화 협상에 품을 허비하지 않고, 지역 주민들이 중심이 되는 풀뿌리 방식의 평화 구축 전략을 지원할 수도 있습니다. 두 가지 접근법 중에 하나만 택하고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병행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미 두 가지 접근법을 효과적으로 함께 쓴 사례들이 많이 있습니다.

틀에 박힌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누구보다 평화를 갈구하는 지역 주민들을 도와 차이를 만들어낸 외부 세력들을 살펴보면 그 출신도, 조직의 양태도 다양하지만,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 지역 주민들을 존중합니다.
  • 지역 주민들의 말을 최대한 듣고 이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 한 지역 주민 사이에서도 평화와 지역 발전, 민주주의 등 중요한 가치를 이해하는 방식과 셈법이 다르고, 그래서 원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 그 지역사회의 역사와 배경을 이해합니다.
  • 최소한 어느 정도 그 지역 언어로 직접 소통할 수 있고, 지역사회 안에도 비교적 촘촘한 인맥을 쌓습니다.
  • 해당 지역에 최소한 몇 년, 길게는 몇십 년씩 머물며 평화의 필요성을 체화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상의하달식 접근법을 폐기해야 한다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여전히 정부와 엘리트 기관이 협상의 끈을 놓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다만 기층 민중의 요구를 충분히 받아들이고 녹여낸 평화 체제가 오래 간다는 겁니다. 전쟁을 끝내고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선 우리가 평화를 구축하는 방법을 바라보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사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따로 있습니다. 평화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건 전쟁을 겪고 있는 분쟁 지역뿐 아니라 미국처럼 평시 상태지만, 인종, 종교, 정치적으로 분열과 갈등을 겪는 사회에서 갈등을 해소하고 극복하는 방법을 찾을 때도 도움이 된다는 점입니다.

ingpp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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