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 Vivian Leung)
최근 특히 고령층의 아시아계 미국인이 잇따라 공공장소에서 공개적으로 공격을 받았습니다. 혐오 범죄(hate crimes)로 분류할 수 있는 일련의 사건은 미국 사회 안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의 지위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보여줍니다. 팬데믹이 시작했을 때부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코로나바이러스에 줄기차게 특정 인종을 비하하고 특정 집단에 책임을 덮어씌우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쿵푸 독감(kung flu)이나 중국 바이러스(Chinese virus)라는 말이 대통령의 입에서 쉼 없이 나오는 사이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질병을 옮기고 다니는 열등한 인종으로 묘사됐습니다. 미국 사회에 절대로 섞일 수 없고 주류가 될 수도 없다는 아시아인을 향한 오랜 편견도 되살아났습니다.
실제로 학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용어 선택이 미국 사회 전반에 혐오 발언과 혐오 범죄를 부추겼다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최근 아시아계 미국인을 향한 범죄가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 인종 때문에 차별받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아시아계 미국인은 10명 중 3명이나 됩니다.
이런 경험이 정치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제가 진행한 연구 결과를 보면 인종 때문에 차별받는 등 부정적인 편견의 희생양이 되면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자신의 인종 정체성에 오히려 더욱 집착하게 됩니다. 물론 아시아 대륙의 다양성을 고려하면 ‘아시아계’라는 인종 분류는 어폐가 있죠.
인종 문제에 관한 연구들을 보면 아시아계 미국인은 영원한 이방인으로 간주됩니다. 본질적으로 미국의 가치와 어울리지 않고, 그래서 미국 사회에 녹아들 수도 없는 존재로 취급받죠. 미국의 뿌리 깊은 반아시안 정서의 시작을 살펴보려면, 미국에 중국인, 필리핀인이 처음으로 이주한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미국 사회의 반아시안 정서는 역사적으로 두 가지 서로 다른 분야에서 나타났습니다. 먼저 건강, 위생에 관한 것으로, 아시아인들이 질병을 옮긴다는 우려가 편견으로 굳어진 사례입니다. 다른 하나는 경제적인 문제로, 특히 아시아인들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우려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1882년에 미국 의회가 중국인 배제법(Chinese Exclusion Act)을 제정한 데도, 1930년대에 백인 노동자들이 필리핀 출신으로 농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을 집단으로 습격한 배경에도 아시아인들 때문에 미국인의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최근 중국이 경제적으로 부상하는 가운데 중국에서 시작된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치자, 중국인, 혹은 아시아계 미국인을 향한 두려움이 또다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반아시안 정서가 분명히 있지만, 동시에 미국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은 이른바 모범적인 소수 인종(model minority)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모범적인 소수 인종’은 다소 복잡미묘한 개념이자, 이중적인 차별의 기제가 되기도 하는데, 아시아인을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학업 성적도 우수해서 미국 사회에서 고소득 전문 직종을 주로 갖는 성공한 이민자의 전형으로 그리는 겁니다. 당연히 모든 아시아인이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는 다분히 비뚤어진 고정관념이고, 영원히 미국에 동화될 수 없는 이방인에 머물 수밖에 없는 아시아계 미국인이 겪는 고충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또한, 이 고정관념은 반대로 모범적인 모습과 거리가 먼 다른 소수 인종을 폄하하는 데 악용될 수 있습니다. 흑인이나 라티노를 향해 ‘아시아인처럼 모범적이지 않다’는 식의 딱지를 붙이는 행위가 그렇습니다. 게다가 아시아 대륙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사는 곳입니다. 출신 국가, 종교, 문화도 서로 다르고 심지어 역사적으로 적대 관계에 있는 나라나 문화권도 수없이 많은데, 이렇게 다른 이들을 한데 뭉뚱그려 ‘아시아계’라고 명명하는 분류법은 시대착오적입니다.
인종 차별과 (모범적인 소수 인종과 같은) 잘못된 고정관념이 아시아계 미국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 저는 아시아계 미국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조사 이름은 2020 아시아계 미국인 옴니버스 조사(AAOS)입니다. 설문조사 회사인 보비츠(Bovitz)가 2020년 2월 말에 스스로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규정한 이들 1,514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응답자 가운데 47%는 미국 밖에서 태어났고, 53%는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저는 아시아계 미국인이 아시아인을 향한 고정관념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한 가지 실험을 같이 진행했습니다. 응답자들은 세 가지 짧은 글 중 한 편을 읽게 되는데, 세 편 중 두 편은 아시아인이 다소 기분 나쁠 수 있는 전제를 한 글이었습니다. 미묘한 차별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s)이 포함된 내용이었죠. 마이크로어그레션은 미국에 사는 아시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상에서 겪어봤을 일입니다.
첫 번째 글은 아시아계 미국인이 “근면성실하고, 수학도 잘한다”는 전형적인 모범적인 소수 인종의 고정관념을 드러낸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회사들이 사람을 뽑을 때나 승진 심사에서 다른 인종에 비해 아시아계 미국인을 우대한다는 내용이었죠. 두 번째 글은 영원히 이방인에 머물 수밖에 없는 아시아인의 운명을 적시한 글로, 아시아계 미국인은 영어를 잘 못해서 일자리를 찾을 때 차별이 불가피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통제군으로 사용한 세 번째 글은 회사들이 전반적으로 고용을 늘리고 있다는 내용으로, 소수 인종이나 민족은 아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세 편의 글 중 하나를 무작위로 읽은 응답자들에게 자신의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 점수를 매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예를 들면, “나의 정체성 가운데 내가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사실은 중요한 부분이다.”라거나, “미국에 사는 아시아인들은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비슷하거나 일치한다.”라는 주장에 얼마나 동의하는지 물은 거죠.
아시아계 미국인의 정치적인 정체성을 가장 많이 일깨운 건 ‘영원한 이방인’으로 아시아인을 묘사한 글이었습니다. 통제군으로 쓴 글에 비해 ‘영원한 이방인’ 글을 읽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한다고 답한 비율이 6.7%P 더 높았습니다. 출신 배경을 불문하고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면 정치적으로 비슷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에도 더 많이 동의했죠. ‘모범적인 소수 인종’ 글을 읽은 이들은 통제군보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일정 부분 ‘운명 공동체’라는 지적에 5%P 더 동의했습니다. 미국에서 자신이 잘사는 데 아시아계 미국인 전체의 안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실험에서 드러난 효과는 크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대신 저는 개인들이 일상에서 겪는 미묘한 차별의 경험이 오랜 시간 계속 쌓이다 보면 더 눈에 띄는 효과가 나타나리라고 생각합니다.
실험에서 확인한 내용은 기존의 다른 연구 결과와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정치학자 제인 전과 나탈리 마쓰오카는 특정 집단을 향한 차별이 담긴 글을 읽으면 당사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차별받는 집단과 더욱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였습니다. 이태구 교수는 집단의 인종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인식하는 사람일수록 정치 참여가 활발하다는 점을 보였습니다.
만약 인종 차별을 받는 개인이 자신의 인종 정체성을 더 뚜렷이 인식하게 된다면 이는 당장 선거의 표심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아시아계 미국인은 이미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유권자 집단이자, 정치력을 키워가는 집단입니다. 지난해 선거에서 조지아나 텍사스 등 격전주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의 투표율이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고, 이들은 압도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을 찍었죠. 지난해 의회 선거에서도 역대 가장 많은 아시아계 미국인이 표를 던졌습니다. 네이선 찬, 김재연과 제가 진행한 다른 연구도 비슷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즉, 코로나19 팬데믹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팬데믹의 책임을 아시아에 뒤집어씌우고, 아시아계 미국인을 희생양으로 삼는 발언을 일삼다 보니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민주당에 몰표를 줄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제 일련의 연구를 종합해보면, 최근 들어 급증한 아시아계 미국인을 향한 혐오 범죄는 아시아인들이 출신 국가나 문화 등 인종 정체성을 더욱 명확히 자각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입니다. 자연히 현실 정치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시아계 미국인들도 늘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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