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an Enriquez,TED)
모든 분야에서 극단적인 대립이 벌어지는 이 시대에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10초 전이나 10시간 전에 한 말이 아니라 열 달 전, 아니 10년 전에 했던 말로도 당신은 다른 이들에게서 비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당신의 반대편이 당신을 상징적인 목표로 삼을 수도 있으며, 당신과 크게 보면 같은 편인 이들도 당신의 의견이 충분히 선명하지 않다는 점을 구실로 당신을 목표로 삼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옳고 그름이 시대에 따라 바뀐다면 어떨까요? 또 기술의 발전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바꾼다면 어떨까요? 정말로 기술이 그런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면, 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옳고 그름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까요?
한때 인간을 제례의 희생물로 삼는 것은 인간의 역사에서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이는 신을 달래는 한 가지 방법이었습니다. 그저 비가 오지 않거나, 아니면 햇볕이 충분하지 않았을 때도 그랬습니다. 공개처형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류 역사상 여러 사회에서, 그 사회의 규칙에 따라 수시로 사람을 공개 처형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사람의 목을 자르는 광경을 보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광장으로 갔습니다. 인간의 가장 부끄러운 과거인 노예제도는 사실 그 역사가 수천 년에 이릅니다. 잉카, 마야, 중국, 인도, 남북 아메리카에 노예제도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렇게 큰 잘못된 일이 어떻게 그렇게 오래 지속된 거지? 그리고 다음 질문은 이렇겠지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문화가 사라지게 된 걸까? 그리고 어떻게 그리 오래된 문화가 그렇게 짧은 시간에 사라져버린 걸까?
물론 불의한 제도를 혁파하기 위해 몸 바친 특별한 순교자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화의 변화에는 다른 요인도 있습니다. 한 가지는 에너지와 산업혁명입니다. 석유 1배럴(약 160리터)은 한 사람이 10년 동안 일한 만큼의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에너지원입니다. 여기에 기계의 노동력을 고려하면, 이제 더 이상 사람을 노동력으로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인류는 노예제를 포기하고도 수천 년 동안 늘어나지 않던 평균 수명을 짧은 시간 만에 두 배로 늘렸습니다. 역시 수천 년 동안 제자리걸음이던 전 세계의 생산량도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훨씬 작은 인간의 노동으로도 훨씬 더 많은 부와 식량을 생산하게 됐습니다.
기술은 인간의 상호작용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꿨습니다. 이는 1차대전 당시 기관총이 전쟁의 본질을 바꾼 것과 비슷합니다. 기관총은 양 진영이 참호를 파고 그 안에서 버티도록 만들었습니다. 군인들은 영국군 참호 안에 있거나 아니면 독일군 참호 안에 있어야 했습니다. 두 참호 사이에는 사람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곳으로 가는 사람은 모두 죽었기 때문입니다. 참호 뒤편으로도 갈 수 없었습니다. 탈영병을 향해서도 기관총을 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교외를 운전하다 보면 두 가지 구호를 보게 됩니다. 하나는 “흑인의 목숨은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는 경찰을 지지합니다(We support the police)”입니다. 한 집에 두 구호가 같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설문조사를 해보면, 사람들은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며(67%), 경찰 또한 지지한다고(58%) 말합니다. 즉, 이 양극단의 시대에는 옳고 그름 또한 양극단을 향한다는 말입니다.
동성결혼을 생각해봅시다. 1996년 미국인의 2/3는 동성결혼을 반대했습니다. 오늘날에는 2/3가 찬성합니다.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 겁니다. 운동가들, 커밍아웃한 이들, 에이즈(AIDS)에 대한 연구 등이 영향을 미쳤지만, 근본적으로는 소셜미디어의 영향입니다. 각자 집에서, 거실에서, TV와 영화를 통해,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가까운 친구, 이웃, 가족 중에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가장 보수적인 이들조차도 변화하게 했습니다. 교황의 예를 봅시다. 2010년 당시 추기경이던 현 프란치스코 교황은 동성결혼에 반대했습니다. 교황이 된 지 3년 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어찌 다른 이를 판단하겠습니까?” 이제 그는 동성결합법에 찬성합니다.
기술이 윤리를 바꾸는 것이 확실하다면, 오늘날 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제 고려해야 합니다. 옳고 그름이 바뀌는 시대에 당신이 어떤 입장을 취한 다음 “내가 옳아. 만약 나에게 동의하지 않는다면, 또는 내 말에 부분적으로라도 동의하지 않는다면, 아니면 그저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려고만 해도 당신은 틀린 거야.”라는 태도를 취한다면 어떠한 토론도, 관용도, 합의도, 발전도, 학습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아직 채식주의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는 아직 대체육이 충분히 싸고 맛있지 않아서 그런 걸지도 모릅니다. 이 분야도 기하급수적으로 발달하고 있습니다. 대체육 한 덩어리는 2013년에는 38만달러(약 4억 원)이었지만 지금은 9달러(약 1만 원)까지 값이 내렸습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채식주의자, 혹은 준-채식주의자가 되고 있습니다. 가장 값비싼 레스토랑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소고기를 전시해놓은 오늘날의 모습은 10년 뒤, 20년 뒤, 30년 뒤에는 전혀 다르게 느껴질 것입니다.
이 양극단의 시대에, 나는 이제 매우 듣기 힘든 두 단어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바로 겸허(humility)와 관용(forgiveness)입니다. 누군가의 과거를, 조상을, 선조를 비판할 때 조금 더 겸허한 자세를 취합시다. 당신도 그 시대에 태어나 그 시대의 교육을 받았다면 지금 기준으로 볼 때 많은 잘못을 저질렀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겸허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 이유는 그 사람들이 옳아서가 전혀 아닙니다. 오늘날 기준으로 볼 때 그들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옳고 그름의 기준 또한 시대에 따라 바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단어는 관용입니다. 관용은 오늘날 점점 더 중요한 개념이 되고 있습니다. 누군가 10년 전 했던 잘못된 말이나 잘못된 행동이 지금 당신의 기준에 너무나 못 미치기 때문에, 혹은 과거의 표현이 100%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당신과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그들로부터 배우며, 이를 통해 그들과 함께 공동체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양 진영 사이에 어떤 사람도 존재하지 못하게 만드는 참호 대신, 더 많은 사람이 그 사이에 있을 수 있는 공감의 점이지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은 공동체를 만들어야 할 시간입니다. 사회를 둘로 쪼갤 때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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