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
지난 10년간 혁신의 속도는 실망스러운 수준이었습니다. 생산성은 지지부진했고, 혁신을 주도할 것으로 손꼽혔던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도 대중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반면, 지나친 독과점, 수준 낮은 공론장 등 신기술의 부작용은 우려되는 수준이었습니다. 자율주행차를 비롯한 유망한 혁신 기술의 발전이 정체되면서 실리콘밸리는 겉만 번드르르하고 현실에서 동떨어진 곳으로 보였습니다. 안보를 중시하는 서구의 강경파는 권위주의 중국이 이미 서양을 넘어섰다고 경고했습니다. 몇몇 비관주의자들은 세상에 이롭고 유용한 아이디어들이 고갈됐다고 우려했습니다.
이런 우울한 전망 속에서도 기술 유토피아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이 유례없이 신속하게 개발됐습니다. 그리고 팬데믹을 거치며 나타난 디지털 기술 확산, 기술 투자 붐, 파괴적 혁신이 중첩되며 변화의 티키타카를 만들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진보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희망입니다. 낙관론자들은 역동적인 혁신으로 충만한 2020년대를 확신합니다. 그러나 2010년대에 새로운 암 치료법을 비롯한 다양한 발전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지나친 비관론이 난무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다가올 기술 유토피아에 대한 맹목적인 기대도 경계해야 합니다. 물론 정부가 신기술을 전폭적으로 지원한다면, 우리 삶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혁신의 시대가 열릴지도 모릅니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급속한 기술 진보는 일상이었습니다. 18세기에는 산업혁명과 기계화 공장이 진보를 주도했습니다. 19세기에는 철도와 전기가 있었죠. 20세기에는 자동차, 비행기, 제약, 그리고 가사로부터 해방을 가져온 세탁기와 가전제품이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1970년 이후 생산성과 기술 진보의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습니다. 혁신의 추세가 크게 꺾였음에도 쉽게 알아채지 못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증가한 여성 노동력이 생산성에 기여하면서 생산성 둔화의 부정적 영향이 가려지는 착시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1990년대에 보급된 컴퓨터가 효율성을 급속히 높이면서 혁신의 더딘 진전을 보완했습니다. 하지만 기술과 혁신의 본질적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2000년 이후 성장세는 눈에 띄게 둔화했습니다.
이런 “장기 대침체기”가 끝나고 있다고 판단하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잠재력이 높은 혁신적 발견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메신저 RNA”를 이용한 화이자-바이오엔텍(Pfizer-BioNTech)과 모더나(Moderna)의 백신 개발이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리고 맞춤형 항체 치료제는 제약 분야에서 과학의 신기원을 보여줬습니다. 점점 더 진보하는 생명공학을 활용해 질병을 치료할 뿐 아니라, 유전자를 편집하거나 실험실에서 고기를 배양하기도 합니다. 또한, 인공지능이 다양한 분야에서 두드러진 발전 궤도에 올랐습니다. 알파벳(Alphabet)의 자회사인 딥마인드(DeepMind)가 개발한 프로그램은 단백질의 구조를 예측하는 획기적인 성과를 거뒀습니다. 지난여름 오픈AI(OpenAI)가 공개한 인공지능인 GPT-3 현존 최고 수준의 자연어 처리 능력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10월부터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무인 택시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에너지 측면에서는, 재생에너지의 생산 비용이 크게 낮아지고 있습니다. 각국은 녹색 산업에 대한 투자 성공을 확신하고 있으며, 중국마저도 2060년 탄소 중립을 선언했습니다.
낙관론의 두 번째 이유는 엄청난 ‘기술 투자 붐’입니다. 2020년 2분기와 3분기 미국의 민간 부문 비주거 지출에서 컴퓨터,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이 차지하는 비중이 10년 만에 건설, 산업재를 뛰어넘었습니다. 정부는 과학 분야에 대한 지원금을 늘리는 데 한창입니다. 24개 OECD 국가는 감소 추세였던 공공 연구개발 자금을 2017년부터 늘리기 시작했습니다. 기술에 대한 투자 열풍은 의료 진단, 물류, 생명공학, 반도체 분야로 퍼지고 있습니다. 또한, 전기차에 대한 시장의 낙관론으로 투자가 급증하면서 테슬라(Tesla)의 일론 머스크(Elon Musk) CEO는 세계 최고 부자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신기술의 빠른 채택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기술이란 단지 화상회의와 이커머스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우리는 거주지에 상관없이 직업을 찾게 됐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팬데믹으로 전자 결제, 원격 의료, 산업 자동화가 대폭 확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보고 있노라면, 고난을 거치며 오히려 사회가 발전한다는 격언이 떠오릅니다. 또한, 기후변화 위기 대응과 미-중 간 G2 파워 게임 속에서 오히려 진보를 향한 과감한 조치를 촉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안타깝게도 기술 혁신이 경제의 구조적 문제까지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사회의 부가 증가하면서 사람들은 레스토랑과 같은 노동 집약적 서비스에 대한 지출을 늘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분야는 자동화가 어렵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이 더디게 일어납니다. 더불어, 고령화에 따라 많은 노동자가 생산성이 낮은 환자 돌볼 서비스로 몰릴 것입니다. 또한, 친환경 에너지가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아직 화석연료보다 더 비쌉니다. 그린 에너지가 화석연료보다 저렴해지기 전까지는 탈탄소 경제가 장기 성장을 주도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혁신의 파도는 21세기 이후 만연한 경제적 역동성의 저하를 반전시킬 수 있습니다. 혁신이 확산하면서 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보건과 교육 등 다양한 서비스 분야의 생산성이 개선될 것입니다. 생명공학, 인공지능, 로봇공학은 모든 분야의 진보를 이끄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주하지 않고 도전해야 합니다.
물론 혁신의 성패는 민간 부문에서 판가름 나겠지만, 정부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혁신의 과정에는 장기적이고 중대한 문제를 대범하고 획기적인 발상으로 해결하는 문샷 프로젝트가 꼭 필요합니다. 정부가 이런 프로젝트에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리스크를 감당해야 합니다. 공공 부문은 앞으로 닥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지출을 늘리고 효과적으로 집행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혁신이 경제 전반에 골고루 퍼지는 데도 정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정부는 규제와 로비로 인해 파괴적 혁신이 지체되지 않도록, 사회 안전망을 강화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혁신으로 불가피하게 생계를 위협받는 사람들에게 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는 뜻이죠. 혁신은 소수 기업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각국 정부는 새로운 기술이 경제 전반에 이바지하도록 강력한 반독점 정책을 시행해야 하고, 대기업의 지적 재산권에 대한 지나친 보호를 완화해야 합니다. 정부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도전한다면, 비관론을 잠재우고 빠른 성장과 생활 수준의 개선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2020년은 고난과 아픔으로 시작했지만, 제대로 된 정책이 이뤄진다면 희망찬 10년의 문을 열 수 있을 것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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