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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전환 시대의 새로운 지정학

(월스트리트저널, Daniel Yer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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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에서 중국과 같은 혁신 주도국으로 에너지 권력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미국이 에너지 혁신 강국이 될지도 모릅니다.

 

2년 전 실리콘 밸리를 방문하고 워싱턴 DC에 들른 중동 석유 기업의 최고경영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유가 전망이나 이란의 정세가 아니라, 캘리포니아에서 맞닥뜨린 광경에 관해 놀란 목소리로 설명했습니다. “테슬라 전기차의 숫자가 어마어마했어요. 도로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었죠.”

그가 본 광경은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변화의 일부였습니다. 향후 수십 년 안에 석유, 천연가스, 석탄에 의존하는 시대가 끝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세계의 권력 지형을 뒤흔들 것입니다. 미래 에너지 패권 전쟁으로 중국이 급부상하는 반면, 석유를 수출하는 러시아와 중동 산유국의 힘은 쪼그라들 것입니다. 미국은 승자가 될지, 패자가 될지 불확실합니다.

에너지 전환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노력이 한창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예상보다 훨씬 오랜 시간과 막대한 돈, 기술 혁신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경우 석유와 가스 산업이 창출하는 1,000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문제도 중요합니다.

2015년 195개국이 모여 지구의 기온을 산업화 이전보다 섭씨 2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하고, 상승 폭을 1.5도에 가깝게 제한하겠다는 파리 기후협약에 합의했습니다. “에너지 전환”은 파리 기후협약 이후 에너지의 미래 방향을 상징하는 구호가 됐습니다.

파리 협약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탄소 순 배출 제로”를 달성해야 합니다. 이미 유럽연합, 영국, 일본은 이에 동의했습니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Joe Biden)도 미국의 “탄소 순 배출 제로”를 약속했습니다. 지난 7월 바이든은 2조 달러(2,350조 원) 규모의 “공정한 청정에너지 미래”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2035년까지 전력 분야의 탄소 배출 제로를 달성하고, 석유, 천연가스, 석탄(2019년 미국 전체 에너지의 80%를 차지)을 태양광과 풍력(2019년 미국 에너지의 3.7%)으로 전환할 계획입니다.

많은 기업과 기관이 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석유, 가스, 전력회사들이 “탄소 배출 제로” 선언에 참여하기로 약속했으며, 주요 연기금은 “파리 목표”를 투자 평가 기준에 포함했습니다. 은행은 전통적인 에너지 프로젝트에 대한 대출 규모를 줄였고, 자동차 제조사는 2030년까지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차로 전환하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간 에너지의 혁명적 전환이 급격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나무 땔감에서 석탄으로 전환하는 첫 번째 에너지 혁명의 결정적인 순간은 1709년 1월이었습니다. 영국의 금속 노동자였던 아브라함 다비(Abraham Darby)가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죠. 그는 이 방법을 “더 효과적으로 철을 만들어 내는 방법”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석탄이 목재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에너지원이 되기까지 200여 년이 걸렸습니다. 비슷한 예로, 석유는 1859년 서부 펜실베이니아에서 발견됐지만, 석탄을 넘어 세계 제1의 에너지원으로 자리 잡은 것은 100여 년이 지난 1960년대였습니다.

물론, 과거 석탄, 석유로의 전환기에는 오늘날 에너지 전환의 핵심적인 요소들이 없었습니다. 정부의 정책, 막대한 자금, 과감한 추진력, 첨단 기술과 같은 요인들이죠. 하지만 이런 요소가 있더라도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팬데믹 이전 기준으로 87조 달러(10경 2천조 원)에 달하는 세계 경제를 떠받쳐 온 거대하고 복잡한 에너지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바꿔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세계는 전체 에너지의 84%를 화석 연료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 대응 과정에서 누적된 막대한 정부 부채로 인해 향후 몇 년간 에너지 전환에 투입할 수 있는 정부 예산이 제한될 것입니다.

그러나 시기가 어쨌든, 기후 변화와 정치적 압력으로 인해 전 세계는 언젠가 저탄소 사회로 나아갈 것입니다. 과연 이러한 변화가 글로벌 힘의 균형추를 어디로 옮기게 될까요?

 

중국은 미래 에너지 전환의 최대 수혜국이 될 것입니다. 비록 중국이 세계 5위의 산유량을 자랑하는 석유 강국이지만, 국내 석유 생산량은 세계 2위의 중국 경제 규모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중국이 석유 수요의 약 75%를 수입하는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이 된 이유입니다.

한국 전쟁 이후 중국은 석유 분야의 높은 해외 의존도를 주요한 전략적 약점으로 꼽았습니다. 중국의 이러한 약점을 “말라카 딜레마”로 부릅니다. 말라카는 싱가포르를 지나 남중국해로 이어지는 좁은 해협입니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중국으로 석유를 수송하는 유조선이 지나는 곳이죠. 중국이 대만이나 남중국해를 두고 미국과 대치할 경우, 미 해군이 말라카 해협을 봉쇄하여 중국의 석유 수입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중국 경제와 군사력은 심각한 타격을 입습니다. 따라서 석유 수입 의존도를 줄이는 것은 중국에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아울러, 중국은 신에너지 분야의 선발주자 위치를 차지하여 에너지 전환의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중국의 자동차 판매량은 미국보다 더 많은데, 만약 신차들이 모두 휘발유 차량이라면 중국의 석유 수입과 환경오염이 더 심각해질 것입니다. 중국의 완강(Wan Gang) 전 과학기술부 장관은 중국이 “전기차 개발”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신속히 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중국은 정부 주도의 공격적 지원 정책으로 글로벌 전기차 점유율을 50%까지 끌어올렸습니다.

그러나 전기차 산업의 성장은 단순히 석유 수입과 도시의 환경오염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중국은 내연기관 자동차 분야에서 기존 글로벌 기업을 따라잡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새로운 사업 영역인 전기차를 발판으로 삼아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를 뛰어넘고 세계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더욱이, 중국은 이미 전기차 배터리의 필수 원료인 리튬 시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전 세계 리튬 공급망 1위 국가이며, 배터리 제조에 필요한 80% 수준의 리튬을 생산합니다.

 

중국이 에너지 전환의 최대 수혜국이라면, 북쪽의 러시아는 에너지 전환에 따라 심각한 손해를 보는 국가가 될 것입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대통령은 “나는 러시아를 에너지 강국으로 말한 적이 없다”고 언급했습니다. 물론 러시아가 엄청난 규모의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보유했다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러시아는 세계 3대 산유국 중 하나이며, 천연가스 보유량 2위이면서 세계 1위의 가스 수출국입니다.

푸틴 대통령이 과거 이탈리아보다 GDP가 낮은 러시아를 강대국으로 건설한 힘은 소련에서 이어진 초강대국의 유산과 핵무기입니다. 하지만, 21세기 러시아의 글로벌 권력은 석유와 가스를 비롯한 풍부한 에너지 자원에서 나옵니다. 에너지는 러시아-중국의 유대를 강화하는 주요한 요인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에너지는 러시아의 전략적 약점입니다.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너지 자원 수출로 벌어들인 수입은 러시아 국가와 권력을 유지하는 재정적 기반이 됐으며, 국가 전체 수출 금액의 55%~60%, 러시아 정부 예산의 40~50%, 국가 GDP의 30%를 차지합니다.

지난 20년간 석유와 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수출 상품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줄곧 높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와 개혁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러시아는 글로벌 에너지 전환이 불러오는 위험에 맞닥뜨리게 됐습니다.

 

에너지 자원이 다양한 방식으로 개발되면서 지난 수십 년간 굳건했던 중동 산유국의 위상도 위협받고 있습니다. 최근 두드러진 변화는 미국이 셰일 오일에 힘입어 세계 1위의 산유국으로 부상한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부상으로 화석연료 분야에서 경쟁이 심해졌지만, 여전히 중동 국가는 경제의 대부분을 석유에 기대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가올 에너지 전환이 석유의 수요를 줄인다면 중동 산유국의 경제에 심각한 위기가 닥칠 것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수출금액이 정부 수입의 70%, 국가 GDP의 40%에 이른다고 밝혔습니다. 게다가, “석유 부문 이외의 경제활동이 석유 수출로 벌어들인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사우디의 모하메드 빈 살만(Mohammed bin Salman) 왕세자는 국가개혁 프로젝트인 “비전 2030”의 시급성을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1970년 이래 우리는 5개년 개발 계획을 통해 3가지 기본 목표를 추진했습니다. 경제 다변화, 민간 부문 성장, 석유 의존도 완화입니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비전 2030에서는 그간의 실패를 바로잡기 위해 국부펀드를 조성할 계획입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국부펀드를 해외의 다양한 자산에 투자해 자산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만들 것입니다.”

수십 년간 석유 수출에 의존해 온 경제 구조를 개혁하는 것은 어떤 환경에서든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최근 코로나 팬데믹과 글로벌 경기 침체 환경에서는 더 어렵습니다. 더욱이, 석유 수출로 거둬들이는 수입은 탈석유와 경제구조 다변화를 위한 투자 재원에 필수적이기도 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국경을 맞댄 석유 부국 아랍에미리트는 에너지 전환에 대비한 석유 수출국의 노력을 잘 보여줍니다. 탈석유 시대의 흐름이 널리 알려지기 훨씬 전인 2007년, 아랍에미리트는 석유 이후의 시대를 대비하여 독자적인 경제 프로젝트인 “비전 2030”을 마련했습니다. 아랍에미리트의 모하메드 빈 자이드(Mohammed Bin Zayed) 왕세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50년 뒤 마지막 한 방울의 석유를 수출한다면, 그때 과연 슬픔의 눈물을 흘릴까요? 오늘 우리가 제대로 된 분야에 투자한다면, 50년 뒤에는 눈물을 흘리는 대신 성공을 축하할 것입니다.” 20년 전 국가 GDP의 대부분을 석유에 의존했던 아랍에미리트는 현재 경제의 60%가 비석유 부문입니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바이든이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조속히 파리 협정에 복귀하고 글로벌 기후 정책에 앞장설 것입니다. 미국은 이미 에너지 전환의 핵심 분야인 에너지 기술 연구개발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2050년 탄소 배출 제로 목표를 달성하려면 화학, 물리학, 재료공학 분야는 물론, 탄소 포집, 수소연료, 디지털화, 제조업, 인공지능, 로보틱스, 소프트웨어, 데이터분석 등 다양한 분야의 기술 혁신이 꼭 필요합니다.

미국의 강점은 다양합니다. 에너지부 산하 17개 국립 연구소, 대학과 민간 연구소, 수많은 기업과 스타트업으로 대표되는 역동적이고 특출난 에너지 혁신 생태계 덕분에, 미국은 앞서 언급한 다양한 기술혁신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창업의 위험을 장려하는 문화와 막대한 자금을 동원하는 금융 시스템도 갖췄습니다. 일례로 60개 첨단 원자력 프로젝트가 민간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죠. 미국 에너지부는 미래 에너지 기술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연간 65억 달러(7조 6천억 원) 이상을 기술개발에 투자합니다. 다른 나라들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입니다.

미국은 또한 지난 10년 동안의 “셰일 혁명”에 힘입어 기존 화석연료 자원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셰일 혁명은 수압파쇄법(프래킹)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이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이었던 2008년에는 상상조차 못 했던 일입니다. 당시 모든 사람이 가스 사업의 쇠퇴를 예상했습니다.

셰일 혁명 덕분에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1위 산유국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또한, 석유 수출 강국, 세계 1위 천연가스 생산국, 액화천연가스(LNG) 주요 수출국이 됐습니다. 셰일 산업은 2,000억 달러(230조 원) 이상의 설비 투자와 수백만 개 일자리를 창출했고, 수천억 달러의 무역수지 적자를 줄였으며, 연방 정부와 주 정부의 세입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셰일 혁명이 불러온 급속한 석유와 가스 생산량 증가에 힘입어 미국이 새로운 차원의 글로벌 영향력과 유연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석유와 가스 수출이 미국-인도 간 유대 관계를 촉진했습니다. 또한, 셰일 혁명은 미국 에너지 안보를 굳건하게 떠받치는 토대가 됩니다. 향후 수십 년에 걸쳐 이뤄질 에너지 전환에 미국 경제가 흔들리지 않도록 버티는 보루 역할을 하게 되겠죠.

새로운 에너지 지정학의 시대를 항해하기 위해서는 매우 신중하고 중요한 결정이 필요합니다. “셰일 시추(프래킹) 금지” 정책은 미국의 석유와 가스 생산을 급격히 떨어뜨릴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의 석유와 가스 유정에는 대부분 프래킹 기법이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선택은 전략적 결과를 낳습니다. 팬데믹 종료 이후 세계 경기가 회복하면 글로벌 석유, 가스 소비가 증가할 것이고, 미국의 공급 감소는 다른 석유, 가스 수출국이 대신하게 되겠죠. 이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최소 10년~20년 동안 기대하지 않았던 이익을 챙길 것입니다.

 

이 기사는 9월 15일 펭귄 프레스(Penguin Press)에서 출간된 대니얼 예긴(Daniel Yergin)의 신간 “새로운 지도: 에너지, 기후, 국가 충돌(The New Map: Energy, Climate and the Clash of Nations)”을 각색한 내용입니다. 예긴은 퓰리처상을 수상한 “2030 에너지 전쟁(The Quest)”과 “황금의 샘(The Prize)”의 저자로, IHS 마킷의 부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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