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란틱, Elliot Aronson, Carol Tavris)
천국의 문(Heaven’s Gate)이라는 종교 단체가 있었습니다. 천국의 문 회원들은 1997년에 지구에 가장 근접할 예정이던 헤일밥(Hale-Bopp) 혜성 뒤를 지구에서 자신을 구원해 우주로 데려가 줄 우주선이 따라온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회원 중에는 육안으로도 볼 수 있던 혜성을 더 자세히 보려고 값비싼 고해상도 천체 망원경을 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대부분 화를 내며 망원경을 환불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비싼 망원경이 불량품이라는 거였습니다. 혜성은 잘 보이는데, 혜성 뒤를 따라오고 있어야 하는 우주선이 아무리 봐도 안 보이니, 망원경이 불량품이 아니고선 이를 설명할 수 없다고 이들은 주장했죠. 헤일밥 혜성은 지구를 지나갔지만, 천국의 문 회원들이 기다리던 우주선은 오지 않았습니다. 예정대로 구원받아 우주로 가려면 세속의 껍질(신체)을 벗어야 한다고 믿던 회원 39명은 집단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천국의 문 회원들의 잘못된 믿음은 끔찍한 결말을 낳았습니다. 매우 극단적이지만, 동시에 천국의 문은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ce)의 아주 전형적인 사례이기도 합니다. 인지부조화란 나의 원래 생각과 행동이 실수였고 잘못됐다는 점을 인정하고 과학적인 사실을 받아들이기 꺼려 하는 동기나 기제를 뜻합니다. 새로 알려진 과학적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목숨을 구할 수 있을 만큼 극단적인 경우에도 (천국의 문 회원들처럼)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죠. 바로 이 인지부조화가 코로나19 팬데믹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믿는 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인지부조화를 겪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원래 사람은 자기 마음을 잘 바꾸지 않습니다. 한번 생각을 굳히면 좀처럼 이를 바꾸지 않죠. 그런데 새로 알려진 사실이 기존에 내가 하던 생각, 내가 믿는 바와 충돌하면? 새로 알려진 사실을 받아들이고 원래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면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생각을 바꾸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 나와 다른 사람의 건강을 해치더라도 말이죠.
인지부조화라는 개념은 1950년대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어(Leon Festinger)가 만들었습니다. 두 가지 서로 다른 생각 혹은 서로 다른 생각과 행동이 충돌할 때 사람들이 느끼는 불편함, 껄끄러움을 묘사하기 위해 만든 말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나는 담배가 발암물질이며 건강에 해롭고, 담배 때문에 일찍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담배를 피웁니다. 이렇게 서로 충돌하는 생각과 행동의 부조화를 줄이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담배를 끊거나, 아니면 담배가 건강에 해롭지 않다는 근거를 찾아내고 논리를 만들어 흡연하는 행위를 정당화해야 합니다. ‘담배를 끊으면 당장 살이 찔 텐데, 비만도 건강에 좋지 않으니까 담배가 백해무익하진 않아.’와 같은 식이죠. 페스팅어는 특히 사람들이 서로 충돌하는 생각을 어떻게 정리하고 부조화를 줄여 일관성 있게 행동하는 것처럼 자신을 속이면서 정당화하려고 애를 쓰는지에 주목했습니다.
저자 중 한 명인 애런슨 박사는 페스팅어 교수의 제자로 인지부조화 이론을 꾸준히 발전시킨 인물입니다. 특히 애런슨 박사는 내가 직접 연루된 생각이나 행동이 서로 충돌할 때 인지부조화가 얼마나 강력한 역할을 하는지에 관한 연구를 했습니다. 같은 인지부조화라도 새로 밝혀진 과학적인 사실이 가리키는 방향이 내 생각과 믿음, 행동이 잘못됐다고 지적할 때가 가장 쓰라리고 불편한 법입니다. 즉, 내가 친절하고, 도덕적이며, 능력 있고, 똑똑하다는 생각이 부정될 때 나는 가장 큰 위협을 느낍니다. 그 위협을 처음부터 느끼지 않으려고, 인지부조화에 빠지지 않으려는 기제가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 그 순간부터 작동합니다. ‘이 차를 살 거야’, ‘이 후보를 찍을 거야’ 같은 결정은 말할 것도 없고, ‘코로나19는 정말 심각한 문제야’, 아니면 ‘코로나19 이거 순전히 사기야’ 같은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는 순간 그 생각을 뒷받침하는 근거만 찾게 되고, 그 생각에 어긋나는 근거는 내치기 시작합니다. 이 차를 사기로 하면, 이 차에 관한 좋은 점만 받아들이고, 단점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는 거죠. 그렇게 마음먹기 바로 전까지만 해도 ‘정확히 몰라서 확신하기 어렵던 문제’도 금방 ‘정확히 모르지만, 그래도 확신할 수 있는 문제’로 변모합니다. 한번 결정을 내리고 나서 그 결정을 정당화하는 단계를 거칠 때마다 사실 내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특히 인지부조화를 모면하려고 명백한 사실을 부정한 결과 원래 문제가 더욱 커지면 내 실수를 인정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인지부조화 이론을 검증하고 사람의 마음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학자들이 진행한 실험만 3천 건이 넘습니다. 애런슨 박사가 한 실험 가운데 가장 유명한 건 이른바 “어려운 통과 의례”에 관한 실험입니다.
한 토론 동아리가 있습니다. 동아리에 들기 전에는 모르는데, 들고 나서 보면 동아리원들은 하나같이 거만하고, 토론도 따분하기 짝이 없는, 한 마디로 형편없는 동아리입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렇긴 한데, 그 동아리에 어떻게 들었느냐에 따라 동아리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가 상당히 달라집니다. 인지부조화 때문입니다. 즉, 이 동아리에 들기 위해 정말 불쾌하고 당혹스러운 과정을 참고 견뎌야 했던 실험 참가자들은 (형편없는 동아리지만) 어떻게든 좋은 점을 찾아내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 동아리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반대로 그냥 신청서만 내면 동아리에서 받아준 경우에는 이상한 동아리원이 많고, 토론이 따분하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동아리를 탈퇴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정말 어렵게, 험한 꼴을 봐가며 얻어낸 무언가가 시시하고 성가신 것으로 밝혀져서 내가 들인 노력과 품이 그저 시간 낭비로 밝혀지면 그 자체로 인지부조화가 일어납니다. 이런 식이죠.
‘어떻게 똑똑한 내가 이런 형편없는 동아리에 들려고 그런 노력을 헛되이 기울였단 말인가?’
이때 부조화를 줄이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내가 똑똑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건 애초에 선택지가 될 수 없죠. 그럼 남은 방법은 이 동아리가 알고 보면 형편없는 곳이 아니라 좋은 곳이라고 다시 평가하는 겁니다. 그런 노력을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 되어야만, 내가 똑똑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지부조화를 극복하기 위해 나는 동아리의 좋은 점만 애써 부각하고, 나쁜 점에는 눈을 감아버리게 됩니다. 반면에 별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동아리에 들어온 사람은 동아리가 형편없다는 사실을 금방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애초에 갖은 노력을 기울여 어렵사리 들어온 동아리도 아니니, 이 동아리가 훌륭한 곳이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회심리학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인지부조화 이론은 이내 실험실을 떠나 세상 곳곳에서 ‘발견’됐습니다. 잡지의 칼럼, 영화 리뷰, 심지어 유머 칼럼의 단골 소재가 됐죠. 그러나 정작 인지부조화라는 거대한 기제의 동력을, 또 우리가 인지부조화의 불편함을 해소하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지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정당이나 정치인, 정치사상과 정치적인 신념을 향한 우리의 태도, 감정에서도 인지부조화가 일어납니다. 즉, 우리가 누군가, 어떤 대상을 정치적으로 지지하게 되면 그 호감과 충성도가 스스로 어떤 현상을 판단하는 기준이 돼 버리는 부작용이 생깁니다.
사회심리학자 리 로스(Lee Ross)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해묵은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다음과 같은 실험을 고안해 진행했습니다. 먼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에 각각 양국 사이의 평화를 정착하는 방안을 내달라고 부탁한 다음에 서로 제안한 평화안에 이름표를 바꿔 붙였습니다. 즉 이스라엘 측이 낸 평화안에 팔레스타인의 제안이라고, 팔레스타인 측이 낸 평화안에 이스라엘의 제안이라고 명명한 겁니다. 그런 다음에 이스라엘 시민들에게 ‘팔레스타인 안’이 어떤지 평가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라엘 안’을 ‘팔레스타인 안’보다 훨씬 더 좋아했어요. 사실은 ‘이스라엘 안’이 팔레스타인 측에서 제안한 것이었는데 말이죠. 우리 편에서 낸 제안에 상대편 이름표를 붙였더니 그 제안을 일축하고, 상대방이 낸 제안을 이름표만 보고 좋다고 고른 겁니다.”
정치적 양극화가 그 어느 때보다 심한 미국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자, 우리는 생과 사를 가를 수 있는 문제마저 의료·보건 전문가의 조언이 아니라 정치적인 진영 논리에 따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리더십이 실종된 상황에서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과학적 사실에도 미국은 합의하지 못했죠. 그 결과 미국인은 팬데믹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두고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하게 됐습니다. 하나는 과학자와 의료·보건 전문가들이 내놓는 분석과 조언입니다. 이 조언은 바이러스에 관해 새로운 사실을 더 많이 알게 될수록 바뀔 수도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과 추종자들이 내놓은 마스크 쓸 필요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도 효과 없다는 주장이죠. 과학적 근거는? 없습니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작한 지 넉 달이 더 지난 미국에서 사람들이 ‘얼른 출퇴근하면서 일하고 싶다, 자주 가던 바에 가서 친구들하고 술 한잔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 생각과 바람은 과학자와 의료·보건 전문가들의 조언을 거스르는 ‘위험한 일’입니다. 본인은 아프지 않을 수도 있지만, 최소한 무증상 감염의 숙주가 되어 가족 중 누군가를 아프게 할 수 있는 행동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인지부조화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먼저 친구들을 만나서 예전처럼 수다 떨고 술 마시고 싶은 바람을 억제하고,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방법이 있습니다. 과학자와 전문가의 조언을 따르는 거죠. 아니면 코로나19에 대한 이 모든 뉴스는 다 가짜뉴스이므로, 예전처럼 바에 가서 친구들과 술 마시고 노는 방법도 있습니다. 마스크 따위는 쓰지 않아도 된다고 트럼프 대통령도 말했으니까요. 다만 우리가 누구나 하고 있는 기본적인 전제를 거스르지는 말아야 합니다. 즉 우리는 누구나 나는 똑똑하고 유능하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해치는 어리석은 짓은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려면 우리의 선택을 정당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스크가 바이러스 확산을 차단하는 건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마스크를 쓰면 숨쉬기가 불편해서 호흡기에 문제가 생길 거라는 논리를 펴거나, 아니면 아예 팬데믹 자체가 심각하지 않다고 믿으면 됩니다. 아니면 공중보건 못지않게, 혹은 공중보건보다 더 중요한 게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권리”라고 우기는 방법도 있습니다. 팜비치 카운티의 한 공청회에 증인으로 나선 사람들이 정확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마스크를 쓰라고 강제하는 건 진짜 공산주의 독재정권에서나 생각할 법한 끔찍한 일로 위대한 미국 헌법이 보장한 자유를 짓밟는 행위다.”
“마스크가 실제로 사람을 죽이고 있다”고 말한 이도 있었습니다. 사우스다코다의 크리스티 노엠 주지사(공화)는 마스크를 비롯해 정부가 간섭하는 일 전반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해법은 간단하다. 정부의 간섭은 최소화하고 더 많은 자유를 주면 된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인지부조화를 줄이는 데 보탬이 되고자 정당화할 구실을 줬죠.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유세 현장에 대규모 군중이 마스크도 쓰지 않고 모이면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질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를 일축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평화롭게 모여 자유롭게 의사를 개진할 수 있는 권리는 다름 아니라 미국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한 기본권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가 겪어본 적 없는 새로운 전염병에서 시작된 위기입니다. 당연히 우리는 완전하지 않은 정보를 토대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어느 시점이 되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종식해도 될지, 내 가게는 언제 다시 열 수 있을지, 언제 다시 친구, 직장 동료와 만나 술 한 잔 기울이며 이야기할 수 있을지, 온라인이나 앱으로 말고 진짜 만나서 데이트는 언제 할 수 있을지, 여행은 언제 갈 수 있을지 아무도 정답을 모릅니다. 어느 정도까지 위험을 감수하겠냐고 물으면 그에 대한 답도 제각각일 겁니다. 어떤 답을 내리든, 위의 질문에 대한 생각, 의견은 결국 나 자신의 건강은 물론 공중 보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여기에도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인지부조화를 피하고 줄이려는 우리의 무의식적 의지가 작동합니다. 한번 결정을 내리고 나면 그 결정에 맞춰 다음 행동을 취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유연한 태도를 잃지 않으며 새로운 사실이 알려지면 이를 배우고 받아들일지, 아니면 처음에 결정한 바를 뒤 돌아보지 않고 밀어붙일지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지금까지 사람이 마음을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 실제로 마음을 바꾸기란 참 어렵다는 이야기만 했는데, 그렇다고 마음을 바꾸는 것이 절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관건은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내가 얼마든지 실수하고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있습니다. 매번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주어진 정보를 최대한 꼼꼼히 확인하고 판단하되 과학적인 증거가 새로 나오면 이를 곧바로 반영하고 필요하면 의견을 바꾸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의료·보건 전문가들이 하고 있는 게 정확히 그 작업입니다. 내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려면 꾸준히 나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섣불리 내 결정을 정당화해서 불편한 인지부조화를 줄이는 대신, 부조화를 마주 보고 어디서 이 불편한 감정이 생겼는지를 따져 봐야 하죠.
부조화의 작동 원리를 살펴보면 이를 극복하는 실마리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먼저 부조화가 일어난다면 반드시 서로 충돌하는 두 가지 생각 혹은 생각이나 행동이 있다고 했었죠. 그 두 가지를 철저히 분리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시몬 페레스(Shimon Peres) 해법”이라고 부르는 방법입니다. 이스라엘의 페레스 전 총리가 실제로 겪었던 일을 토대로 만든 말인데, 당시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독일 비트부르크의 공동묘지를 방문해 이스라엘이 말 그대로 발칵 뒤집혔던 적이 있습니다. 비트부르크의 공동묘지에는 히틀러의 친위대로 유대인 학살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와픈SS(Waffen SS) 조직원의 일부가 묻혀있는 곳입니다. 여기에 레이건 대통령이 가서 참배하고 온 겁니다. 레이건 대통령과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두터웠던 페레스 총리로서는 실로 난처한 상황이 된 겁니다. 곧바로 레이건 대통령의 ‘부적절한 참배’에 대한 총리의 의견을 밝혀달라는 요청이 쏟아집니다. 이때 페레스 총리가 인지부조화를 해소하는 걸 중시했다면 이렇게 했을 겁니다. 레이건 대통령과 우호적인 관계를 끊어버리고 철천지원수가 되거나 아니면 친구의 행동을 정당화해주는 겁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르고 갔을 거라는 식으로 두둔하는 거죠. 그런데 페레스 총리의 선택은 이도 저도 아니었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했죠.
“친구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전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친구는 계속 친구로 남고, 실수도 그대로 실수일 뿐인 것으로 하겠다고요.”
‘시몬 페레스 해법’의 핵심은 인지부조화의 불편함을 받아들인 데 있습니다. 엄연히 일어난 일을 애써 부정하지 않고, 섣불리 정당화하려 하지 않았죠. 아마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수도 없이 던졌을 겁니다.
‘내가 내린 이 결정의 근거가 뭐였지? 내가 왜 지금 이렇게 행동하고 있지? 충분히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 맞나? 혹시 즉각적인 감정이나 선입견에 휩쓸려 결정을 내린 측면은 없나? 여기까지 오기 위해 내가 기울인 노력 때문에 내 눈을 가리고 있는 건 없을까?’
명절 때면 만나는 친척 가운데 유달리 말이 통하지 않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그 사람의 정치 성향이나 지지 정당을 내가 도저히 바꿀 수 없는 이유도 인지부조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그 친척이 오랜 시간 품과 돈을 들여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면 가능성은 거의 0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그 사람도 똑같이 당신을 고집불통이라며 이해 못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지 않나요? 그렇더라도 만약에 그 사람의 생각을 바꿔보려고 시도라도 해보고 싶다면, 절대로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어선 안 됩니다. “그런데 도대체 마스크를 안 쓰는 이유가 뭐예요?”라는 식으로 물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이 말은 곧 “너 대체 생각이라는 걸 하고 사니? 뇌가 있기는 하니?”와 같은 말로 들릴 겁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은 당장 인지부조화를 줄이지 않으면 불편함을 견딜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아마 이런 식으로 생각이 굳어질 겁니다.
‘나는 똑똑한데, 지금 얘가 나보고 멍청하다고 한 거네. 내가 똑똑한 건 분명한 사실인데, 쟤는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마스크가 진짜 필요 없는 게 맞나보다.’
반대로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그 친척이 지지하는 정당 사람 가운데 생각을 바꾼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겁니다. 철저히 그 사람의 입을 통해서요. 공화당 정치인들 가운데 뒤늦게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주장을 바꾼 사람들이 있습니다. 테네시주를 대표하는 상원의원 라마 알렉산더(공화) 의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간단하면서도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정쟁의 소재가 됐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트럼프를 지지하면 마스크를 쓰지 말자, 트럼프에 반대하는 사람만 마스크를 쓴다는 식의 논쟁은 소모적일뿐더러 그로 인한 피해가 너무나 커서 문제입니다.”
과학자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알게 될수록 우리도 생각을 바꿔야 하는 순간이 올 겁니다. 지금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규범, 행동도 언젠가는 반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지금 생각하는 것이 무조건 옳다고 믿으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방법도 있습니다. 대신 그렇게 하면 기적처럼 바이러스가 사라지지 않는 것 외에 팬데믹을 극복할 해결책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껏 설파해 온 유일한 해법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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