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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턴대학교의 ‘우드로 윌슨 지우기’

Krystal Knapp, 플래닛 프린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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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턴대학교 재단이사회가 공공정책대학원의 공식 명칭 “Woodrow Wilson School of Public and International Affairs”과 에서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전 총장의 이름을 빼기로 결정했습니다. 윌슨 전 총장의 이름을 따라 지은 기숙사 윌슨 칼리지(Wilson College)의 이름도 바꾸기로 했습니다. 윌슨이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인종차별주의자의 면모 때문입니다.

지난주 재단이사회는 프린스턴대학교의 이름으로 인종차별을 분명히 규탄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우드로 윌슨이 총장 시절, 또 대통령을 지내면서 보였던 인종차별적 사고와 주장을 생각하면 학교나 기숙사 이름에 윌슨의 이름을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결론지었습니다.

5년 전에는 프린스턴 학생들이 만든 흑인정의연맹이란 단체가 학교명과 기숙사 이름에서 윌슨을 빼달라고 요구했을 때 재단이사회가 이를 거절했습니다. 당시 프린스턴대학교는 흑인 학생을 향한 여러 가지 차별을 시정하고, 학교의 어두운 역사를 더 철저히 교육하고 반면교사로 삼겠다고 약속했지만, 우드로 윌슨의 이름을 공공정책대학원의 공식 명칭에서 뺄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아이스그루버 총장은 27일 성명서에 이렇게 썼습니다.

“재단이사회는 조지 플로이드, 브리오나 테일러, 아흐무드 아버리, 레이샤드 브룩스 씨의 죽음으로 다시금 부각된 미국의 오랜 인종차별의 역사 앞에서 이번 결정을 내리게 됐습니다.”

이어 윌슨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주의가 프린스턴은 물론 미국 사회에 미친 영향에 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우드로 윌슨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기준에 비춰 보더라도 대단히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자였습니다. 연방 정부 공무원들은 피부색에 관계없이 같이 일한 지 벌써 수십 년이 지난 뒤였는데도, 윌슨은 대통령이 된 뒤 이들을 다시 나누어놓았습니다. 인종 정의에 관한 시계를 수십 년 거꾸로 돌려놓았죠. 그저 인종차별을 개선하는 데 소극적이었던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인종차별을 강화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오늘날까지 그 영향이 미치고 있을 정도죠. 인종 분리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대통령의 이름을 공공정책대학원에 남겨두는 건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정치 지도자나 정책 입안자를 길러낼 학교의 이름에 붙는 인물은 그 자체로 학생들이 본보기로 삼아야 할 훌륭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미국 전역에서 들불처럼 번진 인종차별 반대 집회와 시민들의 요구를 생각하면 시대착오적 인종차별주의자였던 윌슨의 이름은 공공정책대학원의 간판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인종차별 문제와 힘겹게 싸우고 있는 미국 사회를 이끌어갈 리더가 될 프린스턴의 학생들도 정의와 평등의 편에 서는 편을 택할 거라 믿습니다.”

앞서 학생 단체연합은 학교 측에 편지를 보내 우선 기숙사 이름에서 윌슨의 이름을 당장 빼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공공정책대학원의 정식 명칭에서 윌슨의 이름을 빼는 청원서에 학교 안팎의 사람들에게서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앞서 지난주 뉴저지에 있는 몬모스대학교(Monmouth University)는 학교 건물 이름에서 우드로 윌슨의 이름을 빼기로 결정했습니다.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것이 상식이 된 2020년에 윌슨의 이름을 유지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판단한 겁니다.

프린스턴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은 이제 윌슨의 이름을 빼고 프린스턴 공공정책대학원(The Princeton School of Public and International Affairs)으로 불리게 됩니다. 기숙사 윌슨 칼리지는 앞서 학교 측이 이미 문을 닫고 새로 짓는 기숙사 건물의 이름을 다른 거로 짓기로 하면서 그 이름이 사라질 예정인데, 아이스그루버 총장은 윌슨 칼리지의 이름을 더 빨리 없애겠다고 말했습니다.

“윌슨 전 총장은 프린스턴대학교를 개혁해 지금의 일류 대학으로 만든 데 분명한 공을 세운 분입니다. 그래서 학교 측의 이번 결정이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연구 중심 대학교나 소규모 학습 모임 프리셉트(precepts)를 만든 데 윌슨의 리더십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총장직에서 물러난 뒤 대통령이 된 윌슨은 나중에 1차대전을 종식하고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을 세운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윌슨의 공과를 분명히 기억할 겁니다. 우리는 윌슨 전 총장의 업적과 허물을 모두 소중히 기록하고 보존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아이스그루버 총장은 이어 그동안 프린스턴대학교가 윌슨을 ‘인종차별주의자’라서 기린 건 절대 아니며, ‘인종차별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혹은 인종차별주의자인 것과는 별개로’ 업적은 업적대로 평가해온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태도가 오해의 여지를 낳았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런 태도가 문제를 낳았습니다. 프린스턴대학교도 너무나 쉽게 인종차별 문제를 무시하고 외면했으며, 때로는 면죄부를 준 미국 사회의 일원이었습니다. 즉 흑인을 향한 구조적인 차별에 여러모로 일조한 셈이죠. 조지 플로이드 씨의 목을 9분 가까이 무릎으로 눌러 살해한 경찰관 데릭 쇼빈은 아마도 앞서 똑같이 흑인 시민을 폭력적으로 진압했을 때도 결국 사회가 이를 무시하고 외면했으며 자신의 행위에 면죄부를 줬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학교 측의 결정에 대해 흑인정의연맹은 성명서를 내고, “뒤늦은 보여주기식 결정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벌써 5년 동안 줄기차게 요구해온 학생들의 요구를 무시하다가 조지 플로이드 씨 사망 사건으로 인종 문제가 불거지자 그제서야 마지못해 행동에 나섰다는 겁니다.

지난 2015년 흑인정의연맹이 우드로 윌슨의 이름을 학교 이름과 기숙사 이름에서 빼라고 요구했다는 내용을 다룬 뉴욕타임스 기사 번역.

ingpp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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