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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 75주년을 맞이한 유엔의 미래는? (1)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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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기 몇 주 전, 윈스턴 처칠은 백악관을 방문 중이었습니다. 당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새로운 국제안보기구의 이름으로 적당한 것이 떠올라 손님방으로 허둥지둥 달려갔고, 목욕 가운만 겨우 걸친 영국 수상을 만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유엔(United Nations)”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관한 이 이야기의 놀라운 점은 국가 정상들 간의 이례적인 소통 방식이 아니라 (현대의 미국 대통령이라면 자신이 떠올린 좋은 아이디어를 트위터에 올렸을지도 모르겠네요) 이 전쟁통에 정상들이 이미 평화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경제라는 전선에는 1944년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이 만들어졌죠. 안보 부문에서 유엔의 틀은 처칠과 루즈벨트, 스탈린이 동의하여 만들어졌고, 루즈벨트의 죽음 이후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되면서 결실을 맺었습니다. 창립 헌장에 서명을 하던 날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역사에 기록될 좋은 날”이라면서 각국이 “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흔들리지 않는 의지의 연대를 이루었다”고 선언했습니다.

당시의 환희는 냉전이 찾아오면서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2대 사무총장이 말했던 것처럼 “유엔은 인류를 천국으로 데려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지옥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죠. 유엔의 전신 격인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과 달리 유엔은 끈질기게 명맥을 이어왔고, 75년 간 세계적인 규모의 전쟁은 없었습니다. 탈제국주의와 소비에트연방의 해체를 거치며 가입국가도 51개국에서 193개국으로 늘어났습니다. 규칙을 기반으로 한 세계 질서의 중심에 유엔이 있고, 특화된 유엔 산하 기구들은 우리 삶의 거의 모든 부문에 맞닿아 있습니다.

허나 영원히 지속되는 국제 질서라는 것은 없습니다. 세월에 따라 세력 균형이 바뀌고 시스템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며 부패가 따라오게 됩니다. 1815년의 빈 체제는 서서히 부식되었고, 1919년 베르사유 조약은 빠르게 붕괴되었죠. 지배적인 강국이 다른 나라로 대체되는 과정에서는 보통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약 1세기 전에 영국에서 미국으로 바뀌며 전쟁이 없었던 것은 아주 드문 경우에 해당합니다)

코로나19는 새로운 과제입니다. 세계가 미국의 리더십을 찾을만한 영역인데 현재 진공상태로 비어있죠. 미국 대통령이 괴상한 치료법을 제안하며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모습만 보일 뿐입니다. 트럼프는 국제적인 대응을 이끌기보다는 중국을 탓하는 데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조치라고는 세계보건기구(WHO)에 자금 지원을 중단하고 탈퇴하겠다 위협한 일이었죠. 3월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코로나19를 “우한 바이러스”라 칭해야 한다고 우기는 바람에 G7 외무장관들은 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했습니다.

중국의 초기 대응은 어설픈 은폐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초강력 봉쇄 정책으로 바이러스를 통제하자, 전 세계에 그 업적을 자랑하며 감사하는 국가들에 보호 장비를 제공해주었죠. 한편 유럽 국가들은 쉥겐조약 가입국들 간에도 국경을 걸어 잠그기 바빴습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분열되어 어떤 활약도 하지 못했죠.

국제 질서는 이미 흔들리고 있습니다. 2007년 세계 금융위기를 계기로 포퓰리즘이 득세하고 국제기구에 대한 경계심이 확산되었습니다. 안보리에서 영구 비토권을 갖는 상임이사국이 2차대전 승전국들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 국제기구들은 오늘날의 현실이 아닌 수십 년 전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데도 개혁 의지는 없습니다. 규칙이 있다고 하지만 강국들은 종종 이를 무시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일부를 뻔뻔하게 먹어버렸고, 중국 역시 논란의 남중국해 영역을 차지해버렸죠.

미국은 국제기구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 오랫동안 불평해왔고, 힘 없는 국가들이 미국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이른바 “걸리버화(Gulliverisation)”에도 불만을 표했습니다. 미국은 2003년 영국과 함께 안보리의 승인 없이 이라크를 침공했습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 이미 국내 문제들에 더 집중하겠다며, 글로벌 리더십의 부담을 반쯤 내려놓는 길을 택했죠. 현 국제 질서를 만들어 낸 수석 건축가라 할 수 있는 미국은 이제 그 국제 질서를 망가뜨리는 데서 기쁨을 느끼는 지도자를 갖게 되었습니다.

트럼프는 기후 변화 해결을 위한 파리 조약에서도 탈퇴했고, 이란과의 핵협상도 무산시켰습니다.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군사력을 강화하면서도 나토(NATO)에 대해서는 미적지근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재판관 임명을 방해하면서 세계무역기구(WTO)의 권위를 저해하는가 하면, 유럽연합을 “적”으로 칭한 적도 있죠. 트럼프 대통령의 제재 사랑은 미국이 기축통화를 보유국으로서의 엄청난 특권을 남용하고 있다는 불만을 불러일으키며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유엔 내 미국의 동맹국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단 것은 삼키고 쓴 것은 뱉는다고 비난합니다. 산하 기구 한두 군데서 탈퇴하는 건 새로울 게 없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유네스코와 인권이사회에서 미국을 탈퇴시켰습니다.) 시스템에 대한 믿음 자체가 없다는 것이죠.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 수사는 국제연맹 가입을 반대했던 상원의원 헨리 캐벗 롯지의 말을 연상시킵니다. 루즈벨트와 트루먼의 국제주의와는 명백한 대조를 이루죠.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9월 유엔 총회에서 “미래는 글로벌리스트들의 것이 아니라 애국자들의 것이다”라고 발언한 바 있습니다. 곧 75주년을 맞이하는 유엔은 즐거운 생일 파티를 기대하는 분위기보다 불안감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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